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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혼없는 약속

_직원휴게실의 정체

by somehow

지난해 중순 즈음이던가.

정확한 일자는 기억나지 않으나 이른바, 전국의 특산물을 가지고 6차산업 제품을 생산하는 업체들이 모여 서로의 제품에 대한 경쟁력을 뽐내고 품평하는 어떤 경진대회가 열린다고 했다.

6차산업이란, 1, 2, 3차 산업을 복합해 농가에 높은 부가가치를 발생시키는 산업을 이르는 용어로, 국내에서 사용되는 공식 명칭은 '농촌융복합산업'이다. 이는 농산물을 생산만 하던 농가가 고부가가치 상품을 가공하는 것은 물론 향토 자원을 이용해 체험프로그램 등 서비스업으로 확대시켜 높은 부가가치를 발생시키는 것을 말한다.
6차 산업의 국내 공식 명칭은 '농촌융·복합산업'이다. 현재 농림축산식품부에서는 6차 산업 사업자를 대상으로 성장 가능성 등을 고려해 심사를 거친 뒤 '농촌융복합산업(6차 산업) 사업자 인증서'를 수여하고 있다. 농촌융복합산업 사업자 인증제는 농업인·농업법인을 인증하여 핵심경영체를 육성하는 시스템으로, 농촌의 다양한 유무형 자원을 활용하여 농업(1차산업)과 2·3차산업을 연계하여 새로운 부가가치를 창출하고 향후 성장가능성이 있는 농업인·농업법인을 인증하여 핵심경영체로 육성하기 위해 도입되었다.
[네이버 지식백과] 6차 산업 (시사상식사전, pmg 지식엔진연구소)


그러니까 더팩토리_D처럼 지역특산품인 특정 농산물을 이용해 상품을 만들고 그와 함께 체험프로그램을 운영하는 회사들의 경쟁력을 품평하는 대회라고 할 수 있다. 사장은 매회 참가했으나 번번이 상위 입상에 실패하였다고 했다. 2020년에도 열리는 대회에 다시 도전하게 된 사장은 이번에는 기필코 상위권에 입상하겠다고 벼르는 듯했다. 수위에 오르면 적잖은 상금을 받을 수 있다고 했다. 우리가 보기에 대회입상의 목적은 그 상금이 틀림없었다.

코딱지만한 더팩토리_D의 사무실 한쪽 벽면에는 창업당시부터 10여년간 다수의 경진대회 등에 도전하여 받아낸 상장들과 잡지따위에 청년사업가로 소개된 기사들이 도배되어 있었다.


그 여름 예상치 못한 어느날, 사장이 사무실로 회의를 소집했다. 여러가지 이야기를 하던중, 사장이 입을 열었다.

-지금 있는 창고를 다른 쪽으로 옮기고 그 자리에 직원들 휴게실을 만들거에요.

이게 웬일? 휴게실이라니? 모두들 뜻밖의 사장의 말에 얼굴을 마주보았다.

직원휴게실이 없어서 늘 사무실이나 탈의실에서 잠깐씩밖에 쉬지 못하는 것이 마음에 걸렸다며, 이번에 기회가 생겨서 만들어 주겠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자신은 늘 직원들에게 무엇을 더 해줄까 고민한다고도 덧붙였다.

나를 포함, 모두가 대환영이었다.

늘, 다리 쭉 펴고 잠시라도 온전히 쉴 수 있는 휴게공간이 절실했던 생산직 근로자로서는 그보다 기쁠 수가 없었다. 그 자리에서 내가 근로자 대표(직원들 중에서 근로자 대표를 선정하는데, 앞서 근로자대표로 일하던 직원이 퇴사한 이후 얼덜결에 내가 지목되어 역할을 맡고 있었다. 이름만큼 뭘 할 수 있는 자리도 아니고 그저 허울뿐이었으나 그 자리를 핑계로 사장은 주민등본 따위의 서류를 요구하기도 했다.)로서 당부를 더했다.

-그러시면, 다리펴고 쉴 수 있는 방으로 만들어 주세요!

-알겠어요!

사장도 선선히 대답했다. 너무나 선선한 그 대답이 의외였으나 믿어보기로 했다.

그 다음으로, 전국특산품경진대회 얘기를 꺼냈다.

-그 대회에 우리 회사도 참가할건데, 여러분이 도와주셔야 해요.

그러면서 상위에 입상해서 '상금을 받으면 직원들한테 소고기를 사주겠다'며 당근을 던지는 것도 잊지 않았다.

회의가 끝난 뒤,점심시간이던가 경리와 직원들끼리 모였을때, 우리는 모두 정말 휴게실이 생기는지 긴가민가하며 화제에 올렸다. 그러자 경리가 정보를 주었다.

'이번에 지원금 받은게 있어요. 직원휴게실을 만드는데 쓰는 조건으로 지원금을 신청했는데 선정됐거든요. 그걸로 하는 걸 거에요.'

그럼 그렇지, 사장이 제 돈 써가며 난데없이(?) 휴게실 같은 걸 만들어 줄 리는 없지, 하면서도 어쨌든 그렇게라도 진정한 의미의 휴게실이 생긴다면 모두에게 좋은 일이니까,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그로부터 일은 지체없이 진행되는 듯했다. 새 컨테이너(실은 중고컨테이너)가 수일내로 들어올거라 그전까지 현재의 창고로 쓰이는 컨테이너를 마당의 건너쪽 빈 자리로 옮겨야 했다.

