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 가장 좋은 때

두보의 「춘야희우」

by 승원


막연히 현대 의학은 더 이상 발전할 것도 없을만큼 인류는 질병을 지배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게 무슨 일이람. 코로나19가 이렇게까지 우리의 일상을 바꿔놓을 줄은 몰랐다. 드라마 <허준>에 나오던 역병이나 흑사병은 과거의 두려움일 뿐이라고 생각했는데, 인간이란 여전히 이토록 나약한 존재들이었다. 천재지변에 가까운 일을 겪으며 우리는 삶의 양식이 빠르게 변하고 있음을 매일 피부로 느낀다. 나부터도 사는 모양이 완전히 바뀌었다. 원래 계획대로라면 2021년에 미국으로 유학가기 위해 논문도 쓰고 영어 공부도 하며 고군분투하고 있어야 할 지금, 아침마다 늦지 않으려 환승통로를 달리는 직장인이 되었다.


처음엔 이 사태가 오래가지 않을 것이라 생각해서 나름대로 영어 공부도 하고 논문 제목도 정해두고 그랬다. 전염성이 높을 뿐이지 치사율이 높은 그런 병이 아니라고 했으니까, 우리는 사스도 메르스도 이겨냈으니까, 의료 종사자들은 누구보다 똑똑하니까. 금방 '정상화'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힘들게 석사과정을 마치고선 졸업식도 못 했지만, 그래도 갑자기 닥쳐온 공포와 당혹감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나는 아직 공부하고 싶은 것이 많았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유학을 포기했다. 뉴스에 보도되는 미국의 상황은 심각했으며 중국은 말할 것도 없이 위험했고 집안의 경제 상황도 힘들어졌다. 10년 동안 하고 싶은 것을 찾겠다며 이것 저것 시도하는 동안 다른 가족 구성원들이 기울어가고 있었다는 것이 그제야 보였다.


취업하겠다고 마음 먹은지 한 달도 지나지 않아 나는 직장인이 되었다. 이런 시기에 취업이라니 승원이 너 대단하다, 라는 말을 듣기도 했지만 기쁘진 않았다. 서른 살에 내 인생이 끝난 것 같았다. 일을 시작했다는 것이 내게는 꿈을 포기하고 돈을 벌기 위한 차선책에 불과하다고 여겨졌다. 거창하게 꿈이라고 할 것도 아니었으면서 이젠 나에게 의미있는 것들이 사라져가는 기분이었다. 나 스스로가 내 삶의 변두리로 밀려난 느낌이랄까. 무기력해졌다.


내가 중간에 헤매지 않고 진작에 대학원에 진학해서 지금쯤 친구들처럼 석사가 아니라 박사 과정을 수료한 상태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을 해보지 않은 것도 아니다. 좀처럼 시간을 되돌려 후회하는 일을 하지 않는 내게도 타임리프가 간절해졌다. 회사를 다니면서도 대학 근처에 기웃거려보기도 했다. 그런데 이제는 대학도 언제 사라질지 모르겠다는 이야기를 들으며 내 길이 좀 더 명확해졌다. 내가 떠밀려 나온 것이 아니라 내가 그 길을 가지 않기로 선택한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는 여지가 생긴 것이다. 학계에 남는 것 외에는 길이 정말 없는 이곳에서 너무 늦지 않은 나이에 길을 틀 수 있게 된 것이, 아주 어쩌면 코로나19가 바꾼 나의 삶이 훗날 나에겐 행운일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좋은 때에 일어나는 좋은 일이라는 게 무엇일까. 인생지사 정말 새옹지마인데. 몇 안되는 두보의 낭만적인 시 '춘야희우(春夜喜雨: 봄 밤의 기쁜 비)'가 생각났다.


好雨知時節 좋은 비는 시절을 알아
當春乃發生 봄이 되어서야 이내 내리네.
隨風潛入夜 바람 따라 밤에 찾아 드니
潤物細無聲 만물을 적시네, 소리도 없이.
野徑雲俱黑 길을 지나는 구름은 온통 어두운데
江船火燭明 강가에 놓인 배는 불이 밝구나.
曉看紅濕處 새벽녘 붉게 젖은 곳을 바라보니
花重錦官城 금관성에 꽃들은 아름답게 피어있는데.


비는 우리에게 반가운 소식으로만 다가오진 않는다. 인간은 물 앞에서도 무력하다. 그래도 봄에 내리는 비는 만물을 생장하게 하고 죽음에서 생명을 이끌어내며 언 것을 녹인다. 언젠가, 누군가에게는 위협적일 수 있는 비가 이 때에는 반가운 소식인 것이다.


우리는 시간을 직선으로만 경험할 수 있기에 가장 좋은 때, 가장 좋은 선택이 무엇인지 알 수 없다. 그저 선택하며 살아갈 뿐. 내 삶에 우연히 일어나는 이 모든 일들이 그래도 좋은 때에 찾아온 것이기를 바랄 뿐이다.


나는 죽을 때가 되었을 때 스스로 그래도 이만하면 열심히 살았다- 하고 날 칭찬해주고 싶다는 소망이 있는데, 그게 어떻게 살아야 느낄 수 있는 감정인지는 모르겠다. 예전에 아르바이트를 다녀 오다가 버스에 치인 적이 있었다. 흔히 들어왔던 것처럼 인생의 지난 날들이 주마등처럼 스쳐지나가는 일은 없었지만 '아, 이렇게 죽기엔 억울한데'하는 생각이 들긴 했다. 내가 원하는 무엇인가를 계속 미래로 미루고 있었단 뜻이었겠지. 아마도 내게 대학원에 다니며 공부하는 그 시절이 미래의 행복을 담보로 한 꽤나 힘든 여정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지금에 와서 하는 이런저런 생각은 결국 현재의 나를 위로하고 정당화하기 위한 것들 뿐이다. 이것이 내가 스스로를 지키기 위한 방편일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지금 이 사태가 나에게 그저 재앙이라고 생각하고 싶진 않다. 내가 생각했던 나의 미래엔 지금과 같은 삶이 한 번도 등장하지 않았지만, 이 안에서 나름대로의 의미를 찾아가고 싶다. 삶은 그저 살아가는 것 자체로도 힘겹기에 살아낸다는 데에도 의미가 있긴 하지만 아직은 더 갈구할 것들이 남아있는 모양이다.


이젠 무력감에서 벗어나 변화무쌍할 내 미래를 기대하며, 부지런히 읽고 쓴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