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마다 산책하는 강아지
2003년생 뤼팽은 하루중 가장 중요한 일과로 산책을 꼽는다.
녀석은 눈을 뜨는 순간부터 내 바짓자락을 붙잡고 따라다니며 오늘은 언제쯤 산책을 나갈것인지 알아보기 위해 눈치를 살피느라 분주하다.
화창하거나 무난한 날씨일 경우, 봄가을은 정오무렵에 한여름에는 가능하면 아침 일찍, 겨울에는 햇님이 따뜻하게 달아오를 무렵인 오후 2-3시에 산책을 가는게 일반적이다.
365일 매일 나가는 산책인데도 뤼팽이는 날마다 산책 갈 기미만 보이면 오랜 수형생활에서 벗어나기라도 하는 죄수처럼 팔짝팔짝 뛰어오르거나 온 집안을 전속력으로 내달리며 기쁨을 표시한다.
이런 녀석을 두고 바쁜 일로 산책을 건너뛰어야 하는 날이면 그 실망스러워하는 표정이나 몸짓을 보기가 무척 죄스럽기까지 하다.
내가 녀석의 입장일지라도, '겨우 하루에 한번 코에 바람 쐬어주면서 그걸 건너뛴다는것은 너무나 가혹하다'는 생각이 들 것같다.
그래서 가능하면 나는 아무리 춥거나 덥거나 비가 오거나 눈이 오더라도
산책을 거르지 않으려 최선의 노력을 다한다.
녀석이 나에게, 우리에게 주는 기쁨과 행복감, 마음의 위안을 생각하면
그것은 너무나 하찮고 아무것도 아닌 성의표시가 아닌가 말이다.
어느덧 뤼팽이는 14세가 되었다.
어느날 갑자기 우리집에 나타나 당황스러운 한편으로 뜻밖의 기쁨과 행복을 안겨주기 시작한지 14년째다.
이제 녀석에게는 살아온 날보다 살아갈 날이 더 짧게 남아있다.
종종 이웃의 어느 강아지는 13살에 세상을 떠났다하고 또 어느집 강아지는 너무 늙어 산책도 못한다는 소리를 들을 때면 나는 뤼팽이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나이는 먹을만큼 먹었어도 밖에 나가면 아직도 잘생겼다느니 멋지다느니 소리를 듣고 나이를 알려주면 사람들은 깜짝 놀라며 그렇게 많이 나이들어보이지않는다며 칭찬을 해댄다. 그건 사실이다.
보통 나이들어 쇠약해진 강아지들은 걸음걸이도 시원찮고 눈빛도 맑지 않은데, 뤼팽이는 안구건조증이 있음에도 검은 눈동자는 매우 초롱초롱하다. 아직 백내장도 걸리지 않았고 관절염도 걸리지 않아 매일 산책도 무난하다는 사실이 다행스럽다.
그러나 사실 뤼팽이는 이미 수년전 지방종 제거수술을 했다.
슈나우저라는 종의 특성상 지방종이 잘 생긴다는데 어릴때 어느날부턴가 온몸 이곳저곳에 지방덩어리같은 멍울이 혹처럼 생겨나기 시작했던 것이다. 그중에 가슴에 생긴 한 덩어리가 점점 커져서 아기 주먹만큼이나 되었다. 의사와 우리는 모두 일단 지켜보고 있었다. 악성은 아니므로 서둘러 제거할 필요는 없으나 어느 정도 이상 커진다면 그때 제거해도 늦지 않기 때문이었다.
그러다 결국 3-4년전 가을, 우리는 큰맘 먹고 그 혹을 떼내는 수술을 하기로 결정했다.
그냥 두어도 생명에는 지장이 없으나 그동안 계속 커져온 것을 볼 때 앞으로 더 커질 것으로 짐작되므로 결국 언젠가는 제거를 해야 하는데, 더 나이들어 수술이 위험한 지경이 되기 전에 조금이라도 젊을 때 수술하는 것이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5-6시간에 걸쳐 전신마취와 수술, 회복과정이 이루어졌다. 수술은 잘 됐고 그후 다른 작은 지방종들은 그냥 없어지거나 그대로 있는 상태로 호전되었다.
그외에도 뤼팽이는 안구건조증과 갑상선기능 저하증을 가지고 있다. 나이가 들어갈수록 사람과 마찬가지로 신체의 기능이 저하되어 여기저기 질병이 생기는 것이다. 안구건조증은 매일 인공눈물을 넣어주는 것으로, 갑상선 질병은 매일 호르몬 보충제를 먹는 것으로 관리한다.
아직 뤼팽이는 건강하고 지금같아서는 스무살이 되어도 이렇게 오늘처럼 쌩쌩 바람을 가르며 나와 함께 아침산책을 할 것만 같다....
그러나 시간은 붙잡을 수 없는 것이고...더늦기 전에 이제부터라도 녀석과의 추억을 하나씩 정리해볼까 한다.
산책을 좋아하는 뤼팽이가 좋아하는 간식은 당근이다.
어느날 우연히 주기 시작했는데, 생당근을 얇게 썰어 두고 간식이 필요할 때 제공한다.
적당한 수분과 천연의 달달함이 맛도 좋고 눈에도 좋기 때문인지 뤼팽이 눈은 저렇게 초롱초롱하다!
산책에서 돌아와 발바닥을 씻어말리고 보상으로 먹는 당근을 얼마나 좋아하는지!
.......그래서 뤼팽이가 행복했으면 좋겠다.
날마다의 산책과 맛난 당근 간식, 한가한 낮잠과 적당한 개구쟁이짓을 하며
아무렇지 않고 특별할 것 없는 하루하루가
녀석에게는 그냥 나른한 평화였으면 좋겠다. 그래서
먼 훗날, 이별을 하게될 때
우리와 함께 지낸 시간들이 그리 나쁘지 않았다고 생각됐으면,
조금 행복했다고 기분좋게 눈 감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러니까 뤼팽, 오늘처럼 내일도 가는 거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