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2, 3으로 읽어 본 삼국지

나는 왜 제갈량보다 주유가 좋은가

by 승원

우리는 늘 책 앞에서 빚쟁이가 된다. 책은 종이라는 낡고 정적인 물체 안에 갇힌 활자들로 이루어진 무엇일 뿐인데 말이다. ‘읽어야 하는데…’만 반복하다가 서점에서 어쩌다 책을 사는 날엔 지성인이 된 느낌을 만끽하기도 한다. 그러다가도 노벨문학상, 맨부커상, 세계문학의 거장, 고전 같은 거대한 이름을 가진 책들 앞에 서면 다시 초라해진다.


삼국지 역시 우리를 쪼그라들게 만드는 책이 아니었던가. 마니아들이 꼭 한 마디씩 얹는 책이자 대학 논술 시험을 보려면 꼭 읽어야 한다며 집집마다 소장했던, 그런데 너무 길어서 도저히 다 읽지는 못했던 그 책. 마치 삼국지를 모르는 사람은 지성인의 반열에도 들지 못할 것 같은 분위기까지 조성됐었다. 그런데 명성에 비해 다 읽은 사람은 정말 없는 책, 그게 삼국지다. 그 와중에 진수가 쓴 정사(正史)가 ‘삼국지’, 소설은 ‘삼국연의’인데, 어쩐지 우리나라에선 아직도 그냥 ‘소설 삼국지’다. 어쨌든, 읽어야 할 것 같긴 한데 엄두는 안 나는 이 ‘삼국지’를 좀 더 심플하게 읽을 수는 없을까? 하나. 둘. 셋까지 세는 데는 인내심이 바닥나지 않으니, 이 숫자들로 삼국지를 읽어 봤다.


3, 불안정한 삼각 구도의 안정성


위-촉-오 삼국의 이야기라는 제목부터 위, 촉, 오를 대표하는 조조-유비-손권, 유비의 삼 형제 유비-관우-장비, 제갈량의 천하삼분지계까지, 삼국지는 3이라는 숫자를 알뜰하게 사용한다. 3이라는 숫자는 짝을 이루지 못하기 때문에 불안정하고, 견제와 갈등이 필연적으로 생겨난다. 둘 사이에는 경쟁과 협력이라는 두 가지 관계만 형성되지만, 제삼의 존재는 변수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이는 연맹과 대립 구도를 다각화한다. 그럼에도 삼국지의 삼각 구도는 톱니처럼 맞물리며 균형을 잡아간다. 역사 소설이니만큼 작가가 삼국 구도를 의도적으로 만든 것은 아니지만, 소설화하는 과정에서 적당한 재미를 부여하는 데 활용하기 충분한 요소다.


유관장 삼 형제는 안정적인 삼각 구도를 이룬다. 유비와 관우, 장비는 강한 개성을 가진 사람들이지만, 아귀가 꼭 들어맞는 팀워크를 보인다. 장비의 불같은 성정은 유비와 관우가 눌러주었고, 둘째 역할을 맡은 관우는 장비와 유비 사이에서 무게중심이 되었다. 두 아우는 대의와 명분으로만 움직이려는 유비의 뜻을 헤아려 행동으로 지지했다. 그러나 이 세 사람 사이에 제갈량이 들어오면서 안정적이었던 삼각 구도가 처음으로 깨졌다. 제갈량의 수를 읽지 못하는 관우와 장비는 유비의 책사에게 답답함을 느꼈고, 제갈량은 이를 알면서도 친절히 설명하지 않았다. 유비가 제갈량과 전략을 짜는 데 집중하는 동안, 두 아우와 유비 사이에는 조금씩 균열이 생겼다. 원래의 삼각 구도가 깨어질 정도의 틈은 아니었지만, 관우가 죽은 후 셋은 무너져 내렸다. 유비 곁에는 여전히 삼각형을 그릴 수 있는 제갈량과 조자룡이 있었지만, 유관장의 삼각 구도만큼 견고하지 않았다. 유비가 주인공인 것 같은 이 이야기에서 관우의 죽음은 삼국지가 세 사람의 이야기였다는 걸 알려주었다. 불안정한 듯 보였던 3이 오히려 더 완전했다.


2, 여전히 우리는 승부에 목숨을 건다


‘어찌 주유를 낳고 제갈량을 낳으셨습니까!’


