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새로운 정의

by someformoflove

사랑은 단 한 번 뿐이라 믿던 시절이 있었다.

한 번 찾아온 사랑은 절대적으로 소중하며, 그 하나로 모든 생애가 완성된다고 여겼다. 그래서 처음의 사랑은 내 전부였다. 나는 그것이 곧 나의 운명이자 삶의 이유라 여겼고, 모든 것을 내던졌다. 그러나 그 믿음은 허무하게도 깨어지고 말았다. 사랑의 자리에 남은 것은 텅 빈 상처와 쓰디쓴 후회뿐이었다.


그 뒤로 나는 스스로를 단단히 묶었다. 사랑은 더 이상 내게 열리지 않을 문이었다.

그런 나에게 그녀가 찾아왔다.


우리의 만남은 극적이지 않았다.

낭만적인 해외 여행지의 배경도, 운명처럼 서로를 알아보게 되는 찰나의 순간도 없었다. 그저 흐릿한 일상의 틈에서 우연히 마주했고, 아주 단순한 마음으로 서로에게 끌렸다. 나는 그녀를 좋아했고, 그녀도 나를 좋아했다. 그렇게 우리는 연인이 되었다.


하지만 사랑이라는 단어는 내게 여전히 금기였다.

사랑은 모든 것을 바쳐야만 성립한다고 굳게 믿던 내게, 그녀는 그 모든 것을 요구하지 않는 사람이었다. 오히려 그녀와의 시간은 부담감 없이 편안했다. 나는 그 평온함을 ‘사랑’이 아닌, 그보다 조금 가벼운 감정으로 치부했다. 혹여 다시금 무너질까 두려워, 애써 감정을 사랑이라 부르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나를 변하게 했다.

늘 불안과 근심으로 무거웠던 내 삶은 그녀를 만난 이후로 사뭇 달라졌다. 그녀는 나를 덜어내고, 비워내고, 그러면서도 다시 채워갔다. 나는 그녀와 함께하는 순간마다 웃음 짓게 되었고, 과거엔 알아차리지 못했던 소소한 행복들을 발견하기 시작했다. 세상은 전보다 조금 더 밝아졌고, 나 자신 역시 이전과는 다른 사람이 되어가고 있었다.


어느 저녁, 한강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해가 지는 강물을 바라보았다.

창문을 열자 겨울 끝자락의 찬 공기가 스며들었다. 그녀와 나는 서로의 얼굴을 마주하지 않은 채, 그저 강 너머로 떨어지는 노을을 바라보며 한가로운 대화를 이어갔다. 다리 위로 지하철이 지나가며 쿵쿵 울리는 소리마저도 이상하리만치 따뜻했다.


문득, 이 순간이 내 삶에서 유일무이하다는 기분이 들었다.

불현듯 나는 그녀를 향해 조용히 말했다. “사랑해.”


그 말이 입술을 떠나는 순간, 심장이 미친 듯이 뛰었다.

그녀는 환히 웃으며 대답했다. “나도.” 그리고 나를 가만히 안아주었다. 그날, 그녀는 말보다는 행동으로, 그저 단순한 온기로 내게 충분히 답했다.


그 순간, 나는 깨달았다.

사랑이란 반드시 모든 것을 내던져야만 하는 격정적인 감정이 아니라는 것을.

사랑은 때로는 나를 부수기 위해 찾아오는 것이 아니라, 천천히 나를 덮어주고, 내가 조금 더 좋은 사람이 되도록 어루만지는 감정이라는 것을.


나는 여전히 사랑을 두려워하는 사람이다.

그러나 그녀를 통해 알게 되었다. 사랑은 두렵고도 무거운 짐이 아니라, 가벼운 손길로 나를 편안하게 감싸는 힘이라는 것을.

그녀는 내게 사랑의 새로운 정의를 가르쳐주었다.


사랑은 한 번 뿐이라는 나의 믿음은 틀렸다.

어쩌면 사랑은 여러 번 찾아오며, 그 모습 또한 매번 다를지 모른다.

그녀와 함께하는 지금의 사랑은 더 이상 나를 무너지게 하지 않는다. 그저 그녀의 존재로 충분히 충만하고, 그 충만함이 또 다른 행복을 만든다.


이제야 나는 사랑을 말할 수 있게 되었다.

다시 사랑할 용기를 내게 준 사람, 그녀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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