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약속을 자주 잊는다. 아니, 어쩌면 잊는다기보다는 놓아버린다고 하는 편이 맞을지도 모른다. 나는 늘 그때그때의 순간에 살아간다. 과거의 약속보다, 바로 지금 내 앞에 있는 상황이 나를 더 붙잡는다. 그래서 어떤 이들은 나를 보고 책임감 없다고도, 믿을 수 없다고도 말한다. 하지만 약속을 할 때의 나는 진심이다. 그 순간만큼은 그 약속을 지키겠다고, 필사적으로 노력한다.
그 약속이 만들어지는 찰나에는 나도 상대도 웃으며 고개를 끄덕인다. 그 시간 속에서 나는 최선을 다한다. 정말로 지킬 수 있을 것 같고, 그렇게 할 수 있을 만큼 단단한 나를 믿는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 약속은 점점 희미해지고 현실은 다른 방향으로 나를 이끈다. 순간의 긴급함이, 예상치 못한 변수들이, 약속이라는 기억을 서서히 밀어낸다. 그리고 나도 모르는 사이, 그 약속은 잊힌 먼지가 되어버린다.
그렇게 약속을 지키지 못할 때마다 나는 나 자신이 참 초라하다고 느낀다. 상대의 실망 어린 표정을 마주하면 가슴이 먹먹해진다. 내가 그들을 일부러 배신하려던 게 아니었다는 걸 아무리 말해도, 나의 행동은 그저 변명처럼 들린다. 나는 약속을 지키기 위해 온 힘을 다했지만, 결과는 언제나 같은 방향으로 흐른다. 나를 믿었던 사람들은 점점 나와 멀어진다.
사람들은 내게 말한다. “네가 그때는 진심이었을지 몰라도, 결국 지키지 못할 약속이라면 애초에 하지 말았어야지.” 그 말에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틀린 말이 아니니까. 그래서 나는 어느 순간부터 약속을 쉽게 꺼내지 않게 되었다. 아무리 지키고 싶어도, 지킬 수 없을 가능성이 있다면 차라리 하지 않는 편이 낫다고 스스로를 설득했다.
하지만 약속이 없는 삶은 생각보다 더 고독했다. 혼자가 된다는 건 약속을 잊어버린 상대의 실망을 피할 수는 있어도, 마음을 나눌 기회마저 잃는 일이었다. 그래도 나는 약속의 무게가 두려웠다. 그것이 나를 과거에 붙잡아두는 것 같아서, 앞으로 나아가야 할 나를 발목 잡는 것 같아서. 결국 이렇게 홀로 남아버린 나는, 흘러가는 강물처럼 누구와도 닿지 않은 채로 떠다니고 있다.
그럼에도 나는 생각한다. 약속을 할 때마다 필사적으로 그걸 지키려 애썼던 나를. 매번 상황이 바뀌어 잊혔지만, 그 순간의 진심과 노력은 어디로 갔을까? 약속을 하며 웃었던 나와 그 사람의 모습은 정말 다 사라져 버린 걸까?
강물은 흘러가며 방향을 바꾸고, 때로는 새로운 길을 만든다. 나는 늘 그런 강물처럼 살아왔다. 약속은 내가 뒤로 남긴 물결들이다. 그것들이 흐릿해질 때도 있고, 때로는 거센 소용돌이가 될 때도 있다. 그렇다고 해서 강물이 앞으로 나아가는 것을 멈출 수는 없다. 나는 앞으로도 흘러갈 것이다. 내가 머무를 수 있는 바다를 찾을 때까지, 나를 이해해 줄 누군가를 만날 때까지.
그때가 오면 다시 약속을 해볼 수 있을까? 그리고 이번에는 정말로 지킬 수 있을까? 그런 생각을 하다 보면 마음 한구석이 먹먹해지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일이 오면 나는 또 오늘을 살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