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자 내편, 양생주
꽤 비슷한 길을 걸을 것만 같았던 대학 동기들도 뿔뿔이 흩어졌다. 비슷한 또래에 같은 단과대에서 비슷한 전공을 했으니 먹고 살 길도 비슷할 줄 알았는데 같은 회사 다니는 녀석이 하나 없다. 그래서인지 오랜만에 대학 동기들끼리 만나면 처음엔 서로 나이 든 티가 난다며 놀리다가도 미래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 미래라는 단어는 좀 희망차 보인다. 진로라고 하는 편이 맞겠다.
다들 자기가 다니는 회사가 왜 별로인지 왜 이직하고 싶은지, 가볍게 하는 이야기인 척 꽤나 진지한 이야기를 꺼낸다. 그리고 그 이유의 99.9%는 "10년 뒤에 우리 팀장처럼 살기 싫어서."다. 그 뒤에 이어지는 말은 저렇게 피곤하게 살고 싶지 않고, 무엇보다 그 사람이 존경스럽다거나 부럽지가 않아. 이 회사에서 나 성장할 수 있을까? 이다.
나 역시 그런 생각으로 대학원에 진학했었다. 연구를 하면 내가 하고 싶은 공부를 계속하면서 내적 성장을 이룰 것이라 생각했다. 물론 그 과정은 경제적으로 고달프겠지만 그래도 나라는 사람이 계속 변화할 수 있어 늙지 않는 직업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힘들다고 느껴질 때에도 늘 새로운 것에 적응하려고 하는 교수들을 보며 이만하면 젊게 사는 것이지, 꿈을 계속 갖고 살 수 있네- 하고 위안을 얻었다.
그런데 그들을 점점 더 깊이 알아갈수록 빛바랜 사진 속의 청춘처럼 유효기간이 지나버린 낭만을 끌어안고 사는 것은 아닐까, 사실 이것도 피터팬 콤플렉스 아닌가 하는 의문이 스치는 것이다. 그렇다면 다른 직업을 가진 어른들은? 그들은 꿈을 갖고 살까? 만화 <미생>을 봤을 땐 직장인들은 더 슬프게 살아가던데. 혼란에 빠졌다.
그러던 중에 결국 회사원이 된 나는 사춘기 소녀처럼 한꺼번에 밀려드는 의문에 허우적대야 했다. 청춘과 젊음은 다양한 미래를 그릴 수 있어서 빛났는데, 그럼 어른이라는 존재는 어떻게 해야 빛날 수 있을까. 남들과 같이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사회인이 되면 결국 다 시들어버리고 마는 걸까. 그렇다면 나는 그 희미한 빛이라도 지켜보려고 지금까지 어른이 되기를 미뤄오다가 이제야 내 삶을 마주한 걸까. 이제 나는 어떤 미래를 그려야 할까. 무엇을 하면서 행복해야 할까. 이런 질문들에 끝없이 시달려야 했다. 내 인생의 변곡점에 도달해서 평평하고 밋밋하기 짝이 없는, 매너리즘의 구간으로 접어든 것 같았다.
그러자 우리 팀장님과 부장님이 새로 보였다. 저들은 어떤 동력으로 이 재미없는 30대, 40대, 50대를 살아냈을까 싶어서 말이다. 불과 몇 달 전의 나는 이런 생각―사실 사람의 수명은 30, 길어야 40까지라서 그 이후엔 별 볼일 없는 여생에 불과한데 의학 기술이 너무 발달해서 우리가 지나치게 오래 살면서 삶을 낭비하는 것은 아닌지―이 들 정도였어서 그들이 대단해 보이기 시작했다.
그래, 근데 언젠가 나 오래된 것의 아름다움에 대해 들은 것 같은데 하는 생각이 들어 오랜만에 장자를 펴보았다. 호접지몽이 그저 내가 나비인지 나비가 나인지 하는 상대주의에 그치는 이야기가 아니라 그 사이에는 분명한 구분이 있다고 그랬던, 그 충격적인 장자. 장자 내편의 양생주에는 포정해우라는 이야기가 있었다. 백정 포정이 문혜군을 위해 소를 해체하는 이야기인데, 음악에 맞추어 칼을 다루는 솜씨에 감명받은 문혜군이 어떻게 이런 실력을 갖추게 되었는지 묻자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
저는 도를 좋아하는데, 이는 기술의 경지를 넘어선 것입니다. 처음 제가 소를 풀어낼 때에는 온통 소만 보였습니다. 삼 년 뒤에는 소의 몸이 보이지 않게 되었습니다. 지금은 제가 신명으로 보는 것이지 눈으로 보는 것이 아닙니다. 감각과 지각 작용은 멈추고 신명이 움직여 소의 자연스러운 결을 따라 힘줄과 뼈 사이를 치고 골절 사이의 빈 곳으로 칼을 집어넣습니다. 소의 본래 그러한 구조를 따르는지라 경락이 서로 이어진 곳과 뼈 사이의 살과 힘줄이 얽힌 곳조차 거리끼지 않거늘, 하물며 큰 뼈는 어떻겠습니까!
꾸준히 오랫동안 한 가지 일을 한다는 것이 이런 것이었다. 지금은 우스워보이는 '장인 정신'이라는 게 있었다. 묵은지와 명창은 오래되어 더 아름다운 것이라던 교수님의 가르침이 지금에서야 위안이 된다. 어른이 된다는 것은 나에게 있는 무엇인가를 꾸준히 갈고닦는 과정이다. 내가 매일 습관적으로 다니는 회사에서 하는 그 업무가 나의 유일한 무기가 될 것인데, 이렇게 뭉툭한 생각으로 살고 있었다니.
나는 태생적으로 매일의 행복량을 채워가며 살 수 있는 사람이 아니다. 나는 장기적인 목표가 없을 때 쓰러진다. 단기 목표들도 장기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징검다리였기에 요즘 방향을 잃은 것 같이 비틀거리고 있었다. 문제는 내 안에 있었다. 30년 간 닦아온 무기는 읽고 이해하고 생각해서 그것을 글과 말로 전달하는 기술이다. 나의 무기가 반드시 최고일 필요도 없고 그럴 수도 없지만, 이 무기를 버릴 수는 없다. '졌지만 잘 싸웠다' 정도는 하고 싶은 것이다.
그러니까 앞으로는 베테랑이 되기 위해 살아봐야겠다. 베테랑은 오랜 세월 동안 열심히, 그리고 잘 살아온 사람에게만 주어지는 타이틀이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