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이 무뎌진 이유

by someformoflove

감정이 무뎌진 건 시간 때문일까, 아니면 너무 많은 사람을 떠나보낸 탓일까. 두 가지 중 어느 것 하나로 딱 잘라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감정이라는 건 하나의 원인으로 설명되지 않으니까. 그러나 어느 순간, 나도 모르게 감정이 둔해지고, 마음이 차분하다 못해 텅 비어버린 듯 느껴지는 건 사실이다.


처음엔 시간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시간이란 잔잔한 파도처럼 모든 걸 덮어버린다. 날카롭게 아팠던 기억도, 벅차게 설렜던 순간도 시간 앞에서는 결국 희미해진다. 그래서 아마 나의 무뎌진 마음도 시간이 가져온 자연스러운 결과일 거라고 스스로를 설득했다.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 보니, 그저 시간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내가 감정을 잃어가는 동안, 너무 많은 사람을 떠나보냈다. 가족, 친구, 연인. 가까웠던 사람들이 하나둘 내 곁을 떠났다. 그 떠남은 어쩔 수 없는 것이기도 했고, 때로는 내 잘못이기도 했다. 어떤 이별은 자연스럽게 스쳐 지나갔고, 어떤 이별은 눈물과 후회 속에서 끝이 났다.


이별이 반복될수록, 떠나보내는 일에 익숙해졌다. 처음에는 가슴 한구석이 아리고 허전했지만, 그 공허함도 점점 익숙한 감각이 되었다. 사람을 떠나보낼 때 느껴야 할 감정들은 마치 견딜 필요가 없는 짐처럼 내게서 떨어져 나갔다.


그러나 감정이 무뎌졌다고 해서 괜찮아진 건 아니다. 오히려 이 무뎌짐이 내게 불편하게 다가온다. 과거의 나였다면 누구를 떠나보낼 때마다 울고 분노하며, 그 사람을 얼마나 소중히 여겼는지 실감했을 것이다. 그런데 지금의 나는 떠남 앞에서 울지 않는다. 슬픔이 내 안에서 자리를 찾지 못한 채 맴돌다가 그저 사라질 뿐이다.


감정이 무뎌진 이유가 시간이든, 떠나보낸 사람들 때문이든, 그 결과는 같다. 마음속에 더는 큰 파도가 일지 않는다. 대신 잔잔하고 고요한 바다가 남아 있다. 그런데 그 고요함은 편안함이 아니다. 마치 숨죽인 침묵처럼, 어딘가 불안하다.


그렇다고 해서 이 무뎌진 마음을 부정하려고 하진 않는다. 어쩌면 이것도 나의 일부일 테니까. 마음이 둔해졌다고 해서 사랑할 수 없거나, 새로운 만남을 기대할 수 없는 건 아니다. 단지, 예전처럼 격렬하고 뜨거운 감정은 더 이상 내 것이 아니게 되었을 뿐이다.


나는 여전히 살아가고 있다. 감정이 무뎌졌다는 것은, 많은 것을 견디며 여기까지 왔다는 뜻일지도 모른다. 떠나보낸 사람들이 남긴 자리가 나를 단단하게 만들었을 것이다. 그 단단함이 무뎌짐이라면, 나는 그것을 온전히 받아들이려 한다.


시간이 감정을 희미하게 만들었든, 떠나보낸 사람들이 그 흔적을 옅게 했든, 중요한 건 내가 여전히 이곳에 있다는 사실이다. 무뎌진 마음으로라도 나는 여전히 나의 하루를 살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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