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단명을 말하는 걸 좋아하지는 않아요’

by someformoflove

어느 날, 한 의사가 이런 말을 했다.

“진단명을 말하는 걸 좋아하지는 않아요. ‘우울증이에요’라고 말하는 순간, 환자가 그 단어에 갇혀버리거든요.”


그 말은 의외로 오래도록 내게 남았다. 나는 정의 내리는 것에 익숙한 사람이었다. 어떤 일이든, 어떤 사람의 행동이든 이해하고 정의를 내려야만 비로소 마음이 편안해지는 타입이었다. 명확하지 않은 것은 나를 불안하게 만들었고, 그래서 모든 것을 깔끔하게 설명하고자 애썼다.


그런 내가 들었던 의사의 말은 적잖은 충격이었다. 내가 그동안 삶을 살아가며 무언가에 이름을 붙이고, 그것을 정리하고, 그 틀 안에서 판단해 왔던 방식이 얼마나 제한적일 수 있는지 깨닫게 해 줬다.


나는 일반적인 사고방식을 가지고 세상을 바라보는 데 어려움이 있는 사람이다. 사회적 통념이나 감정적인 접근보다, 이해를 바탕으로 움직이는 쪽에 가깝다. 내게는 모든 것이 납득할 수 있는 형태로 정리되어야 했다. 인간의 감정조차도 직접 경험하지 않으면 가볍게 여기는 경우가 많았다. 누군가의 슬픔이나 분노가 내게 이해되지 않으면, 그것은 별다른 무게를 가지지 못했다.


이런 사고방식의 장점도 있다. 나는 들어오는 정보를 객관적으로 판단하고, 상대가 원하는 결과를 도출하는 데 능숙하다. 내게 주어진 데이터를 분석하고, 그것으로 행동 지침을 만들어내는 과정은 꽤나 자연스럽다. 하지만 단점도 뚜렷하다. 나는 정의 내린 것에 갇히기 쉽다.


무언가를 하나의 단어로 규정짓는 순간, 그 단어는 나를 지배한다. 한 번 정의된 개념은 내가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볼 가능성을 차단한다. 그리고 그 정의가 틀렸을 때, 나는 크게 흔들린다. 내가 세운 기준과 다른 정보가 들어오면 머릿속에서 혼란이 시작되고, 종종 삶의 균형이 무너질 때도 있다.


그래서 지금은 정의를 완벽하게 내리기보다, 내가 알고 있는 정보 안에서 스스로 옳다고 생각하는 대로 행동하며 살아가고 있다. 정의를 내리지 않기 위해서라기보다는, 그 정의에 지나치게 얽매이지 않기 위해서다.


이 방식은 완벽하지 않다. 나는 여전히 이해되지 않는 사회적 통념 앞에서 머뭇거린다. 누군가가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것들이 내게는 쉽게 납득되지 않는다. 보편적 사고로 세상을 바라보는 사람들에게는 너무 당연한 것들이 내게는 큰 장벽처럼 느껴질 때도 많다.


그래서 나는 내 경험과 데이터를 기준으로 살아가기로 했다. 지금까지 살아오며 얻은 정보들을 토대로, 그것이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선에서 행동하기로 마음먹었다. 정의는 나를 안정시켜 줄 수 있지만, 동시에 나를 가두는 울타리가 될 수도 있다. 그 울타리에서 조금씩 벗어나기 위해 노력하는 중이다.


의사의 말처럼, 나 역시 내가 규정한 것들에 갇히지 않으려고 한다. 삶은 결코 하나의 단어로 정의되지 않는다. 감정도, 관계도, 경험도 끊임없이 변화하는 속성을 가지고 있다. 나는 이제 그것을 조금 더 이해하기 위해, 정의에 대한 집착을 내려놓고 조금 더 유연하게 살아보려 한다.


완벽하게 이해할 수 없어도 괜찮다. 때로는 설명되지 않는 감정과 현상 속에서도 살아가는 법을 배워야 한다. 그것이 아마도 삶을 더 풍부하게 만들어주는 과정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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