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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mehow Jan 23. 2018

그만두어야 할 때를 아는 것 1

 _수영

무언가를 새로 배우고, 시작한다는 것은 미래지향적이며 대체로 희망적이다.

세상에 태어나 첫걸음마를 배우고, 말과 글을 배우고, 자전거를 배우고, 운전을 배우고...




나 자신을 더듬어 보니 나는 비교적 무언가를 배우거나 새로 시작하는 일에 꽤 적극적인 편이었다. 그리고 그중에는 25세가 넘어서야 처음 배우기 시작했던 수영 swimming이라는 운동도 있다.


기억해보니 내가 처음 수영을 배우기 시작한 것은 1994년 봄이던가, 우연히 종로구에 있는 한 신문사 편집부에서 계약직으로 일하게 되면서부터였다. 그로부터 무려 25년째 나는 이른 아침 자유수영으로 하루를 시작해왔다. 숨쉬는 것빼고 이렇게 꾸준히, 내 인생의 절반정도에 이르는 시간동안 이어온 취미생활이자 운동은 수영이 아마 유일한 듯 싶다. 수영은 전신운동이고 유산소운동이며 이른 아침 무렵에 차가운 물속에 들어가는 것만으로도 삶의 활력소가 되어준다. 물속에서 자유롭게 호흡하며 유영하는 것에 익숙해진 나에게 수영은 언제부턴가 내 삶의 매우중요한 일부가 되었다.

또한, 올해 87세가 되시는 나의 어머니도 나와 함께 수영을 시작하시어 어느새 25년의 경력에 이르렀음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더욱 놀라운 것은 그전까지는 특별한 취미활동이나 운동을 따로 한 적이 없던 어머니때마침 수영을 시작하게 된 내가 '수영을 배워보시겠느냐'고 제안드리자 무척 기뻐하시며 주저 없이 나를 따라나섰다는 점이다. 60세가 넘은 그 연세에도 어머니는 그렇게 새로운 배움에 도전하셨다. 그로부터 어머니는 주부강습반에서, 나는 새벽 강습반에서 몇 개월에 걸쳐 각자 수영능력을 익혀나갔다.... 그리고 어느새 25년이 흐른것이다. 그러는 동안 어머니나 나는 수영의 매력에 푹 빠졌고 잘하든 못하든 열심히 자신의 생활 속에서 짬을 내어 자유수영을 꾸준히 이어가며 건강과 삶의 활력을 유지해왔다.

나는 가끔 수영이 너무 즐겁고 그 시간이 좋아서 나이가 80,90세가 되더라도 지치지 않고 수영을 잘 할 수 있게 건강을 유지해야겠다는 다짐을 하기도 했다.  


그런 어느날부터인가 나는 낯선 이정표앞에 서게되었다. 선택지로 친다면, '조정이 필요하다'를 선택해야하는 것이다. 그것은 곧 나와 함께 수영을 시작한 어머니가 먼저 어느새 80대 중후반에 이르렀다는 사실을 상기하는 일로 시작되었다. 몇년전까지만해도 여전히 정정해서 앞으로 20년은 더 끄덕없을 것같던 어머니가 언제부턴가 하루가 다르게 노쇠해지는 것을 느낄 수 있을 만큼 노쇠해진 것이다. 그 연령대가 되면 시기의 늦고 빠름의 차이는 있겠으나 대부분 누구나 그러하듯 몸의 여기저기가 고장나게 마련이다. 그리고 그것은 한두 번의 수술이나 재활, 혹은 특별한 관리만으로 결코 젊은 시절만큼 회복될 수 없는, 노화와도 밀접하게 연관된 기능의 장애에 다름아니었다.

그제서야 나는 생각을 다시 하기 시작했다. 어머니가 거동을 못하게 되기 전까지는 수영장에 다니며 수영을 못하더라도 걷기운동이나 샤워만으로도 건강유지에 도움이 될 것이며, 그렇게 계속 함께 새벽 수영을 다니도록 노력하려던 예전의 각오를 수정해야 할 때가 된 것은 아닌가 하고 말이다. 

그렇게 생각을 고쳐먹을 필요를 더 느끼게해 준 은 바로 수영장에서 종종 겪게 되는 사고에 관한 소식들이었다. 노인들이 주로 이용하는 시간대에 어느 노인이 탈의실에서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큰 실수를 하는 광경이 다른 이용자들에 의해 목격되었던 것이다. 그 일은 삽시간에 많은이들에게 알려졌다. 그리고 80-90대의 노인들 중에 거동이 상당히 불편한데도 수영장에 다니고 요실금이나 변실금이 있는 노인들이 자신의 상태를 가벼이 여기고 공중시설을 이용하는데 대한 불안과 불만 섞인 이야기들이 회자되었다.

그러한 사건사고에 대해 전해 들으면서 연로하신 나의 어머니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아직 실수를 한 적은 없으나, 그럼에도 어쩌면 어머니가 수영을 멈추어야 할 때가 바로 지금이 아닐까... 나는 이런 생각을 어머니께 말씀드렸고 잠시 생각하시던 어머니역시 나의 의도를 이해하고 동의하셨다.

그렇다. 조금만 더, 조금만 더 하다가 본의 아닌 순간, 예상치 못하게, 뜻밖에도, 아차 하는 순간 실수를 저지른 뒤에는 늦고 말 것이다. 그러니 아쉬울 때, 조금 더 해도 괜찮을 것 같은데 하는 아쉬움이 있는 바로 지금이 의연하게 수영을 그만둘 때인 것같았다.

