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몇 주 동안 내 삶은 단순했다. 아니, 단순해졌다.
머릿속을 가득 채우던 감정들이 사라지고, 그 빈자리를 사진이 대신했다.
이전까지의 나는 온전히 내 감정에 충실했다.
글을 썼고, 생각을 기록했고, 감정이 흐르는 대로 두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글을 쓰지 않게 되었다.
사진에 집중하느라, 혹은 그냥 바빠서. 그렇게 하루 이틀 미루다 보니, 자연스럽게 감정에서 멀어졌다.
그리고 그 사실을 자각한 건 아주 사소한 순간이었다.
겨울이 깊어질수록 날씨는 차가워졌다.
찬 공기를 들이마실 때마다 몸이 움츠러들었고, 손끝은 금방 얼어붙었다.
사진을 찍기 위해 현장으로 나섰을 때, 나는 두꺼운 장갑을 끼고 있었다.
셔터를 누를 때마다 어색한 감각이 느껴졌다. 손끝으로 느껴지는 섬세한 감촉이 아니라, 둔탁한 압력만이 남았다.
그때 문득 깨달았다.
“내 감정도 이 장갑처럼 둔해졌구나.”
예전의 나는 셔터를 누르며 순간을 온전히 느꼈다.
빛의 각도, 공기의 냄새, 찰나의 움직임까지.
그런데 요즘의 나는 단순히 ‘찍어야 할 것’을 찍고 있었다.
사진을 찍는다는 행위는 같았지만, 감각이 다 달라져 있었다.
나는 무엇을 찍고 있는 걸까.
그저 먹고살기 위해서?
그렇게까지 해야 할까?
사진을 처음 시작했을 때를 떠올려봤다.
그때는 모든 것이 새로웠다.
셔터를 누르는 순간이 짜릿했고, 사진 한 장에 담긴 감정이 뚜렷했다.
사진을 찍는다는 건 내 안의 무언가를 기록하는 일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어느 순간부터 사진이 기록이 아니라 ‘일’이 되어버렸다.
감정을 담는 것이 아니라, 결과를 만들어내는 일이 되었다.
사진을 찍는 나는 여전히 같은 사람이지만, 그 안의 감각은 전혀 다르게 변해버렸다.
“이게 맞는 걸까?”
이런 생각이 들 때면 도망치고 싶어진다.
카메라를 내려놓고, 다시 글을 쓰고, 온전히 내 감정에 충실한 시간을 보내고 싶어진다.
그런데 과연 나는 사진을 포기할 수 있을까.
사진 없이도 잘 살 수 있을까.
잘은 못 살아도, 행복할 수는 있을 것 같다.
적어도 지금처럼 나를 잃어버리는 감각에 시달리지는 않을 테니까.
어쩌면 사람은 본능적으로 도망칠 곳을 찾는 존재일지도 모른다.
지금의 나는 사진에서 도망치고 싶어 하지만,
언젠가 글을 쓰는 것에서도 도망치고 싶어 질지 모른다.
그렇게 돌고 돌아 다시 사진을 찾게 될 수도 있다.
그렇다면, 도망치지 않고 계속할 방법은 없을까.
사진을 하면서도 나를 잃어버리지 않는 방법은 없을까.
아니면, 애초에 한 가지 길만 고집하지 않아도 되는 걸까.
겨울은 길다.
하지만 결국 지나간다.
지금 내가 겪고 있는 이 감정도 결국 지나갈 것이다.
그리고 지나간 후에야, 나는 지금의 내 선택이 맞았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러니 일단은 조금 더 버텨볼까 싶다.
도망치는 건 언제든 할 수 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