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은 관람차
지하철을 타고 집에 가는 길에 두 사람이 싸운다. 밀어서 그러네, 여자가 또라이 미친년이네 하면서 아저씨가 핏발을 세운다. 여자는 그러지 말아야 한다? 왜 숙이고 들어가 죄송합니다를 해야 하는지 모르겠다. 그 여자분은 같이 내려서 싸웠다. MZ는 참지 않지.
가부장적 사회, 그리고 여자는 애를 낳는 역할만 하는 존재. 그래서 애도 보고 돈도 벌어야 하는 이중적인 역할을 하는 존재. 그게 슈퍼맘이다. 왜 우리 엄마세대는 할머니 세대는 나이가 들어서도 일에서 벗어나지 못할까? 모든 것을 모성애로 보기엔 너무나 화가난다.
세상은 여자를 이질적으로 만든다. 당장에 시집살이조차 동족상잔의 비극이다. 자기는 그렇게 당했으니 너도 당해봐라, 며느리는 남이다, 우리아들이 돈 벌어오는 걸로 먹고 사니까, 내 아들 고생하니, 너도 돈을 벌어야 한다.
나는 기가막히다고 생각한다. 현실의 벽에 부딪혀 어디로든 돈을 벌러 간다. 사랑해서 결혼했는데, 현실은 녹록치 않다. 결혼은 현실이다. 나는 돈 몇억을 모아야 성공, 연애, 결혼, 아이를 출산할 수 있을까? 당장에 몸에 이상이 생겨 아프다면 보험조차 들지 못한 사람들은 죽을날만 기다려야 한다. 나 역시도 사보험비만 수십만원이 나간다. 그 돈을 벌러 오늘도 나선다. 파이어족을 하려다가 파이어를 당하는 일이 나뿐일까?
복지는 어디까지 적용되어야 할까? 태어나면서부터 아빠 엄마는 일을 하러 나간다. 아이는 보육교사 아니면 할머니 할아버지가 양육을 시작한다. 돈을 많이 벌어도 쓸 사람은 하나 더 늘었다. 귀저귀값, 분유값 물가는 올라간다.
한 녀석이 “내여자는 바깥일 안 시킨다.“ 라고 나에게 이야기 한 적이 있다. 여자는 그래야 한다는 생각을 가진 남자애가 나는 좀 우스웠다. 여자는 꿈이 없나? 사회에서 자기 이름자가 사라지는데? 어디까지가 여자가 일을 할 범위인가? 생업이 아니면 일이 아닌가? 모르겠다. 이것이 여유인가?
절충을 해주는 게 육아휴직이다. 여자 뿐만아니라 남자에게도 주어지는 이 제도는 년 수가 정해져있다. 막상 사회에 나오면 육아휴직 대체로 뽑는 자리에 계약직으로 들어가 일을 할 수도 있다. 근데 그것도 경력직만 뽑는다. 기가 막히는 거다. 사회 초년생은 어디서 경력을 쌓으라고.
지금은 58년 개띠가 은퇴하는 세대다. 곳곳에서 1사람이 2-4인분을 한다. 그 자리를 메우려고 경력직을 뽑는다. 사회초년생은 어디서 경력을 쌓으라고.
8시간만 따져도 200부터 시작인데, 실상은 파트로 쓰면서 150수준으로 일자리를 뽑는다. 이른바 알바 돌려막기다. 주휴수당 안 주려고, 주말에 일하는 것도 오전 오후 야간으로 나눈다.
실상 대학교를 졸업해도 대기업에 취직하지 않는 한, 초봉은 200-250수준이다. 360을 불렀던 나는, 애초에 면접에서 제외대상이다. 남들보다 늙은 나는 갈 곳이 정해져 있다. 전문직 바로 그것이다.
