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라스 위에 홀로 선 그는 담배에 불을 붙였다. 연기가 폐로 깊숙이 들어오는 순간, 그의 손끝이 여전히 미세하게 떨리고 있음을 깨달았다. 감각이 무뎌질 만큼 긴 밤이었다. 연기를 뱉으며 그는 고개를 들어 도시의 불빛을 바라봤다. 바깥세상은 여전히 움직이고 있었지만, 그의 시간은 멈춰 있었다.
이별은 몇 마디 말로 이루어지는 일이 아니다. 그는 그것을 이제야 이해하고 있었다. 이별은 서서히, 보이지 않는 방식으로 다가오는 것이다. 관계의 틈새가 벌어질 때마다 무언가가 조금씩 떨어져 나가고, 그것을 알아차린 순간에는 이미 손에 남은 것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녀는 자주 말했다.
“우리, 왜 이렇게 만나기가 힘들지?”
그는 매번 같은 대답을 반복했다.
“조금만 기다려줘. 나도 노력하고 있어.”
그는 정말로 노력하고 있었다. 출근길에도, 업무를 마치고 돌아오는 밤에도 그녀를 생각했다. 하지만 생각만으로 채워지지 않는 간극이 있었다. 그녀는 그를 기다렸고, 그는 그 기다림을 이해한다고 믿었지만, 이해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았다.
처음엔 작은 일들이었다. 약속을 미룬 적이 많아졌다. 몇 시간 늦게 도착하거나, 피곤한 얼굴로 그녀 앞에 앉는 일이 늘어났다. 그는 사소한 문제라고 여겼다. 그녀는 웃으며 말했기 때문에, 화내지 않았기 때문에, 문제는 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는 보지 못했다. 그녀의 웃음이 점점 얇아지고, 시선이 자주 멀어지며, 대화 중간에 더 길게 침묵이 흘러가는 순간들을. 그 모든 것은 그녀가 이미 마음속에서 준비하고 있던 끝이었다.
마지막으로 그녀가 이별을 말했을 때, 그는 왜 그녀를 붙잡지 않았는지 스스로도 이해할 수 없었다. 아니, 어쩌면 이해하고 있었지만 인정하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그녀는 떠나기로 결심한 사람이었고, 이미 수백 번 마음속에서 떠나간 사람이었다. 그 결심을 꺾기엔 그의 노력도, 그의 말도 모두 지지부진하고 무의미하게 느껴졌다.
그날 밤, 테이블에 마주 앉아 그녀의 입에서 “여기까지만 하자”는 말이 나왔을 때, 그는 모든 것이 끝났음을 깨달았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분노나 절망 같은 강렬한 감정은 느껴지지 않았다. 대신 공허함이 찾아왔다.
“왜?”
그는 그 질문을 던지면서도 답을 알고 있었다. 그녀가 더는 견딜 수 없는 관계를 지키려고 했던 자신을 위해, 그 또한 뭔가를 내려놓아야 한다는 사실을.
“널 기다리는 시간이 점점 나를 잠식해. 아무리 사랑한다고 해도, 내가 혼자서만 버티고 있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하면 결국 내가 나를 지키지 못하게 돼.”
그녀의 말은 평온했지만, 그것이야말로 그를 더 깊이 찔렀다. 사랑이 변한 것이 아니라, 그 사랑이 그녀를 지키지 못했다는 것을. 그는 그녀가 혼자서 얼마나 많은 시간을 버텨왔는지, 얼마나 깊은 외로움 속에 갇혀 있었는지를 그 순간 처음으로 온전히 이해할 수 있었다.
“너도 알잖아. 내가 무너지는 걸 너도 보고 있었을 거야. 그런데도 아무 말하지 않았던 건, 아마 너도 끝을 느꼈기 때문 아닐까?”
그는 대답할 수 없었다. 그녀가 떠나야 했던 이유를 인정하는 순간, 자신의 무력함이 더욱 선명해졌다. 붙잡지 않은 것이 아니라, 붙잡을 수 없었던 것이다. 사랑은 언제나 노력으로 유지될 수 있다고 믿었지만, 그 노력마저도 어느 순간 상대의 짐이 될 수 있다는 것을 그는 너무 늦게 배웠다.
그는 담배를 손가락 사이에서 빼내 난간 위에 눕혔다. 연기는 점점 옅어져 갔고, 밤공기를 따라 사라졌다. 그녀는 떠났다. 남겨진 것은 빈 방과 가득한 침묵뿐이었다.
그는 그녀가 떠난 후에야 그동안 자신이 무엇을 잃었는지 깨달았다. 그녀는 늘 그의 곁에 있었고, 그는 그것을 당연하게 여겼다. 그녀의 사랑은 불평하지 않았고, 요구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는 그것이 끝나지 않을 거라 생각했다. 그러나 사랑은 가만히 머물러 있지 않았다. 기다림이 길어지면, 사랑은 스스로를 갉아먹는다. 그녀는 기다렸고, 그 기다림 끝에서 자신을 잃지 않기 위해 그를 떠났다.
그는 마지막 담배를 비벼 끄고 방으로 들어갔다. 이제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이었을까? 그녀를 떠올리며 후회하는 것일까, 아니면 그녀가 말했던 “기다림 속에서 무너져가는 사랑”을 되돌아보는 것일까?
침대에 눕자, 그녀와 보냈던 시간이 선명하게 떠올랐다. 웃던 그녀, 화내던 그녀, 그리고 마지막으로 그를 떠나던 그녀. 그는 그녀의 뒷모습을 계속 떠올렸다. 그것은 그녀가 떠났다는 사실을 매번 확인시켜 주는 장면이었다.
사랑이 무너진 자리에는 결국 텅 빈 공간만 남는다. 하지만 그 공간 속에서도 연기처럼 스며드는 기억들이 있었다. 그녀의 목소리, 손길, 웃음. 그는 그것들을 품고 살아갈 것이다. 담배 연기가 사라지듯, 그녀와의 기억도 언젠가 흐릿해질 날이 올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날이 오기 전까지, 그는 그녀를 사랑했던 시간을 곱씹으며 그녀를 떠나보내는 연습을 계속할 것이다.
사랑은 끝났지만, 그 흔적은 여전히 그의 삶에 남아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