칵테일을 마시는 아직은 성인의 이야기
고등학교 시절 스무 살이 되면 칵테일, 그중에서도 코스모폴리탄(Cosmopolitan)을 꼭 마셔봐야겠다 생각했다. 격식 있는 옷을 입은 채 화려한 바에서 루비 같이 영롱한 액체가 담긴 우아한 칵테일글라스를 찰랑이는 모습을 상상했다. 어른의 삶에 대한 동경 비슷한 감정이었나 보다.
바라던 대로 나의 첫 칵테일은 코스모폴리탄이 되었다. 달달할 거란 기대와 달리 쓰고 알코올 특유의 찌르르함이 입안에 화악 퍼졌다. 보드카를 주재료로 크랜베리 주스와 라임주스 그리고 트리플 섹(오렌지 향의 리큐르)을 섞어 만들었기 때문이다. 단맛을 내는 요소가 적어 크랜베리 주스의 새콤한 뒷맛이 은은하게 감돌았지만 강하게 밀려오는 술맛은 어쩔 수 없었다. 분위기를 타며 한입 두입 홀짝이다 보니 그런대로 나쁘지 않았다.
어느 정도 칵테일을 즐기며 위스키 온더락(잔에 얼음을 넣고 위스키를 부어 마시는 것)을 마실 수 있게 됐을 즈음 정신 차려보니 어느샌가 조주 기능사를 취득했다. 술이 좋아 시작한 공부가 자격증이 되어 돌아왔다. 훗날 어떠한 사무직 회사를 취직해도 별 도움이 될 것 같진 않지만 무척 즐거움 경험이었다. 당시 나는 야생초를 꺾은 듯 향긋한 진(Gin)과 은은한 쑥향이 매력인 깜파리(Campari)의 매력에 푹 빠져 있었다(만약 이 둘의 조합을 선호한다면 네그로니(Negroni)라는 칵테일을 추천한다). 비로소 술을 맛과 향으로 즐길 수 있게 된 것이다.
술을 즐길 줄 안다고 해서 나의 로망이 이루어졌느냐? 단호하게 아니라고 말할 수 있다. 되짚어 보면 내가 상상했던 것은 '어른'의 여유 있는 칵테일 한잔이다. 성인과 어른은 다른 느낌이다. 나라가 정해준 나이를 갓 채워 넘겨도 곧바로 성숙하고 이상적인 인간이 되진 않는다.
나이 팔십 먹어도 어른이 되지 못한 사람이 수두룩한데 나도 혹시 저렇게 될까 늘 노심초사하며 살아간다. 적어도 남한테 폐를 끼치며 살진 말아야겠다 생각했는데 너무나도 주관적이고 추상적인 목표이다. 그래도 최대한 노력은 해봐야 하지 않겠는가.
대화 상대를 고려해가며 조심스럽게 행동해도 나도 모르게 불특정 다수에게 뾰족한 가시를 건넬 수 있다. 단어 하나조차 완벽하게 둥근 모습으로 다듬자니 모든 면에서 스스로를 지나치게 검열한다. 나도 자기주장은 하며 살아가고 싶다. 그렇다고 생각 없이 입을 열면 따가운 밤송이를 상대방에게 직격으로 던지는 꼴이 된다. 그 중간점을 아직 찾지 못해 오늘도 말을 아끼며 살아간다.
아직 어른이 되지 못한 나에게 코스모폴린탄은 여전히 어른의 삶에 대한 동경을 담은 한 잔으로 남아 있다. 나는 지금 넘어지고 깨지면서 중심을 잡고 바르게 일어서는 중이다. 그렇기에 더욱이 배워야 한다. 훗날 어엿한 어른이 되어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을 곁에 두고 술을 한잔 시킨 뒤 기분 좋은 이야기를 나누는 것 또한 로망에 추가해둬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