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지프스는 사실 예술가일지 모른다

창작자의 고통

by 메이다니

폴 오스틴의 『빵 굽는 타자기』에서 읽은 문장이 오래도록 머릿속을 맴돈다. 정확한 표현은 아니지만, 이런 느낌이었다. "창작자는 선택하는 게 아니라 누군가로부터 선택받는 것이다. 글을 쓰고 싶어서 쓴다기보다, 써야 하기 때문에 쓰는 것이다." 처음 이 문장을 읽었을 땐 그저 멋진 수사법 정도로 여겼다. 하지만 요즘, 나는 이 말의 무게를 점점 더 깊이 이해하게 된다.


내가 아는 한 지인은 마흔이 넘도록 무명배우로 살아가고 있다. 단역과 엑스트라를 전전하며, 오디션장을 들락날락하며, 그렇게 십수 년을 버텼다. 그러다 결국 생계를 위해 가족에게 기술을 배웠고, 이제는 자기 사업체를 꾸리고 있다. 그런데도 여전히 오디션을 본다. 여전히 배우다.

예전엔 그 모습이 이해되지 않았다. 아니, 솔직히 말하면 조금 한심해 보이기까지 했다. 어떻게 저렇게까지 자기의 '때'를 기다린다는 명목으로, 주변 사람들이 힘들어할 때까지 배우가 되려고 버티는 걸까. 한심할 정도로 대단한 사람이라고, 아이러니하게도 그렇게 생각했었다. 그런데 이제는 안다. 그건 선택이 아니었다는 걸.


그 사람은 배우로서, 예술가로서, 알 수 없는 무언가에게 간택받은 것이다. 지독하게도 찬란한 것에 마음을 빼앗겨버린 것이다. 버려야 한다고 머리로 아무리 생각해도, 가슴이 따라주지 않는 것. 손이 먼저 대본을 집는 것. 발이 먼저 오디션장으로 향하는 것.


그리스로마신화에 나오는 시지프스는 신들에게 형벌을 받아 바위를 산꼭대기로 밀어 올려야 했다. 정상에 거의 다다르면 바위는 다시 바닥으로 굴러떨어졌고, 그는 다시 처음부터 시작해야 했다. 끝없이, 영원히.

카뮈는 그런 시지프스를 행복하다고 말했다. 처음엔 이해할 수 없었다. 어떻게 그 무의미한 반복 속에서 행복할 수 있단 말인가.

하지만 어쩌면 시지프스는 예술가였을지도 모른다. 바위를 언덕 위로 끊임없이 올려야만 하는 형벌 같이 고통스러운, 요상한 예술을 계속해야만 하는 예술가. 나도, 그 지인도, 우리는 모두 알 수 없는 죄로 인한 형벌을 받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


프리랜서로 산다는 건 자유롭다. 하고 싶은 일을 선택할 수 있고, 시간을 내 마음대로 쓸 수 있다. 적어도 겉으로는 그렇다. 하지만 실상은? 나는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해서 돈을 벌지 못할 때가 더 많다. 생계를 위해 별로 하고 싶지 않은 프로젝트를 받을 때도 있다. 그럴 때마다 '이게 맞나' 싶은 생각이 든다.


그런데도 나는 창작에 대한 생각을 멈출 수 없다. 기획에 대한 생각을 멈출 수 없다. 당장 그것으로 돈을 벌지 못하더라도, 나는 그것을 할 때 가장 행복하다. 새벽에 문득 떠오른 아이디어를 메모하고, 쓸데없어 보이는 프로젝트를 혼자 구상하고, 아무도 보지 않을지 모를 글을 쓴다. 그래서 경력이 단절될 것 같다는 불안감에 아플 때까지 스스로를 채찍질하고, 뜻대로 내 야망을 이루지 못한다는 것 때문에 괴로워했다. 아니 여전히 괴로워하고 있다. 나의 고통이 끝나지 않는 것은, 시지프스가 형별을 멈추지 못하는 것과 같다. 이게 바로 바위를 밀어 올리는 것이다.


최근 상담을 통해 알게 된 게 있다. 그런 것을 '가치'라고 부른다고 한다. 변하지 않는 나의 가치. 나의 가치는 하고 싶지도 않은 기획을 해서 돈을 버는 게 아니었다. 너무 기획이 즐거워서, 창작이 행복해서, 그래서 결과적으로 돈이 따라오게 되는 것. 그게 내 가치였다.

돌이켜보면 내가 정말 잘했던 프로젝트들, 클라이언트가 만족했던 결과물들은 모두 내가 진심으로 재미있어했던 것들이었다. 억지로 짜낸 기획안은 어딘가 빈틈이 있었고, 결과도 좋지 않았다.


어쩌면 이게 프리랜서의 실상이다.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다는 환상 뒤에 숨은 진실. 우리는 선택하는 게 아니라 선택당한 것이다. 우리가 하는 일이 우리를 선택한 것이다. (물론 이건 과한 생각이라고 때로 스스로 자조하기도 한다.)


시지프스는 바위를 밀어 올리며 무슨 생각을 했을까. 정상에 거의 다다랐을 때, 곧 다시 바닥으로 굴러떨어질 것을 알면서도, 그는 무엇을 느꼈을까.

밤새 작업한 기획안이 거절당했을 때, 공들인 프로젝트가 무산되었을 때, 통장 잔고를 보며 한숨을 쉴 때. 그때 나는 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내일도 기획을 할 것이고, 창작을 할 것이고, 글을 쓸 것이라는 걸.

그게 형벌이든 축복이든, 나는 이걸 멈출 수 없다.


카뮈는 단언한다. "우리는 시지프스가 행복하다고 상상해야 한다."

나도 이제 그렇게 상상한다. 오디션장을 나서는 그 무명배우가 행복하다고. 새벽에 아이디어를 메모하는 내가 행복하다고. 우리는 선택받았다. 그리고 그것이 우리를 자유롭게 한다. 이것은 고통 속에 몸부림치는 나를 위한 단 하나의 합법적인 마약이자 진통제다.


바위는 내일도 굴러떨어질 것이다. 그리고 나는 내일도 그것을 밀어 올릴 것이다.

그게 내가 살아있다는 증거니까.

토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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