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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지현 Jun 10. 2021

"처음"을 함께한다는 것

바보의 여정


 지금 잇다름에서는 어쩌다 백화점』,  마치 우울하고 예민한 내가 죽기라도 바라는 것처럼』 텀블벅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어쩌다 백화점』은  이제 펀딩이 시작한 지 열흘을 갓 넘겼고, 『마치 우울하고 예민한 내가 죽기라도 바라는 것처럼(이하 '우울 에세이')』은 어제저녁에 펀딩을 시작했다. 오픈 후 아직 열 시간도 되지 않았다.


 이제 막 숨을 돌렸다. 그간 책 준비로 브런치에는 글 하나만 올리고 소홀했으니, 당분간은 그간 느꼈던 감상을 좀 더 자주 정리해보려고 한다. 이 느낌을 잊기 전에.








내 작은 사무실 겸 집. 주중에는 여기서 지내다 주말이면 본가로 돌아간다. 사진은 텀블벅 론칭 준비를 마무리한 후 잔뜩 어질러진 상태.



모두 처음인데요


 『어쩌다 백화점』의 우듬지 작가님과 『마치 우울하고 예민한 내가 죽기라도 바라는 것처럼』의 정하 작가님 두 분 모두 이번이 첫 번째 출간이다.


 우울 에세이는 언급했던 것처럼 지난겨울 계약을 마쳤는데, 당시 일하던 출판사에서 하던 일이 아직 마무리되지 않아 차일피일 미뤄졌다. 결국 계절이 두 번 바뀌고 여름이 되어서야 펀딩을 열게 되었다. 정하 작가님은 도서 마케팅을 위해 한두 달 전부터 다시 제주도로 내려가 계신다. 책 안에서 우울을 직면하는 배경이 되었던 곳이다. 아마도 출간이 마무리될 때까지 쭉 계실 듯하다.


 어쩌다 백화점의 우듬지 작가님과는 마침 작가님이 직접 독립출판을 준비하시던 시기에 연이 닿았다. 잇다름을 열기로 마음먹고 어디 좋은 글이 없을까 하며 브런치를 보고 있던 중 마주쳤던 글이 인연이 되었다. (작가님 브런치) 지금 작가님은 생업을 잠시 그만두시고, 작가로서 삶을 꾸려나갈 수 있을지를 올 한 해 동안 시험해보려 하고 계신다.


 그리고 나도, 혼자서 이 모든 일을 꾸려가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그래도 다행히 초보 출판사 사장 치고는 운이 좋은 편이다. 졸업 후에 소규모 출판사에서 일을 해보면서 대강 출판사 운영이 어떻게 진행되는지 배웠으니까. 어찌 되었건 모든 것이 처음이니 그만큼 많이 공부하려 한다. 기회가 있을 때마다 진흥원 강의를 듣고 온갖 지원사업을 찾아보고 샤워할 때에도 도움이 될 만한 책들을 오디오북으로 듣는다. (조금 오버해봤다. 매일 그러진 않는다.) 아직도 미숙하지만 그래도 할 만하다 느끼고 때때로 즐겁기까지 한 건 이게 내가 원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타로카드 0번, ‘바보’

출처: 위키피디아 ‘The Fool’ 항목

 타로카드의 첫 번째 메이저 아르카나는 ‘바보’다. 이 카드는 보통 시작, 자유, 미숙함, 유희적임 등으로 해석한다.


 바보 카드는 모든 카드의 시작점이다. 어딘가에서는 22장의 메이저 아르카나를 ‘바보의 여정’이라고 보기도 한다. 바보가 여행을 떠나, 뒤이어 오는 모든 카드들을 겪고 결국 완성된다는 것이 그 내용이다.