나에겐 제빵 제과 양식 자격증이 있다. 거기에 커피까지. 여차하면 튈까 생각하다가, 얌전히 면접을 본다. 나에게도 길이 있겠거니. 나를 원하는 직업은 없는데, 어떻게 해야 할 지 모르겠다. 내가 기댈 곳은 남편이 아니라 내 자신밖에 없다. 아마도 어머니들은 나처럼 그리 여겼으리라. 아마도 아버지들은 나처럼 그리 여겼으리라.
돈을 아무리 풀어도 이 구조적 문제는 투쟁으로 풀리지 않는다. 누군가는 돈을 벌어야 한다. 게으름의 증거가 돈은 아니다. 병으로 아프거나 애초에 기댈데가 없는 어린아이들이 벌 수 있는 방법이 없기 때문에 누군가는 부양해야만 한다. 사람들은 누구나 죽는다. 그냥도 죽는데 각종 사건 사고들이 늘어만간다.
아, 모두 안 죽고 살아 평생 천수를 누린다면, 아무도 지금 이순간부터 사진찍은 듯이 그 모습 그대로 늙지 않는다면, 그래 조금 더 젊어 질 수 있다면 그 누구도 생업으로 일을 하지 않을 것이다. 내가 나를 짊어지고 다른이까지 짊어질 여유가 있는 것이다. 길게 보아야 장기레이스라고 생각해야만 여유가 생기는데, 당장에 빚이 목을 졸라맨다. 이자는 복리이므로. 원금부터 갚아야한다고 생각한다.
이미 미쳐버린 사회 구조 속에서의 내가 천수를 누릴 것 처럼 벌어야 하는, 자본주의는 그게 숙명일지도 모른다. 많이 벌어도 일을 멈출 수 없는 것은 책임감 하나 일 수도 있다. 누군가를 책임지는 것이 아닌 나이든 나에 대한 하루의 책임감. 나이가 들 수록 나는 어깨에 짐이 지워진다. 직업을 구하지 못한 자유를 누리며 나는 오늘도 무언가를 찾으려 집을 나섰다. 나에 대해 책임을 지려고. 여유따위는 개나 준 지 오래다.
그렇다. 공산주의가 좋은지 자본주의가 좋은지 선택을 한다면 자본주의가 안 좋아 보인다. 선택권이 너무 넓고 한 곳만 투자해서 돈을 벌기에는 위험 리스크가 너무 크다. 그걸 가르치는 곳이 학교인데 그런 수업은 없다. 김나지움처럼 애초에 전문직을 키우는 학교도 없다. 그저 지역주의,그저 좋은 학교, 그저 사람들이 몰린 곳에서 그들은 꿈을 찾는다. 그러다 결혼을 한다. 두 사람이 돈이 있든 없든 아이는 태어나고, 어쩌면 한 쪽이 먼저 아프거나 죽을 수도 있다. 그때부터는 한 사람이 두 사람 몫을 해야만 한다. 돈이 있든 없든, 부모는 부모의 역할을 해야한다는 사회적 규율에 따라. 지랄같은 부양의 법칙은 부모 윗 세대에게도 적용이 된다. 은퇴를 하고도 돈을 벌어 요양원에 계신 부모를 모신다. 그러고는 결혼한 아이들까지 키워내야 한다. 월급은 없거나 국민연금이 다다. 어쩌란말인가? 공산주의가 필요할까?
인구는 줄어든다. 이 지랄같은 법칙도 시간이 지나면 풀린다. 사람은 누구나 죽으니까. 아, 쪼금만 더 버티면 나도 죽으니까. 근데 여직 살아있으니 돈은 벌어야 하고, 일을 해도 계약직이다. 어? 수명이 늘어난다? 나는 할아버지 아버지 내 아들딸까지 부양해야 한다. 그래 구조의 병신은 나이든 사람을 흡수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래 구조의 병신은 나이어린 사람을 흡수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시x 유튜브나 할까? 하면 뭐 말리지는 않는데, 더이상 머리 굴릴 이가 없다. 뭐만 하면 공부공부하는 현상이 더이상은 없다. 그 귀찮은거 안해도 돈 버니까. 근데 역설적이게도 그들을 관리하는 관리자는 부족하다. 연륜이 필요한 직장, 어려도 돈 벌 수 있는 기회가 필요하다.
