_전혀 상상하지 못했던 만남들에 대히여
전혀 상상하지 못했던 일이 이루어지는 경우가 있다.
머리가 썩 좋은 것도 아니고 남보다 탁월한 재능이 있는 것도 아니어서 어영부영 남들처럼 책가방 들고 학교문턱을 넘나들다보니 가방끈도 남들만큼 그럭저럭 어깨에 두른 젊은 날, 이제와 생각해보면 젊음이야말로 돈 주고도 살 수 없는 값진 시간이었음에도 미처 알지 못한 채 어서 빨리 나이들어 좀더 지혜로워지고 어른다워지고싶어, 안달난 하룻강아지처럼 어둠이 깊다못해 희부옇게 밝아오도록, 세상을 다 잃은 듯 때로는 세상이 모두 내 것인 듯 객기를 부려대던 시절이 있었다.
가끔 생각한다....
그때 좀더 다르게 살았더라면 지금 나는 얼마나 다른 길을 가고 있을까...
태어날 때부터 소심하고 주눅들어 사람들 앞에서 큰소리로 얘기하는게 제일 못할 일이고 누군가 말이라도 걸어오면 대답하기전 이유없이 눈물부터 쏟던 찌질한 아이가 어떻게 죽지도 않고 오늘까지 살아냈다...
철들면서부터 세상이 두려웠고 주위로부터 신뢰받지 못하는 아이는 스스로에 대한 존재감도 갖지 못한 채 어서어서 세상 속으로 가방들려 내몰리며 떨리는 가슴을 숨기고 의젓한척 태연한 얼굴로 쓰러지지 않으려 애쓰는동안 여기까지 왔다.
늘 도전하는게 무서워서 좀 어려운 과제가 나오면 지레 겁먹고 포기하던 나는 대학졸업까지도 뭐하나 딱 부러지지 못해 스스로 괴롭고 힘들었다. 나 자신조차 스스로를 믿지 못하는 심정이란...
그럼에도 돌아보면 버거운 한계상황에서 나름 최선을 다해 정글같은 현실을 더듬어 헤쳐나왔다. 어줍잖은 재능에 기대어 글을 쓰기 시작한 것도 어쩌면 한계상황에서의 최선의 방책이었음을 인정해야겠다.
그리고 어느날 백마탄 왕자를 만났다!
그는, 세상에서 한번도 본 적 없는 왕자님. 잘 생기고 똑똑한데 나를 사랑하기까지 하다니!
전혀 상상하지 못했던 일이 일어나기도 한다.
세상에서 처음 본 왕자와 함께 운명처럼 같은 곳으로 말달리기 시작한 뒤, 나는 우연히 악기를 배우게 되었다. 그 또한 내 삶에서 일어나리라 기대해 본 적 없던 일이었다.
어느해 겨울, 생일선물로 그에게 받은 목관악기 플루트는 지금의 나를 있게 한 의미있는 존재다.
그전까지 피아노도 배운 적 없고 음악이라고는 그저 흥얼거리며 노래나 따라부를 정도일 뿐 이론에도 실기에도 영 젬병이었던 내가, 플루트를 연주하게 되리라고는 상상한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로부터 얼떨결에 무작정 레슨을 시작하고 날마다 열심히 연습했다.
시간이 흐르고...어느새 나는 수년전부터 아마추어 플루트 오케스트라 단원으로 활동하게 되었으니, 이 또한 전혀 상상하지 못했던 일임에 틀림없다.
내성적이어서 사람들과 잘 어울리지도 못하고 사회성이 부족해 직장생활도 길게 해본적 없는 내가 단순한 취미활동으로 시작한 악기 덕분에 수많은 단원들과 오케스트라 활동을 하게되다니!
전공자와 비전공자로 이루어진 30-40여 명의 오케스트라 단원은 30대에서 60대까지 다양한 연령대로 성별제한은 없으나 어찌된 일인지 남자단원은 아직 없다. 이들 모두 다른 지역, 서로 다른 환경과 경험과 이력을 가졌으나 플루트라는 악기 하나로 한자리에 모이게 된 인연 또한 매우 특별하고 소중할 수밖에 없다.
우리는 매년 땀흘려 정기연주회를 준비하고 공연장을 빌려 친지와 이웃들을 초대하곤 한다.
오케스트라는 특히 서로의 소리에 귀기울이며 조화를 이룬다는데 의미가 있다.
서로 작은 소리를 모아 크고 아름다운 하나의 하모니를 이루어내는 것,
그것이 바로 오케스트라의 진정한 의미 아닌가.
이번 정기연주회는 3월 하순, 새봄으로 예정되어 있다.
내가 그를 만나지 못했더라면 아마도 나의 삶은 분명히 지금과는 달라졌을 것임에 틀림없다.
그리고 나는 지금 그런대로 행복하고 무난한 하루하루를 살고 있다. 하느님의 특별한 선물, 뤼팽이와 세상에서 자기 자신보다 더 아끼고 사랑해주며 내가 하는 일에 대하여 무한 지지를 보내주는 멋진 남편과 이제 나는 특별할 것 없고 아무렇지않게 서로 마주보며 늙어가는 바람이 있을 뿐이다.
세상에는 결코 상상하지 못한 일이 일어나기도 한다.
그것은 인연이고 운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