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 있을 때는 몰랐던 사람을, 떠나고 나서야 기억하는 일이 많다. 누군가는 죽음이 예술가의 이름과 작품에 가치를 더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이건 참 아이러니하다. 생전에는 외면받던 작업이 죽음 뒤에 새로운 해석과 주목을 받는다. 이런 현실을 떠올리면, 예술이란 무엇이고 왜 우리는 창작을 하는지 다시 생각하게 된다.
사실 많은 예술가들은 자신이 기억되고 싶어서 창작을 하진 않는다. 대부분은 그저 자신이 느끼고 생각한 것을 표현하기 위해 작업에 몰두한다. 하지만 명예라는 단어는 언제나 그림자처럼 따라다닌다. 시대와 사람들은 예술가의 성공을 이름값으로 판단하기도 한다. 그래서 누군가는 살아있는 동안 자신의 이름을 떨치고 싶어 하지만, 반대로 대부분은 그런 욕망보다 자신의 작업이 누군가의 마음에 닿기를 바랄 뿐이다.
예술은 참 역설적이다. 가장 고귀한 작업이면서 가장 고통스러운 일이기도 하다. 예술가들은 자신만의 색깔을 지키기 위해 애쓰다 지치기도 하고, 생계를 위해 스스로를 바꿔야 한다는 고민에 빠지기도 한다. 시대와 잘 맞아떨어져 물질적 성공을 얻는 경우도 있지만, 이는 예외적인 일이다. 대부분의 예술가는 창작과 생존 사이에서 끊임없이 싸운다.
나 역시 포토그래퍼로서 그런 고민을 매일 마주한다. 상업사진으로 생계를 이어가면서도 나만의 색을 찾기 위해 노력하지만, 한계를 느낄 때가 많다. 그럴 때마다 내가 왜 카메라를 잡는지 되묻게 된다. 아마도 내 사진이 단 한 사람에게라도 닿아 그 마음에 스며든다면, 그것만으로 충분하다는 믿음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역사를 보면, 위대한 예술가들조차 생전에는 자신의 가치를 인정받지 못한 경우가 많았다. 창작의 고통 속에서 괴로워하다 떠난 뒤에야 이름이 알려진 이들이 대부분이다. 죽음이 그들의 작업에 새로운 무게를 더해 준 셈이다. 물론 죽어서도 여전히 무명으로 남은 예술가들이 더 많겠지만, 그들 역시 자신만의 방식으로 삶과 예술의 의미를 찾지 않았을까.
예술은 돈을 벌기 위해 하는 일이 아니다. 예술은 스스로에게 솔직해지고자 하는 노력이다. 때로는 그 과정이 괴롭고, 때로는 자유롭다. 그렇기에 사람들에게 인정받는 예술은 운에 가까운 일이다. 결국 중요한 건 대중의 평가가 아니라, 작업을 이어가는 그 자체다.
나는 스스로에게 엄격하지만 욕심 없는 예술가들이 더 많은 사랑을 받았으면 한다. 그들의 작업이 단 한 사람에게라도 온전히 이해받는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사실 예술가들은 그런 작은 공감에서 큰 기쁨을 느낀다. 그리고 그런 마음이야말로 진정한 예술의 출발점이 아닐까.
모든 예술가들이 살아생전 평안한 마음으로 작업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들의 작품과 삶이 고요한 기쁨으로 가득하길 바란다. 그리고 나 역시, 언젠가 그런 평온한 순간을 맞이할 수 있기를 희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