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에선 공자님을 불러

『중용』

by 승원


회사 생활은 역시 쉽지 않다.

대학원 생활도 만만찮긴 했는데, 성격이 좀 다르다.


대학원에서는 드러내지 않아야 하는 덕목이 필요해서 몰라도 모른 척 알아도 모른 척하는 처세술로 일관했지만 회사에서는 그때그때 적절한 피드백을 보여주어야만 한다. 좀 더 즉각적이고 확실한 태도를 요구한다. 그렇지만 속내를 드러내기 싫을 때도 있고, 이렇지도 저렇지도 않을 때도 있다. 생각이 없는 것이 아니라 너무 많아서 지금 속단하고 싶지 않을 때는 더더욱 많다. 그렇지만 내 편 네 편이 중요한 회사에선 마음의 준비가 되기 전에 묻곤 한다.


"그래서 승원씨 입장은 어떤데요?"


이렇게 훅 들어오면 전 학생이라 모르겠어요, 하고 순진한 척하며 여쭤볼 선생님도 없고 야 넌 뭐라고 할 거야, 하고 붙잡을 친구도 없다. 어디론가 SOS를 보내고 싶은데 어디에 보내야 할지도 모른다. 이럴 땐 좀 꼰대 같아도 세상 사는 법 구구절절 알려주는 공자님이 최고다.


나는 필요에 따라 고전 작품을 꺼내보곤 하는데, 회사 생활에서 난감해지면 주로 공자님을 소환한다. 영웅들이 등장하는 소설에서 처세술을 찾기엔 난 아직 '장군'의 지위까진 오르지 못한 것 같고, 신화나 환상 소설을 꺼내보기엔 나와 좀 동떨어진 느낌이다. 이 작품들도 결국 다 현실에 기반해 있지만 급할 땐 보이지 않는다! 그렇다면 어른들의 정서에도 맞으면서 가장 무난하고, 이천 년 전 사람이긴 하지만 맞는 말만 한 공자님이 제일 낫다. 며칠 전에도 공자님의 지혜를 빌려보고자 뒤적이다가 예전에 다이어리에 적어 둔 메모를 발견했다. 놀랍게도 2년 전의 나는 공자님이 말한 강한 사람에 대한 글에서 깨달음을 얻었던 모양이다.


너그럽고 부드러움으로 상대를 교화하고 무도한 자에게 보복하지 않음은 남방의 강함이다. 군자는 이곳에 머문다. 병기와 갑옷을 두르고 죽어도 타협하지 아니하니 이는 북방의 강함이다. 강한 자는 이곳에 머무른다. 군자는 화합하면서도 흐르지 않으니, 강하고 굳세다. 가운데 서서 치우침이 없으니, 참으로 강하다.


화합하면서도 흐르지 않고 가운데 서서 치우침이 없는 사람이라니. 더 힘들다. 그래도 생각해볼 수 있는 점은 무작정 누구의 편을 들지 않고 내 생각을 지키되 다른 사람들과 잘 섞여 지내는 것이 좋겠다는 것이다. 두루뭉술하긴 한데, 그래도 누가 나한테 '흐르지 말고 가운데 서'있으라고 하니까 좀 안정이 된다. 내가 가만히 있는 것도 아니고 입바른 소리만 하지도 않는, 그런 중간 지점에서 타협이 아닌 화합을 해내야 한다. 비겁하게 침묵하지 않으면서도 상황을 깨지 않을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쉽진 않겠지만 이런 어른이 되어보려는 시도 정도는 해볼 수 있겠다 싶다.


예전에 대학에서 교수님이 20-30대엔 도덕경과 맹자를 읽고 40-50대가 되면 논어를 읽어보라고 하신 적이 있었다. 그런데 이제 막 서른에 접어든 나도 공자님의 도움이 좀 필요하다. 내가 회사에서 마주하는 사람들은 논어를 읽어야 하는 나이대의 사람들이라 그런가. 제사만 좋아하는 것 같은 공자님도 내 인생에 도움이 될 때가 있긴 있다.


어른다운 어른을 가까이에서 만나기 힘든 요즘, 나는 회사에서 힘들 때 공자님을 부른다. 이천 년 전 어른이 한 말 들으면 기껏해야 삼십 년 더 산 사람들한테도 통하겠지 뭐, 하는 생각으로. 그래도 너무 자주 부르고 싶진 않다. 좋은 말을 많이 하시긴 했지만 아무래도 자주 듣고 싶은 말들은 아니니까.


휩쓸리지 않는 군자, 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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