시작은 늘

시작

by 수필버거

출근길에 문득, 전날 만들어 올린 네이버 폼의 '알림'을 안 켰다는 생각이 났다. 폼 사용이 처음이라 빼먹었다. 금방 산 아이스 아메리카노 컵을 편의점 앞 보라색 테이블에 내려놓고 폰을 꺼냈다.

스와이프 한 번.

폼 앱을 찾았다.

아이콘을 누르려 오른손 집게손가락을 펴다가 멈췄다.

좀 더 기다릴까,
지금 누를까.

선 채 미세하게 떨리는 손가락 끝을 잠시 내려다봤다. 편 손가락을 허공에서 까딱까딱 까딱.

어금니를 살짝 한번 깨물었다.

눌렀다.

가로로 긴 연한 초록색 ‘결과 확인’ 네모가 보인다. 터치.

'총 참여 1명'

깊은 숨을 길게 빨아들였다.

공기가 미세하게 떨리는 것 같았다.

안도일까.


그때도 봄이었다.

2023년 3월 11일 토요일. 독서 모임을 만들고 첫 북클럽을 연 날이다. 그해 2월 네이버 밴드에 대책회의를 개설하고 주변 인연들에게 함께 책 보자고, 가입 좀 하라고 떠들고 다녔다. 독서를 좋아하고 말고는 중요하지 않다고 설득했다. 당분간은 밖에서 보이는 숫자가 중요했다. 회원은 대충 열댓 명이었지 싶다. 이제 첫 독서 모임을 열어야 하는데 아무도 안 올까 겁이 났다. 차일피일하는 새 날짜는 따박따박 흘러 월말이 코앞이었다. 달을 넘길 수는 없지. 더는 미룰 수 없을 때 겨우 책 소개와 참가 신청 공지를 만들어 밴드에 올렸다.

거의 매 시간 투표 인원을 확인했다.

0,

0,

0,

모임 날짜 임박해서야 겨우 1이 떴다.

기록을 찾아보니 나 포함 6명이 참석했다.

전화, 카톡으로 독려를 했지 싶다.

그제야 안도하며 등근육이 풀리며 입꼬리가 올라가던 기분이 새삼스럽다.

겨우 네이버 폼 하나 확인하는데 숨이 가늘게 떨리던 오늘 아침에 이르기까지 긴 여정의 시작이었다.


어제는 북카페 출근한 한 시부터 다섯 시까지 낯선 도구인 칸바와 네이버폼을 붙들고 씨름했다. 공지글과 이미지 쓰고 만드는 것도 시간 잡아먹는 하마였다.

속엣말인지 입밖에 낸 소린지 헷갈리지만, 분명 내 귀에는 들리는 소리로 '완성'을 외치고 노트북 시계를 보니 다섯 시 반이었다. 이제 더 고칠 재주가 없다. 지금의 최선이다.

앉은 채 두 팔을 쭉 뻗어 기지개를 켜고 화장실에서 찬물 세수를 했다.

거울에 비친 얼굴은 연분홍빛이었다.

26명이 참여했던 지난 1월의 ai 특강을 단발성 예외로 치면 이번 글쓰기 4주 클래스가 대책회의 첫 유료 프로그램이다. 이번 토요일인 3월 7일 오후 두 시가 첫 세션이고 8명이 정원이다.

3일 남겨 놓고 게시물을 올린다.

너무 늦은 건 아닐까 싶지만, 지금은 어쩔 도리가 없다.

5시 45분에 시작해서 9시 반까지 스레드, 인스타, 카페, 밴드에 차례로 올렸다.

네이버 폼 링크 붙이는 방식이 다 달라서 좀 버벅거렸지만, 드디어 시작은 했다.


3월 6일 금요일.

늦은 오후까지 더는 신청 알림이 없었다.

1명.

신청서에 2명 이상 시작이라고 썼다. 첫 시도이기도 하고, 날짜가 임박하기도 해서 그랬다.

의자에서 일어나 스트레칭을 했다.

팔과 등이 풀어졌다.

'하자.'

큰 숨을 내쉬며 작게 중얼거렸다.

참 고마운 사람이네.

덕분에 시작은 하게 됐잖아.

가슴에 산들바람이 불었다.

즐겁게 할 수 있겠다.


시작은 늘 1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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