아이들이 돈 벌 기회 솔직히는 태교중인 산모나 태어난지 얼마 안 된 아이에게 일은 무리다. 스트레스 받지 않고 그들도 일을 할 수 있다면 유휴인력은 필요가 없다. 누구나 결혼을 한다면, 1명->2명->3명이 되도 일할 사람은 단 한명 남자다. 그래서 가부장사회가 된다. 아 어쩌란 말인가? 육아휴직만으로는 풀 수 없다. 그렇다고 돈을 거기다 풀면 어떨까? 그게 국민연금이었다.
그걸 정부가 이상하게 굴리고 있다. 누구에게 복지가 돌아가야 할까? hoxi, 결혼하지 못한 사람은 솔로세를 내라는거냐(?) 나는 이 문제를 같이 풀어나가야 한다고 본다. 독거노인층이 늘고 있다. 3명->2명->1명 으로 출가한 자녀와 먼저 돌아가신 분에 대해 홀로 자기 인생을 책임져야 한다. 솔로세는 이 분들에게도 적용될 수 있다.(?)부모를 잃은 어린아이에게도 세금을 물리려고? 어림없는 소리. 결국은 중간층 즉 다이아몬드 모형의 인구구조가 이루어질 뿐이다. 우리는 고령화이다. 그래 모두 같이 늙는다면 죽지 않는다면, 우리는 다양한 일자리를 만들어 다양한 사람들이 그룹을 지어 다양한 임금으로 이른바 랜덤 일자리를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직업 갖는게 로또라서다.
중간 층을 졸라맨 세금을 내라 한다면 분명히 튀어나간다. 솔로세나 추진하라고 하기엔 너무 잔인하다. 그럼 가구단위로 묶어 오가작통법을 해 돈을 내라고 하면 아파트 관리비수준밖에 안된다. 운동회처럼 돈 없이 열심히 달리면 아무나 이겨라가 되는 레이스를 하고 싶다. 누구나 동일한 출발선에서 시작하지 않아도 괜찮은 레이스를 하고 싶다. 공정한 레이스보다, 여유로운 레이스를 하고 싶다. 그러려면 군대에 가지 않으면 돈을 내야할까? 아무도 군대에 죽으러 가지 않으니까. 그러면 궁녀나 내시를 뽑아야 할까? 아니다. 시발 조선은 망했다. 외세의 침략으로.
지금도 관세가 있다. 자유무역시대에 시장의 판이 늘어난다. 중간층을 강화해야한다. 후진국을 중진국으로 키워야 한다. 애를 많이 낳아 기르느니 1인 다역을 해야한다. 시간을 늘려 경력직을 뽑아도, 다재다능해야 버틴다. 이업무 저업무 지랄같이 시킨다. 버텨야 250받는다.
돈은 관리자의 몫이다. 아, 세금을 더 걷는다. 이제야 뭐가 문젠지 아는가? 관리자가 나이든 사람이 아니라는 것이다. 관리자가 어린아이가 아니라는 것이다. 누구의 몫인가? 지식인의 몫이다. 블루칼라는 그에 갈린다. 노조가 생긴다. 기업주와 노동자의 갈등이 생긴다. 기업주 나도 하지? 그러면 자영업자다. 자영업자가 성공하면 기업주가 된다. 또 싸운다. 이 굴레는 기업주의 몫도 노동자의 몫도 아니다. 싸우면 세대를 못본다. 세대로 파악해 MZ로 만들었다면 그에 대한 대안도 만들어야 할 것이다.
아 맞다 관리자 연봉을 짬찌와 동일하게 준다면 공산주의다. 그건 능력치를 까는 거니까. 그러면 나는 관리자 않는다. 바보야 책임질일 안해. 아무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