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사랑은 죽었다.
아니, 심정지 상태다.
20대의 내 심장은 무모할 정도로 빠르게 뛰었다. 마치 한계가 없다는 듯이, 혹은 한계를 시험해 보겠다는 듯이. 그렇게 맹렬하게 뛰던 것이 이제는 멈춰버렸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정지 상태로 들어갔다. 심장은 뛰는 것이 아니라 쉬는 법을 배우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20대에는 사랑이라는 감정이 늘 극단적이었다. 사랑에 빠지면 모든 것을 걸었고, 그 감정에 취해 내가 어디까지 갈 수 있는지조차 알지 못한 채 질주했다. 어쩌면 그럴 수밖에 없었다. 나에게 사랑이란 마치 불길과도 같았다.
20년간 식물인간처럼 잠들어 있던 심장이 깨어난 순간, 그 불길은 순식간에 타올랐다.
어린 시절에는 사랑을 몰랐다. 감정을 드러내는 것에 서툴렀고, 누군가를 좋아하는 마음조차 제대로 정의하지 못했다. 그리고 그런 시간이 오래 지속됐다. 사랑이라는 감정에 둔감한 채, 그저 살아가던 시간이 쌓였다. 그러다 첫사랑이 찾아왔을 때, 심장에 붙은 불씨는 급격히 번지기 시작했다.
그렇게 20대의 사랑은 맹렬하게 타올랐다.
사랑은 활활 타는 장작불 같아야 한다고 믿었다. 그래야만 서로를 뜨겁게 품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불길이 꺼질까 두려워 더 많은 장작을 넣고, 더 많은 감정을 쏟아부었다. 하지만 불길이 너무 강하면 결국 주변까지 태워버린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그렇게 타오른 불은 결국 숯으로 변했다.
30대에 접어들면서, 사랑은 이전과는 달랐다. 불길이 아닌, 숯이 되어 은근한 열을 내는 사랑이었다. 뜨거운 불길이 아니더라도 온기는 충분했다. 강렬하지 않아도 오래 갈 수 있는 사랑. 그게 어른의 사랑이라고 믿고 있었다.
그러나 그 사랑에도 다시 불길이 찾아왔다.
잔잔하게 타던 숯에 예상치 못한 불씨가 떨어졌다. 처음에는 작은 불꽃이었다. 하지만 그 불꽃은 점점 커져갔고, 이전처럼 모든 것을 태워버렸다. 불길이 높아질수록, 나는 불안해졌다. 이 온기를 잃게 될까 봐, 이마저도 사라질까 봐. 그래서 불을 더 키웠다. 불을 키우면 더 오래 남을 거라 믿었다.
그러나 결국, 모든 것은 전소되었다.
사랑은 서서히 작은 불로 계속 온기를 유지시키는 것이 맞았다. 하지만 나는 그 온기가 약해지면 사라질까 봐 불을 더욱 키웠다. 결국, 온기를 나누는 것이 아니라 서로에게 화상을 입히는 결과를 만들었다. 불길이 사라지고 나서야 알았다. 불이 꺼질까 두려워했던 마음이 결국 불을 전부 삼켜버렸다는 것을.
지금, 내 심장은 다시 정지 상태다.
이제는 쉽게 다시 뛸 것 같지 않다.
어느 날 밤, 혼자 거리를 걷다가 오래된 건물의 벽을 따라 불어오는 바람을 맞으며 이런 생각을 했다. 사랑이란 반드시 다시 오는 것일까? 어떤 사람들은 그렇다고 말한다. 시간은 새로운 사랑을 데려온다고. 하지만 그 ‘새로운 사랑’이라는 것이 과연 같은 종류의 것일까?
한 번 전소된 심장은 쉽게 다시 뛰지 못한다.
다시 불을 붙일 수도 있겠지만, 그 불이 예전과 같을 거란 확신은 없다. 타버린 재 위에서 새로운 불꽃이 일어날 수도 있겠지만, 그 불이 따뜻할지, 차갑게 스러질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래서 지금은 기다릴 뿐이다.
기다린다기보다는, 그저 멈춘 채 있는 것에 가깝다. 불이 꺼진 난로처럼, 바람이 불어도 흔들리지 않는 타버린 나무처럼.
그게 절망적인 일은 아니다.
그저 그런 것이다.
그저, 그럴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