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왕별희의 주인공 초패왕 항우
첸카이거 감독의 <패왕별희>를 정말 좋아한다. 근대로 접어들던 시기의 중국 분위기를 좋아하고, 5세대 감독들의 영상을 좋아하고, 장국영의 아름다운 연기를 좋아한다.
<패왕별희>는 서글픔이라는 정서를 영화로 만든 것 같다.
영화에선 전통의 명맥을 이어나가던 두 경극 배우가 역사적 조류에 휘말리며 겪는 개인적 비극이 시대의 비극과 맞물려 표현된다. 역사는 사회적이며, 동시에 개인적이다.
청나라가 그렇게 쓰러질 줄은 또 누가 알았겠으며, 항우는 또 그렇게 죽을 줄 누가 알았겠는가. 영웅이 황제가 되지 못하면 죽음뿐이요, 국가가 국제 정세에 밝지 못하면 쉽게 도태된다. 개인은 역사 앞에 풍전등화와 같다. 이래서 사람 일은 한 치 앞도 알 수 없다고 하나보다.
여기에 항우의 <해하가>까지 들으면 쓸쓸함이 더해진다.
力拔山兮氣蓋世 힘은 산을 뽑고 기세는 세상을 덮는데
時不利兮騅不逝 때가 불리하니 오추마가 나아가질 않는구나
騅不逝兮可奈何 추가 나아가질 않으니, 어찌하면 좋겠는가
虞兮虞兮奈若何 우야, 우야 너를 어찌하면 좋겠는가
자신의 시대가 끝났음을 직감한 항우가 사랑하는 우희를 두고 이 노래를 읊었을 때 어떤 심정이었을지 생각하면, 숙연해지기까지 한다. 사람은 나 하나보다도 주변의 아쉬운 사람들 때문에 또 꾸역꾸역 살아가지 않는가. 이런 마음을 알아챈 우희가 답가를 부르고 먼저 자결했을 때 항우는 자신을 탓하면서도 후련했으리라.
가만히 생각해보면 역사에서 승자는 유방인데, 왜 사람들은 이토록 항우를 그리워하는 걸까?
항우의 영웅적 면모 때문에? 그것도 아니면 그토록 뛰어난 사람이었음에도 짧게 살다 간 것이 못내 아쉬워서? 그렇다면 홍문연에서 유방을 그렇게 보내버린 항우의 어리석음은 왜 탓하지 않는 걸까? 유비는 촉한을 이은 영웅이 되었는데, 유방은 상대적으로 항우에 밀린다.
어쩌면 전쟁과 권력 투쟁, 역사 이야기를 주로 소비해왔던 남성 감상자들의 취향이 반영된 것일지도 모르겠다. 젊고 강했으며 아름다운 여성을 사랑했지만, 시류를 잘못 만나 비극으로 끝맺은 소위 '사나이'의 일생을 보며 눈물을 훔쳤을 지도.
또 어쩌면, 유방보다 아내 여태후가 더 유명해서일지도 모른다. 영웅은 죽음으로 완성되는 것이니 말이다. 죽음은 많은 것을 미화한다. 사라진 것에 대한 아쉬움이 작용한 탓일 터다. 영웅은 특히 더 그렇다. 영웅은 죽어야만 한다. 현실적인 문제들도 당연히 작용했겠지만, 아이언맨은 죽음으로써 진짜 영웅이 되었다. 황제가 된 영웅은 매력이 없다.
<패왕별희>의 데이는 우미인과 같은 길을 걷는다. 샬로를 향한 마음을 이기지 못해, 경극 배우들의 목을 조여 오는 새로운 중국을 견디지 못해 자결한다. 패왕 항우의 역을 맡은 샬로가 그렇게 아끼던 검으로 말이다.
장국영과 데이에 몰입해 그동안 샬로를 돌아보지 않았다.
샬로는 자존심이 강해 사람을 답답하게 만들고, 때로는 자만에 도취되기도 하는 아주 보통의 사람이지만 노력하는 사람이었다. 어떻게든 경극 배우로 성공하고자 노력했고, 결혼 생활을 이어나가면서 경극 파트너인 데이와도 균형을 잡기 위해 애썼다. 죽음 앞에선 자신을 지키기 위해 그간의 삶을 통째로 배신했다. 자신의 전부라고 할 수 있는 데이와 경극, 아내를 부정하고 보잘것없는 몸뚱이를 지켜냈다.
그날 부로 샬로의 영혼은 죽었다. 살기 위해 간사한 선택을 했다는 비난을 받았지만, 샬로에게 쉬운 선택은 아니었을 것이다.
난관 앞에 항상 샬로와 다른 선택을 하던 데이는 마지막에도 샬로와 다른 길을 택했다. 샬로가 그렇게 아끼던, 자존심과도 같았던 그 검으로 자결했다. 우미인과 항우로 오랜만에 선 무대에서 자결하는 데이를 보며 샬로는 어떤 생각을 했을까. 항우의 삶에 비춰 본다면, 죽은 것과 마찬가지인 나머지 생을 살았을 것이다.
항우도, 샬로도 미워할 구석이 많은 사람이다.
그럼에도 항우는 미워할 수 없는 영웅으로 남고 샬로는 원성을 듣고 있는 이유는 죽음 앞에서의 태도가 달랐기 때문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