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 시간 마음이 차갑게 멈춰 있었다. 정확히 언제부터였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어떤 특별한 사건이 있었던 것도 아니다. 그냥 서서히 그렇게 된 것 같다. 감정이라는 건 늘 움직이고 흘러가야 한다고들 하지만, 나의 마음은 어느 순간부터 꽁꽁 얼어붙은 채 멈춰 있었다. 차갑고 고요하게.
그 상태는 불편하지 않았다. 적어도 그때는 그렇게 생각했다. 기쁨도 슬픔도, 어떤 뚜렷한 감정도 느끼지 않는 무채색의 시간이 오히려 안정감처럼 느껴졌다. 무엇인가에 마음을 쓰지 않아도 되고, 무언가에 기대하지도 않아도 되는 상태. 그 상태가 좋았다기보다는, 그게 익숙했다.
그런데 오늘, 평소보다 조금 더 따뜻한 곳에서 피어 있는 꽃 한 송이를 보게 되었다. 정말 아무것도 아닌 장면이었다. 겨울의 끝자락에 아슬아슬하게 피어 있는 작은 꽃. 눈길을 끌 만큼 화려한 것도 아니고, 특별히 희귀한 것도 아닌 꽃이었지만, 그 장면이 이상하게도 내 안에 오래 머물렀다.
마음이 이상했다. 그 꽃이 내게 무언가를 말하고 있는 것 같았다. “나는 이렇게 피어 있네. 넌 어떠니?” 그런 질문을 던지는 것처럼 느껴졌다. 차갑게 멈춘 마음속에서 그 말을 들었을 때, 나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나는 언제부터 이렇게 멈춰 있었던 걸까. 멈춘 마음이 편하다고 생각했던 게 사실은 무뎌진 감정이었을까. 아니면, 더 이상 무언가를 느끼고 싶지 않아서 스스로를 닫아버린 걸까.
그 꽃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 꽃이 있는 공간의 온기와 빛이 내게 질문을 던지는 것만 같았다. ‘네 마음도 이렇게 따뜻해질 수 있지 않을까?’
한참을 바라보다가 걸음을 멈췄다. 가까이 다가가 꽃잎의 결을 바라보았다. 정교하고 섬세했다. 작은 바람에도 흔들리는 모습이 연약해 보였지만, 그 자리에 피어나기 위해 분명 어떤 견딤과 시간이 필요했을 것이다. 그건 쉽게 피어난 게 아니었다. 그리고 그걸 알아차린 순간, 묘하게도 내 마음 한편에서 아주 약한 움직임이 느껴졌다.
아주 사소한 변화였다. 따뜻한 곳에서 피어난 꽃 한 송이가 내 마음을 어떻게 움직일 수 있을까. 그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설명할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설명할 수 없기 때문에 더 진짜처럼 느껴졌다.
어쩌면 그 꽃은 나에게 시간을 알려주는 것일지도 모른다. 멈춘 채로 있던 시간은 이제 그만두어도 괜찮다는 신호. 차갑고 고요한 무채색의 공간에서 조금씩 나와도 괜찮다고 말해주는 것일지도. 그 말을 들으면서도, 여전히 마음속에는 얼어 있는 부분이 남아 있음을 느낀다.
하지만 그 꽃을 보고 난 이후, 나도 조금씩 움직일 준비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음이 다시 따뜻해지는 데에는 시간이 걸릴 것이다. 그리고 그 온기가 언제쯤 느껴질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그것을 느껴보고 싶다는 작은 바람은 생겼다.
꽃 한 송이가 주는 온기가 마음속 어딘가를 건드렸다. 그리고 그 작은 변화는 나를 다시 움직이게 할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