 이 카드는 보통 어디서도 그리 좋은 대우를 받지는 못한다고 한다. ‘시작점에서의 자유’라는 말에는 무계획적이라든가 즉흥적이라는 키워드가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모든 미숙한 것들이 그렇듯 실수를 하기 쉽다. 심지어는 그림에서도 그렇다. 잔뜩 흥이 올라 보이는 바보의 앞에는 낭떠러지가 있지만 그는 그걸 전혀 모르고 벼랑으로 걸어가고 있다.


 그러나 이 카드는 무한한 가능성과 희망을 뜻하기도 한다. 가진 것은 저 보따리 하나밖에 없어도, 그는 목표를 위해 떠나기로 결심했다. 바보의 발걸음은 가볍다.


 그리고 저 카드에서 나는 내 모습을 본다. 자본도 규모도 인지도도 없이, 바닥부터 차근차근 모든 것을 쌓아 올리는 모습(약간 슬퍼진다), 그리고 앞길이 어떤 지는 알 수 없어도 길을 떠난다는 사실 자체에 흥이 올라 있는 모습을.








『마치 우울하고 예민한 내가 죽기라도 바라는 것처럼』 리워드로 제작한 패브릭 포스터. 온갖 시행착오 끝에 만들었는데 기대보다 예쁘게 나와서 볼 때마다 뿌듯하다.


 초등학교 때 관심이 가던 친구한테 편지를 쓴 적이 있다. 밸런타인데이 때 초콜릿과 함께 편지를 줬는데, 돌이켜봐도 나는 그때만큼 진심 어린 편지를 다시 쓸 수는 없을 것 같다. 수 일 동안 단어 하나를 골랐고 그 모든 단어가 '나의' 진심을 전달하는 것이기를 바랐다. (그 친구는 당황스러웠을지도 모르겠지만)


 나는 처음 시작하는 우리가 그렇게 온 힘을 쏟아낸 책을 만들 수 있을 것이며 또 그게 강점이 될 거라 생각한다. 작가의 혼이 담긴 책, 한 글자 한 글자를 꾹꾹 눌러쓴 책 말이다. 그래서인지 지금 두 프로젝트 모두 아주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다. 어쩌다 백화점은 짧은 시간 동안 목표액의 76%를 달성했고, 우울 에세이는 몇 시간 만에 83%를 달성했다.


 나는 사람의 열정은 결국 상대방에게도 느껴진다는 순진할지도 모르는 믿음을 아직 갖고 있다. 그리고 문화의 영역에서는 이것이 절반 정도는 진실이라고 생각한다. 책이건, 음악이건, 공연이건, 다 그렇다. 내면을 쏟아내는 이 분야에서는 창작자의 열기가 직설적으로 드러날 수밖에 없다.


 좋은 책이 어떤 책인지에 대한 의견은 분분하지만 나는 '작가가 스스로 생각하기에 진실인 문장의 비율이 많은 수록 좋은 책이다'는 입장이다. 외부 시선을 위해 억지로 쓴 글이 아닐 것. 내면에서 끌어올린 가장 솔직하고 오래 끓여 온 글일 것. 이게 최근 글을 평가하는 내 기준이다. 특히 에세이에서는 더 그렇다. 솔직하지 않은 글은 결국 독자에게도 피부로 느껴진다.


 작가님들은 지금 이 책에 많은 것을 걸고 계신다. 우듬지 작가님도, 정하 작가님도 마찬가지다. 첫 번째 글이라는 애착이 크니만큼 정성을 잔뜩 쏟고 있다. 나도 마찬가지다. 출판사의 첫 책은 보통 그곳의 얼굴이라고들 부른다. 부디 끝까지 이 에너지가 소진되지 않고 또 후회 없이 마무리지을 수 있기를 바란다.








▶ 작가가 되려는 여자의 백화점 근무일지, 『어쩌다 백화점』 : https://tum.bg/qCblCL


▶ 가장 날것의 우울 탐방기, 『마치 우울하고 예민한 내가 죽기라도 바라는 것처럼』 : https://tum.bg/jZIjE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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