한편으로 어쩌면 나는 못된 자식일지도 모르겠다. 어머니를 모시고 수영장 다니는 게 귀찮아서 떼내버리려고 수를 썼다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일부러 따로 시간을 내서 모셔다 드리는 게 아니라 내가 가는 시간에 함께 오가는 것뿐이었으니 나는 특히 불편하거나 귀찮을 일은 없었다.


이제 주3회 정도의 아침 수영을 그만둔 어머니에게는 그만큼의 운동량을 따로 채워야 하는 새로운 숙제가 생겼다.

어쨌거나 어머니는 지난 12월로 24-5년간 이어온 즐거운 수영생활을 마감하셨다. 혹시, 많은 사람들이 이용하는 시설에서 본의 아니게 노인으로서 실수를 저지르기 전에 스스로 멈추기로 하셨으니, 약간의 아쉬움이 남기는 하나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다.


이즈음에서 나는
어떤 일에서든
멈춰야할 때를 스스로 알고 실행하는 것이
얼마나 쉽지 않은 일인가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나는 결코 노인들에 대해 폄하하려는 의도가 없으나, 수영장에 오는 노인들 중에는 제 몸 하나도 가누기 힘겨운 몸짓으로 수영장에 셔틀버스를 타고 와서 허우적거리듯 시간을 보내고 가는 분들을 흔히 본다. (특히 최근들어 도시화가 진행중인, 원래 농촌이던 우리동네의 원주 노인 분들은 평생의 농사일에 매우 노쇠해진 노구를 이끌고, 수영은 못하더라도 걷기라도 하자는 심정으로, 소일삼아 수영장을 찾는 분들이 적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우리 동네 수영장관리자의 말을 빌면, 노인 이용자가 늘면서 종종 수영장물에 ×덩어리가 떠오를 때도 있으며, 걷기를 하다가 그대로 의식을 잃고 고꾸라지는 노인들도 더러 있다는 것이다. 이런 소리를 들을 때면, 노인들께서 노년의 건강유지를 위해 운동을 하는 것은 매우 바람직한 일이나 다른 운동과 달리 옷을 벗고, 수영복을 입고, 다중이 함께 운동하는 풀장에서 몸을 움직이는 운동을 하다 보니 노인들의 의지와 다르게 실수를 하는 일일 벌어지지 않도록, 본인들이 혹은 가족이 먼저 몸 상태를 체크하고 관리할 필요가 있다는 생각을 하게된다.

문제는 그뿐이 아니다, 경로우대가 수영장이용에도 적용되어서 65세 이상은 일정금액 할인을 해주는데...그게 잘못된 일은 아니지만, 이용제한 나이 상한선이 없다는 것은 무조건 바람직한가 따져보아야 할 것같다.


수영 활동이 몸에 무리도 적고 바람직한 운동이기는 하지만 앞서 언급했듯이 노화에 따른 자기 몸 조절능력 상실과 관련하여, 이를테면 70세 이후로는 수영보다는 다른 운동을 권장하고 계도하는것이 맞지 않을까. 이즈음 걱정스럽기도 하다, 너는 늙지않을 것 같냐는 소리를 들을 것도 같고 노인이라고 무시한다거나 함부로 지껄인다고 욕을 먹을 것도 같다. 그러나 솔직해져야 할 때는 솔직해야 하지 않을까... 혼자 이용하는 시설이 아니니 다른 이들에게 피해가 가지 않도록, 나이 들수록 지혜로워져야 하지 않을까.

나이 들었으니 대접받고 우대받을 것만 챙길 것이 아니라 나이듦에 따라 어쩔 수 없이 겪게 되는 노화 현상과 그에 따른 스스로의 몸의 변화, 건강상태의 변화에 따라 계속해야 할 것과 멈추어야 할 것, 혹은 새로 시작할 수 있는 것을 되짚어 확인하고 삶의 '주로'를 변경하고 수정해야 하지 않을까. 물론 이번 생은 처음이라 모두가, 누구나 다 서툴겠지만.

(그렇다, '이번 생은 처음이라...' 얼마 전 케이블 티비에서 방영된 드라마. 제목이 독특하고 충격적이어서 처음부터 끝까지 재미있게 본 드라마다. 지금 이 세기를 사는 우리 모두에게 이번 생은 누구나 처음이라는 깨달음을 준 저 드라마 제목이 어찌나 충격적으로 신선하던지!

아, 그렇구나 이번 생은 누구에게나 처음이겠구나....감탄했던 기억이 있다.)   


2016summer@somehow


그리고 한걸음 나아가 나또한 언제쯤 이 즐거운 수영을 그만두어야 할까.
지금은 너무 추워서 1달 정도 쉬고있지만 곧 다음달부터 다시 혼자 수영장을 다니게 될 터인데, 타인에게 민폐끼치지 않고 그렇게 매일 아침 수영을 즐기다가 딱 그만둘 수 있는 마춤한 시점은 언제가 될까 짐작해본다. 내 어머니처럼 무탈하게 80대까지 이어갈 수도 있을 것이고 오히려 그전에 건강이 더빨리 나빠져 일찌감치 수영을 그만두게 될 수도 있을것이다. 그때가 언제가 되든지, 후회없고 아쉬움없도록 하루하루를 열심히 사는 것만이 지금의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임에는 틀림없어 보인다. 그러면 그만둘 때가 됐을 때, 나는 아무런 미련도 없이 유쾌하게 돌아설 수 있을 것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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