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오빠가 가지고 있던 이 사진은 수년전 심장마비로 어느 밤 홀연히 우리 곁을 떠난 (사진속)둘째 오빠가 품에 간직하고 있던 유품에 다름 아니다.
자식을 셋이나 낳고도 저당시 어머니의 나이는 29세였다 한다.
그중 큰딸이 국민학교에 입학하게 되자 그 기념으로 사진을 찍을 생각을 하셨다고 한다. 함께 찍은 막내아들은 서너살이었다고 기억하신다.
8세무렵 언니의 취학기념
코로나시국에 맞은 어머니의 구순 생신에 세 모녀만이 조촐하게 일식집에 모여 앉았을때, 언니가 저 사진 액자를 선물로 꺼내었다. 큰 오빠가 원래 작은 사진의 크기를 확대하여 새로 뽑아 액자에 넣어 선물로 보내온 것이다.
둘째 오빠가, 가족들을 두고 먼저 세상을 떠나기까지 쓸쓸하고 고단한 그 자신의 품속에 두고 얼마나 오랜 세월동안 들추어 보았을까 생각하니 가슴 한켠이 아련해져왔다.
저토록 젊은 어머니가, 저리도 야무지고 똘망똘망한 자녀들과 먹고 살기 위해 그토록 고단한 삶을 살았다는 사실은 사진 속에서도 읽힌다.
_큰 오빠는 왜 없어?
내가 물었다
_시골에 보냈지.
언니가 대신 답한다.
_왜?
_엄마가 바느질을 해야 먹고 사는데 새끼들이 옆에서 왔다갔다하면 일을 못하니까, 외갓집에 보냈지. 그래서 사진은 같이 못 찍었어. 그러다 학교갈 때 되면 데려오는 거야. 저 아이가 엄마와 찍은 사진은 저것 뿐일거야. ...훗날 외갓집에 보내진 뒤로 다시는, 어른이 될 때까지 엄마를 못만났을 거야...
어머니와 헤어진 뒤로, 둘째 오빠는 저 사진을 꺼내어 보며 엄마 얼굴을 들여다보며 그리움을 달래왔을 것이 아닌가. 그럼에도 훗날, 어른이 되어 엄마를 다시 만나게 되었을 때 오빠에게 어머니는 차라리 비현실적이었다. 어머니는 사진으로만, 희미한 서너살 시절 채 기억속에 넉넉히 담아두지도 못한 상태로 헤어진 뒤 그저 막연한 젖내음으로만 상상해왔기에, 막상 눈앞에 마주한 어머니를 그는 어떻게 대해야 할 지도 몰라 전전긍긍했을 것이다.
생때같은 자식들을 떼어놓고 집을 나서야 했던 그 시절, 어머니의 심정은 또한 얼마나 처참했을 것인가...아무리 해도 나는 당신들의 그 고통과 절망의 시간을 겨우 눈곱만큼 가늠하려 애쓸 뿐, 틀림없이 끝내 충분히 이해하지도 공감하지도 못할 것이다.
이제 고통과 슬픔과 좌절과 애련한 그 시절로부터 까마득한 시간이 흘렀어도 사진 속 어머니는 여전히 젊고 곱다. 어린 자식들과 그게 마지막 사진이 될지도 모른다는 사실은 미처 깨닫지 못한 채 눈깜박이지 않으려 긴장한 60여년 전 젊디젊은 당신의 모습이 담긴 액자를 받아 집으로 돌아온 뒤, 어머니는 한동안 사진 속 자신을 한참씩 응시하며 세월의 무상함에, 어쩌면 삶의 회환에 젖어드는 듯했다.
살기 위해 더욱 단단해지고 고통에 무감해지기 위해 노력했으며, 어쩔 수 없었던 자신의 원죄를 참회하고 보상받기 위해 어머니는 하루하루 언제나 혹독하게 스스로를 담금질해왔다.
힘겨운 삶의 굴곡을 헤쳐나와 늙고 병든 몸으로 어느덧 지난 시절을 돌아보며 그렇게 감회의 시간을 갖게 되리라고 그 때는 꿈에도 생각지 못했을 것이다.
하루하루 저 먼 산 너머로 점점 길고 짙은 그림자만을 남기며 저물어가는 어머니의 시간 앞에서 나 또한 나의 지난 시간들을 문득문득 떠올린다. 힘에 겨워 헐떡이고, 높은 산과 수렁을 피하기 위해 그저 멀리멀리로만 돌아가려 했던 것은 아닌가 나의 지나온 발자욱을 되짚어 보게 된다. 조금 더 열심히 치열하게 살았어야 했나, 하는 참회의 시간이 잦아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