삼국지에서 제일가는 미남 주유는 제갈량을 이겨보지 못하고 죽었다. 오나라의 훌륭한 장수이자 지략가였지만, 제갈량과의 대결 구도 속에서 주유는 완전한 패자였다. 아이러니하게도, 적벽대전에서 만난 두 사람은 동맹 관계였다.


적벽대전은 세 나라가 한자리에 모여 전투를 치르고 있음에도 두 진영의 싸움처럼 보인다. 조조와 촉오 동맹의 싸움, 혹은 주유와 제갈량의 경쟁 구도 등 ‘2’라는 숫자가 더욱 돋보이는 것이다. 주유와 제갈량은 제갈량이 <동작대부(銅雀臺賦)>를 읊은 이후에나 만난다. 제갈량은 손책과 주유를 도발했고, 결국 주유는 전쟁판에 끼게 되었다. 이 순간부터 독자들은 주유가 제갈량의 농간에 놀아나는 과정을 지켜보게 된다. 물론, 주유도 지략가이기에 제갈량의 계책을 곧잘 알아채기는 한다. 제갈량보다 한발 늦게 알아채는 ‘패자’의 모습이 완연하지만 말이다. 그리고 이를 알아챈 주유는 손권에게 적벽대전 참전 의사를 밝히고 돌아서자마자 제갈량을 죽이겠다고 결심한다. 노숙이 주유를 만류하지만, 주유 끊임없이 시도하고 실패한다. 불같은 성정의 주유가 번번이 제갈량에게 패하는 이 부분은 고도의 지략이 오가고 주유의 심리가 고조되면서 흥미를 더한다.


그런데 주유의 연이은 패배는 독자가 ‘감히’ 주유를 동정하게 만든다. 이인자는 나와 비할 수 없는 영웅이지만, 쉽게 동일시되기 때문이다. 처절한 패배감과 좌절의 고통으로 얼룩진 이인자는 완벽한 승자와는 달리 ‘나’와 닮아있다. 완벽한 승자인 제갈량은 군주에게 충성을 다하고 어떠한 위험에서도 빠져나갈 수 있는 지략이 있으며, 다른 재주 없이 뛰어난 두뇌 하나로 상대방을 압도한다. 그뿐인가. 제갈량은 성실함까지 겸비하여 수많은 서적과 자연의 이치를 꿰뚫는다. 신격화된 제갈량은 우리의 존경은 받을지언정 공감은 얻을 수 없다. 대부분의 독자, 그러니까 ‘찌질한’ 우리는 주유의 열등감과 질투, 패배감을 누구보다 잘 안다. 그의 강렬한 질투는 최선을 다한 자만이 경험할 수 있는 감정이라는 것까지. 외마디 비명을 지르고 36세의 젊은 나이로 생을 마감한 주유를 우리는 동정할 수밖에 없다.


1, 그래서 승자는 누구인가


삼국지를 다 읽고 나면 이상한 기분이 든다. 분명 시작에선 유비가 주인공인 것 같았는데, 제2의 동탁 같은 조조가 더 넓은 땅을 차지할 것만 같았는데, 제갈량이 천하를 통일할 것 같았는데 마지막에 남은 사람은 아무도 없다. 유비는 모자란 아들을 두고 죽어버리고, 조조도 사마의에게 잡아먹힐 것만 같은 자식만 두고 떠난다. 어려서부터 영특해 한참 어른이었던 조조, 유비와 견줄 만큼 강했던 손권도 유비와 조조가 죽고 나서는 빛이 바랜 별처럼 존재감이 희미해진다. 난세에 혜성같이 등장했던 이 영웅들은 어디로 간 걸까. 출사표를 던진 제갈량의 마음도 이토록 처량했을까 싶을 정도로 삼국지의 끝을 보는 건 쓸쓸한 일이다.


그럼에도 역사는 이어진다. 사마의를 그토록 경계하던 조조의 안목은 정확했다. 위나라와 진나라, 남북조 시대를 지나 수나라가 천하를 다시 통일하며, 중국은 당나라의 영화로움을 맞이할 준비를 한다. ‘삼국지’의 첫 문장은 ‘삼국지’를 닫는 문장이 된다.


천하는 무릇 합쳐진지 오래면 반드시 분열되고, 분열이 오래되면 반드시 합쳐진다.

天下大勢, 合久必分, 分久必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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