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를 400번 젓다가 문득 드는 생각
3월 5일에 작성한 '자급자족의 삶'에서 언급했던 달고나 커피를 기어코 만들었다. "(코로나 19로 인해 칩거 생활을 하면서) 뭘 해도 시간이 안 가니 사람들은 커피를 400번씩 저어 마시고-"는 내 얘기였던 것이다. 느지막이 일어나 넓은 그릇에 커피, 설탕, 뜨거운 물을 각 두 숟갈씩 넣고 거품기로 휘적휘적 젓기 시작했다.
그동안 무료한 시선을 달래기 위해 부엌에 난 작은 창문으로 바깥을 내다본다. 기온이 꽤나 올라갔는지 아이들은 얇은 겉옷을 입고 놀이터에 삼삼오오 모여 있다. 봄 같은 날씨와 작게 울리는 아이들 웃음소리가 겹쳐 그 모습이 퍽 영화 같다.
나는 사소한 것에도 눈길을 주는 편이다. 그래야 지루한 일상 속 작은 반짝임을 발견하고는 잠시 동안 즐거워할 수 있다. 자칭 프로 통학러인 나는 매일 아침 한 시간가량을 지하철 땅굴에 고스란히 바쳐야 한다. 깜깜한 창문에는 내 얼굴만 비춰 핸드폰만 만지작 거린다. 그나마 60분 중 2분은 즐겁다. 계양역에서 출발해 귤현역으로 진입하는 철길이 밖으로 놓여 있기 때문이다. 멀리 보이는 맑은 하늘과 푸른 산도 좋고 철길에 오도카니 서 있는 낡은 기차도 좋다. 옅은 아침 햇살이 쪼르르 늘어진 객실 안은 이따금 덜컹거리는 소리만 가득하다. 한적한 시골 마을 같은 풍경이 순식간에 지나가고 나머지 58분 동안 또다시 핸드폰 액정을 쳐다본다. 짧은 시간이지만 유리창 너머의 세상은 이상하리만치 매일 다른 느낌으로 다가온다.
120초가량의 필름 영화 같은 풍경을 회상하며 지친 등굣길에도 다정한 시선을 내어주는 일이 꽤 근사하다 생각했다. 꼭 시선이 아니어도 괜찮다. 자신만의 방법으로 하루의 찰나를 만끽했으면 한다.
어느새 그릇 안에는 굳기 전 흐물흐물한 달고나가 완성됐다. 뻐근한 어깨를 주무르자 쌉싸름하고 향긋한 커피 향이 물씬 올라온다. 겉이 투명한 유리잔에 얼음을 넣고 우유를 부어준다. 달고나를 최대한 우유 표면에 대고 그릇에서 살살 끌어내린다. 아무 생각 없이 높은 곳에서 떨어트렸다간 공들인 달고나가 우유 밑으로 가라앉아 버릴 것만 같다.
윗입술을 컵에 푹 담그고 한입 마셔본다. 우유와 함께 녹진한 달고나가 입 안에서 섞여 부드럽게 넘어간다. '와! 이건 혁명이야!'랄 것 까진 없지만 노동의 대가는 달다. 창문을 열어둔 채 거실에 앉아 느긋한 혼자만의 영화를 찍는다.
몇 모금 홀짝이니 적은 양이 아쉽기만 하다. 다음엔 큰 컵에 만들어서 벌컥벌컥 마시겠노라 다짐한다. 물론, 두배로 힘을 내야 한다. 지루한 일상 속에 영화 같은 기분을 내기 위해 그 정도는 해낼 수 있을 거라 생각하며 놀이터 근처에 어서 꽃이 피기만을 기다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