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주에도 일했다. 주말과 평일의 경계가 무너진 지는 꽤 오래다. 누구보다 바쁘게 움직였고, 누가 봐도 일을 많이 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나는 지금 ‘무직’이다. 본업이라고 말할 만한 직장은 없다. 소속도, 계약서도, 매일 출근하는 오피스도 없다. 그럼에도 이번 주 나는 세 개의 프로젝트에 참여했다. 하나는 기획안을 끝냈고, 하나는 회의에 참여했고, 하나는 단기성 작업으로 마무리했다. 그리고 이력서는 세 군데에 넣었다. 답장은 없었지만, 해냈다는 느낌은 남았다. 일주일 수입을 따지자면 백만 원 가까이 된다. 말 그대로 쉰 적이 없고, 주말에도 쉴 수 없었다.
프리랜서라는 단어는 누군가에겐 매력적으로 들리고, 또 다른 누군가에겐 불안정의 상징일지도 모른다. 누군가는 부럽다고 말하고, 누군가는 걱정스럽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 단어를 입 밖에 꺼낼 때마다 이상하게도 내 안에서는 복잡한 감정이 인다. 스스로 선택한 길인데도, 설명하기 어려운 이 애매한 삶의 감각. 마치 상황마다 얼굴을 바꾸는 렌즈처럼, 프리랜서라는 말은 바라보는 시선에 따라 매번 다르게 굴절된다.
쉬는 날이 많아서 좋겠다는 말은 이제 조금 억울하게 느껴진다. 쉬는 날과 일이 없는 날은 다르다. 나는 쉬고 싶은 게 아니라, 일이 없는 날을 쉬는 척하며 버티고 있는 것이다. 사람을 만나면 바빠 보이게 행동하고, SNS에는 뭔가 하고 있는 것처럼 글을 올리고, 마감은 없는 날에도 마감이 있는 사람처럼 조급해진다. 나는 쉰 적이 없다. 아무도 불러주지 않는 날에도 메일을 쓰고, 포트폴리오를 다듬고, 한참 전 만났던 사람들에게 인사를 건넨다. 다가오는 어떤 기회를 위한 몸풀기 같은 날들. 그렇게 쉬는 날이 더 바쁘다.
돌이켜보면 이런 삶이 내가 꿈꾸던 미래의 일부였는지는 잘 모르겠다. 이전의 나는 이토록 스스로를 몰아붙이며 일할 줄 몰랐다. 누가 시키는 것도 아닌데, 나는 왜 이토록 바쁘게 움직이고 있는 걸까. 어쩌면 누군가의 인정을 받고 싶어서, 혹은 내 존재가 가벼워지는 걸 견디지 못해서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금의 나는 조금 다른 이유로 이 삶을 지속하고 있다. 누군가의 평가를 이겨내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냥 이렇게 살아 있다는 사실을, 누가 나를 부르지 않아도 여전히 스스로를 움직이고 있다는 사실을 증명하고 싶어서.
그게 어두운 일일까, 아니면 빛나는 일일까. 판단은 늘 남에게 달려 있었지만, 이제는 그 경계조차 흐릿해진다. 이 삶은 확실히 불안정하다. 동시에 전보다 훨씬 나답기도 하다. 아르바이트처럼 짧게 끝나는 일들이지만, 내가 만든 기획안이 실제로 쓰이고, 누군가 내 회의에 시간을 써준다는 사실은 여전히 나를 살아 있게 만든다. 다들 가는 방향에서 잠시 벗어나 있더라도, 나는 지금 내가 있는 위치에서 살아가고 있다는 감각을 버리지 않기로 했다.
이번 주에 나는 분명히 일했다. 주말에도 쉬지 않았다. 그리고 그것이 나를 증명한다. 회사도 없고, 직책도 없지만, 나는 나의 방식대로 이 시간을 채우고 있다. 이력서에 쓰일 ‘직위’는 없지만, 기록하고 싶다. 지금 내가 어떤 자세로 살아가고 있는지를.
지금 내 삶이 내가 원하는 100% 삶이라고 할순 없다. 하지만 100% 내 손으로 만든 유일하게 내가 완성하고 있는 삶이기도 하다. 나의 프리랜서로서의 삶은 단 하나도 남에 의해 제작되고 있지 않다. 모두가 그러하겠지만 그 사실은 프리랜서들에게는 더욱 와닿는 지점이기도 하다.
신이 나를 만들 때 어떤 재능을 주었을까. 버티는 재능, 운도 조금 넣었을지 모른다. 재미없는 걸 버티지 못하는 재능, 단 하루도 매일 같이 보내는 걸 지루해하는 것도 재능이라면 재능이다. 그리고 그는 나를 만들 때 많은 부분을 남겨둔 듯 하다. 50% 쯤 재능을 채웠을 때, 남은 여백은 나 스스로 채우기를 원하며 그대로 제작을 종료한 것 같다.
나는 오늘도 그 50%를 채우기 위해 달리고 있다.
그렇게 오늘도 쉼 없이, 쉬는 척하며, 일한다. 프리랜서라는 이름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