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은 평소와 다르지 않은 날이었다. 우리는 자주 가던 카페의 익숙한 자리에서 마주 앉아 있었다. 따뜻한 커피 잔 사이로 건네던 대화가 오늘따라 무거웠다. 처음엔 사소한 이야기였다. 그녀가 요즘 느끼는 피로, 내가 했던 무심한 행동들. 그런데 대화는 점점 날이 서기 시작했다.
“넌 내가 얼마나 너한테 맞추면서 살아왔는지 몰라.”
나는 참지 못하고 큰소리를 내고 말았다. 작은 서운함을 꺼내놓는 그녀의 말에, 나도 모르게 감정이 폭발한 것이다.
그녀는 조용히 나를 바라봤다. 그 시선이 나를 더 불안하게 했다. 차라리 화를 내주거나, 말다툼을 이어가 주었더라면 내가 조금은 덜 초라했을 것이다. 그런데 그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슬픈 눈으로 나를 보았다.
나는 억울했다. 나 나름대로 그녀를 위해 최선을 다했다고 믿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녀가 좋아하는 것들을 함께 했고, 그녀가 힘들어할 때마다 옆에 있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내 말이 틀리지 않다고 여겼다.
하지만 정작 모든 걸 포기하며 나를 사랑했던 건 그녀였다.
그녀는 너무 사랑했지만, 이제는 더 이상 버틸 힘이 없었다. 내가 알지 못했던 그녀의 마음속 상처들은 시간이 지날수록 깊어져 있었다. 그녀는 끝까지 나를 위해 애썼지만, 그 자리에서 이별을 결심할 수밖에 없었다.
그녀의 눈빛은 그 모든 걸 말해주고 있었다. 내가 미처 보지 못했던 고통과 외로움, 그리고 더 이상 남아 있지 않은 에너지. 그녀는 더 이상 나와 싸우고 싶지도 않았고, 나를 원망하고 싶지도 않았다. 그저 이대로 끝내야 한다는 결론에 도달했을 뿐이었다.
그녀의 슬픈 눈빛이 나를 무너뜨렸다. 모든 말과 행동이 멈춰버린 순간, 나는 내 안에 남아 있던 억울함과 분노조차 어디로 가야 할지 몰라 방황했다. 내가 뱉었던 모든 큰소리가 얼마나 공허한 것이었는지 깨달았다.
그녀는 마지막으로 자리에서 일어나기 전에, 나를 가만히 끌어안았다. 그것이 어떤 의미인지, 그때는 알 수 없었다. 나중에서야 그게 이별의 인사였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녀는 모든 것을 포기하기 전에, 마지막으로 내게 온기를 남기고 떠난 것이다.
그 순간 나는 생각했다.
“그렇게 내게 벌을 준 걸까?”
차라리 그녀가 나를 원망하고, 화를 내며 떠났더라면 어땠을까. 그녀가 내게 슬픔을 남긴 대신, 분노를 남겼더라면 나는 덜 괴로웠을까. 하지만 그녀는 그조차도 하지 않았다. 나를 미워하지 않고, 나를 이해하려는 눈빛으로 떠났다. 그것이 오히려 나를 더 괴롭게 했다.
그날 이후, 나는 자주 그 순간을 떠올린다. 그녀의 말, 그녀의 침묵, 그리고 그녀의 마지막 눈빛. 그것은 시간이 지나도 흐려지지 않는 기억으로 남았다. 내가 왜 그날 그렇게 큰소리를 냈는지, 내가 왜 그녀의 진짜 마음을 이해하지 못했는지 자꾸만 되돌아보게 된다.
그녀는 떠났고, 나는 남았다. 나는 여전히 그녀의 슬픈 눈빛을 떠올리며 스스로 묻는다.
“그렇게 내게 벌을 준 걸까?”
그 대답은 아마도 영원히 알 수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