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빛 아래 15초

by someformoflove

“단 15초”


3년이었다.

그녀를 알게 된 지 꼭 3년. 하지만 그 시간 동안 나와 그녀가 나눈 대화는 손에 꼽을 정도였다. 서로 다른 팀에서 일했기에 업무적으로 간혹 주고받는 몇 마디와, 마주칠 때 건네는 짧은 인사 정도가 전부였다. 그녀는 늘 예의 바르고, 선을 넘지 않는 사람이었다. 나도 그랬다. 어쩌면 그건 비슷한 기질 때문이었을지도 모른다. 서로에게 다가가고 싶으면서도 그 거리감을 무너뜨릴 용기가 없었다.


그녀는 내게 특별한 존재였다. 하지만 그 특별함이 내게 주는 감정은 늘 조용했다. 가까워지고 싶은 마음은 있었지만, 동시에 그녀가 부담스러워할까 두려웠다. 그래서 애초에 선을 그었다. 지나가며 건네는 웃음과 필요한 부탁 정도로 관계를 한정 짓는 것이 차라리 안전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3년째 되던 해, 우리는 같은 프로젝트에 배정되었고, 늦은 저녁 팀원들과 회식 자리를 가지게 됐다. 늘 회식이 불편했던 나는 적당히 분위기를 맞추다가 먼저 자리를 나왔다. 밖으로 나왔을 때, 차가운 공기가 술기운을 식혀주었다. 그런데 뒤따라 문이 열리더니 그녀가 나왔다.


우리는 마주쳤다.


“어디로 가세요?” 그녀가 조심스레 물었다.

“저는… 지하철로 가려고요.”

“아, 저도요.”


짧은 대화가 끝나고, 우리는 자연스럽게 나란히 걷기 시작했다. 늦은 밤, 거리는 조용했지만 하늘은 환했다. 보름달이 밤을 가득 비추고 있었다. 그 밝은 빛이 우리 앞을 인도하듯 길을 따라 걷게 했다.


말이 많은 편은 아니었다. 그녀도, 나도. 우리는 한두 마디 필요한 대화를 나누는 정도로 걷고 있었다. 묘한 침묵이 흐르던 중, 나는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둥그런 달빛이 밝게 빛나고 있었다. 그 빛은 공기마저 맑게 만드는 것 같았다. 달빛이 길을 감싸는 그 순간, 문득 옆에 걷고 있는 그녀를 바라봤다.


그녀도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그러다 동시에 고개를 돌렸다. 우리 눈이 정확히 마주쳤다. 짧지만 긴 순간이었다. 달빛 속에서 그녀의 얼굴이 선명하게 보였다.


“달이 참 예쁘네요.”

“달이 참 예쁘네요.”


우리는 동시에 말했다.


그리고 둘 다 놀란 듯 멈칫하더니, 이내 웃음을 터트렸다. 그녀의 웃음소리가 밤의 고요를 깨뜨렸다. 밝고 선명한, 그러나 잔잔한 물결처럼 울리는 소리였다. 그 순간, 내가 3년 동안 쌓아온 거리감은 한순간에 무너졌다. 그녀의 웃음이, 그리고 그 웃음을 감싸는 달빛이 내 마음 깊숙한 곳을 흔들었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저 바라보았다. 달빛 때문인지 그녀의 얼굴은 더 빛나 보였다. 웃는 입술, 반짝이는 눈, 그리고 그 표정 속에서 느껴지는 어딘가 모를 따스함. 그 모든 것이 내 머릿속에 박제되는 듯 선명하게 각인되었다.


지하철역까지의 길은 짧았다. 짧게 이어진 대화 속에서 그녀의 목소리가 나를 한껏 몰입하게 했다. 다정하고 차분한 그녀의 말투는, 우리가 처음 만났던 3년 전부터 변하지 않았다.


“잘 가요.”

역에서 우리는 각자의 방향으로 나뉘었다. 그녀는 내 쪽으로 손을 살짝 흔들고, 반대편 플랫폼으로 내려갔다. 나는 그녀가 멀어지는 모습을 한참 동안 지켜보았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그녀의 얼굴이 눈앞에 떠올랐다. 아니, 잔상처럼 남았다. 달빛 아래 웃던 그녀의 얼굴이 계속해서 머릿속을 맴돌았다. 술기운 때문일까, 아니면 그녀 때문일까. 온몸이 묘하게 가벼워지면서도 허전했다.


침대에 누워 눈을 감아도, 그녀가 내 옆에서 웃던 모습이 떠올랐다. 그날, 3년이라는 시간이 단 15초 만에 뒤바뀌었다. 그녀를 향한 마음이 그렇게 깊이 뿌리내렸음을 깨달았다.


달빛 아래 그녀와 눈이 마주친 순간, 그리고 그 짧은 웃음소리.

내일 그녀를 다시 만나게 되면 무슨 말을 할까. 어떻게 다가가야 할까.

그런 상상들을 하며 나는 잠에 들었다.


그녀를 보고 싶은 마음을 가득 안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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