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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희영 Mar 05. 2020

자급자족의 삶

사람의 인내심은 핫케이크를 통해 관찰할 수 있습니다

 올해 벚꽃의 꽃말은 중간고사가 아닌 개강으로 하자. 개강이 2주 미뤄졌고 그 후에도 2주 동안은 집에서 인터넷으로 수업을 들어야 한다. 과연 4월에는 학교를 갈 수 있을지 걱정이다. 얼마 전부터 나는 코로나 19로 인해 집에서 자급자족하며 살고 있다. 노래방이 가고 싶을 땐 방에서 조용히 기타를 치며 낮은 목소리로 노래를 불렀고, 카페에 가고 싶어 질 때면 에스프레소를 진하게 내리고 묽게 쳐둔 크림을 듬뿍 얹어 아인슈페너를 만들었다. 오늘은 볕 좋은 날 브런치 카페 창가 자리에 앉아 있고 싶은 날이었다.


 넉넉한 그릇에 우유와 계란을 섞는다. 주룩 흐를 정도의 농도가 될 때까지 핫케익 믹스 가루를 털어 넣고 예열해둔 프라이팬에 둥글게 부어준다.

 평소대로라면 귀찮음을 핑계로 반죽을 얇게 올려 부침개 부치듯이 센 불에 후다닥 구웠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오늘만큼은 브런치 카페를 못 가는 억울한 마음을 담아 낮은 온도에서 반죽이 부풀어 오를 수 있게끔 천천히 구워 보았다. 브런치 카페를 운영하는 모든 사장님들은 무안한 인내를 가지고 있음에 분명하다.

 기포가 올라오면 가장자리를 살살 달래주다가 단숨에 뒤집는다. 버터를 한 조각 올리고 과일도 썰어 준다. 메이플 시럽은 어떻게 뿌려도 모양이 영 안 산다. 핫케이크에 금세 스며들어 얼룩이 생겼다. 더 번지기 전에 서둘러 사진을 찍고 나니 집에서 예쁘게 차려 먹는 것도 나쁘지 않다 생각했다.


 남는 게 시간이다. 집에서 뭘 해도 시간이 안 가니 사람들은 커피를 400번씩 저어 마시고 나는 불 앞에서 팬케익이 예쁘게 구워지기만을 하염없이 기다린다. 서두르지 않아도 된다는 느긋함과, 아버지의 일자리와, 잃어버린 일상과, 그럼에도 무언가를 시작해야 만한다는 압박이 날이 갈수록 두텁게 쌓여간다. 모든 것이 멈춰 섰는데 고정 지출과 미래에 대한 걱정은 그대로다. 내가 할 수 있는 거라곤 밥을 잘 차려 먹고 반려 식물의 물을 주기적으로 갈아주는 것뿐이다. 좁아진 일상의 반경에서도 제자리를 씩씩하게 지켜내자. 아직 무너지지 않은 일상이 남아 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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