문제는 창고용 컨테이너 안에 가득 들어차 있는 엄청난 양의 포장박스묶음들을 먼저 꺼내는 일이었다. 창고는 거의 발을 디딜 틈이 없을 정도로 내포장, 외포장용 박스류외에도 온갖 장동사니와 싱크대와 가스렌지와 냉장고와 에어컨, 낡은 테이블과 의자 등등으로 가득했다.

처음 그 창고의 용도는 주방이었다고 했다. 공장을 그 곳에 자리잡을 때 주방용으로 그 컨테이너를 들이고 싱크대와 가스렌지와 냉장고, 에어컨, 식탁용 가구들을 갖추었다고 했다. 그리고 그곳에서 점심시간이면 점심을 만들어 먹기도 했으나, 시간이 흐르면서 처음의 용도는 잊혀지고 포장박스들이 들어차면서 어느 순간부터 완전히 창고의 모습을 갖추게 된 것이다.

직원용 휴게실을 만들어주겠다고 밝힌 며칠 뒤, 사장의 지시가 떨어졌다.

-내일모레 새 컨테이너가 올거니까 그전까지 우리가 저 창고를 정리해야 돼요! 오늘 내일 다같이 합시다!

뭐라고? 그게 무슨 소리야? 저 많은 물건들을 우리 더러 다 치우라고? 이 땡볕에!

그럼 그렇지, 그럼 누굴시키겠나?

우리 모두는 황당했으나, 한편으로는 충분히 예견한 일이었다. 결국, 6개월 기한으로 일하고 있던 유일한 남자직원 영업전무와 사장을 포함해 6~7명의 인원이 총동원되어 뜨거운 8월의 땡볕아래서 땀에 흠뻑 젖어가며 일과시간에 그 일을 해야 했다. 그러니끼 그 한여름 땡볕아래서 우리가 한 일은 풀베기뿐이 아니었다.


하루가 너무 길었다. '언제나 그렇듯 먼저 팔을 걷어붙이는 것은 사장이 맞았다. 그러나 끝까지 함께 하지는 않는다. 마무리는 우리 머슴들이 하는 것이다.

간신히 창고 속 물건들을 다 꺼내어 마당 한켠으로 쌓아놓고 땀에 젖은 것인지 물에 빠진 것인지 구분할 수 없게 된 직원들 아니 머슴들은 사장이 던져주는 싸구려 당근을 받아먹었다. 그리고 다음날이던가 지게차가 달려와서 빈 컨테이너를 원하는 위치로 번쩍 들어옮겨주었다.

그때 우리는 의아했다. 아니 처음부터 불만이었다. 굳이 이렇게 힘들게 우리들이 저 창고 속 물건들을 꺼내어 옮기느라 죽을 똥을 싸야 하나? 어차피 옮길 컨테이너인데, 물건이 들어있는 채로 옮길 수는 없을까...

그러자 경리가 또다시 정보를 흘렸다.

사실은 빈컨테이너를 옮기는데 필요한 지게차와 꽉 찬 컨테이너를 옮기는데 필요한 지게차는 이를테면 힘의 차이가 있어서, 빌리는데 지불해야 하는 비용에도 차이가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몇만원 더 주면 물건이 들어있는 채로 컨테이너를 옮길 수있는 힘좋은 지게차를 부를 수도 있었다. 그러나 사장은 한푼이라도 아끼기 위해서, 우리, 놀고 먹는 직원같은 머슴들을 총동원하여 창고 속 물건은 다 빼내고 가벼워진 상태로 조금이라도 저렴한 비용을 들여 빈 컨테이너만 옮기기로 결정했다는 것이다.


물론 빈 컨테이너가 다시 제자리를 찾은 뒤에는 먼저 빼내었던 포장용 박스류들을 원래대로 처넣는 작업도 이어졌다. 모든 것은 머슴들의 성실한 노동으로 완성되었다.

이후 마침내 창고용 컨테이너가 빠진 자리에 직원휴게실용 컨테이너가 들어왔다. 어찌되었거나 우리의 땀과 노력이 더해져 원하던 휴게실을 얻을 수 있다니 다행이라고만 생각하기로 했다.

컨테이너가 들어온 전기를 연결하고 싱크대, 냉장고, 에어컨 등을 다시 설치하는 작업이 이어질 때 우리는 내부를 들여다보았다. 어? 내가 요청했던, 신발 벗고 들어가 다리뻗고 쉴 수 있는 방 형태의 휴게실이 아니었다.

점에 대해 사장에게 물었다.

-방으로 꾸며준다고 하셨잖아요? 지금 보니까 아니네요....?

그러자 사장이 대수롭지 않게 대답한다.

-방으로는 안되겠더라고요. 그래서 못했어요. 그리고 굳이 왜 방처럼 만들어야 하는지 모르겠어요.

태연하고 무심한 그 대답에 나는 화가 났다. 역시 또 거짓말이었구나. 영혼없는 약속이었다.

늘 아무렇게나 입에서 나오는대로 뱉고, 나중에는 자기가 그런 소릴 한 적이 없다고 오리발 내미는게 다반사인 저 사람에게 내가 너무나 큰 걸 기대했구나 싶어서 다시 한번 실망하고 분노했다.

왜 방처럼 만들어야 하는지 이해하지 못하는, 이해하지 않으려는 저 당당함에.


그러나, 그때까지도 직원휴게실에 사장의 더 큰그림에 대한 꿍꿍이가 숨어있었다는 사실은 짐작조차 하지 못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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