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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희영 Mar 07. 2020

글감을 찻잔에 빠트렸습니다

글쓰기에 대하여

 

 중학생 때 구입한 립톤 티백은 나의 첫 홍차였다. 당시 티백을 우릴 때 가장 해서는 안 될 세 가지(티백에 바로 뜨거운 물 붓기, 티백을 위아래로 흔들기, 물을 머금어 통통해진 티백을 꾹꾹 눌러 마지막 한 방울까지 착즙 하기)를 골고루 시행했고 사약 같이 쓰고 검은 홍차를 홀짝이며 이것이 진정한 어른의 맛이라 착각했다.

 

 케이크에 예쁜 장식을 얹듯 온갖 수식어가 붙은 화려한 글이 잘 쓴 글인 줄로만 알았다. 문장이 길 수록 많은 의견이 담겨 있고 그런 글쓰기야 말로 성장한 사람이 갖춰야 할 태도라 생각했다. 물론 서너 줄이 넘는 문장 속에도 자신의 의견을 잘 개켜 넣어 깔끔하게 정리할 수 있다. 독자의 가독성을 얼마나 고려했느냐가 관건이다. 나는 여태 독자의 입장을 생각하지 않은 채 줄줄 단어를 나열하기만 했다. 그 결과  글쓰기에 있어서 배려 없는 사람이 되었다. 쓰디쓴 홍차를 손님에게 대접하는 것만큼 무척 부끄러운 일이다.


 찻잎은 그 자체로 품격 있다. 물 하나만으로 자신의 향과 맛을 최대로 끌어올리며 그 수색은 깊고 은은하기 까지 하다. 그런 성향을 닮고 싶고 또 그런 글을 쓰고 싶다. 나에게 찾아온 글감을 나만의 방식으로 어떻게 우려낼지 여전히 고민이 많다.  


시간이 지난 지금 나는 좋은 잎차로 향긋한 차를 우리는 건 물론 로열 밀크티, 홍차 시럽, 얼그레이 쉬폰 케이크 같은 디저트 종류까지 만들 수 있게 되었다. 대단한 발전이 아닐 수가 없다. 여러 시행착오를 거치며 나름의 비법을 습득한 만큼 글쓰기 또한 그렇게 되리라 믿는다. 찬장을 열어 오늘 기분에 어울리는 티백을 꺼내 뜨거운 물을 조심히 붓고 1분 30초를 기다린다. 우리는 시간은 취향에 맞게 조절하도록 하자. 한 손으로 노트북 전원을 켜면서 다른 한 손으로는 찻잔을 든다. 온기가 서려 있고 향긋하며, 아무런 기교도 없다. 그런 한 줄의 문장을 쓰기 위해 나는 오늘도 글감을 찻잔에 빠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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