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품평회 品評會

_자부심과 자기연민의 의도적 혹은 무방비적 노출

by somehow

한여름 뜨거운 열기를 온몸으로 견디어내며 직원같은 머슴들이 쏟아야했던 땀방울이 없었더라면 직원용 휴게실이라는 이름의 일회성 품평회장을 그토록 짧은 시간내에 완성하기란 쉽지않았을 것이다.

어쨌든, 서둘러 마련된 품평회장을 자랑스럽게 세팅해놓은 뒤 마침내 그날이 되었다.


전국특산품경진대회의 참가자들 중에서 서류심사를 거쳐 예선을 통과한 몇몇 후보자들의 생산현장-공장, 체험학습장 등-을 심사위원들의 실사實를 받는 날.

몇번의 낙선을 거쳐 이번에는 기필코 수위에 입상하여 상금을 획득하겠다는 결의에 찬 더팩토리_D의 사장님은 며칠전부터 직원들을 닥달하여 철저하게 준비를 마쳤다. 당일 아침, 새 컨터이너로 된 품평회장은 겉모습부터 반짝거렸고 내부에는 고급 원목 8인용 식탁세트와 대형 직사각 회의용테이블을 이어붙여 완성한 최대 십수명의 심사위원들이 앉을 수 있는 충분한 객석도 완성되었다.

그 앞쪽 테이블에는 더팩토리_D에서 6차산업과 관련해 지역특산농산물을 가지고 만들어내는 제품의 샘플들을 늘어놓고 사장이 앞에 나서서 자신이 개발하고 생산하는 제품에 대해 설명하고 평가를 받게 될 것이었다.

그러한 만반의 준비는 사장과 경리를 비롯한 몇몇이 맡게되었고 나와 또다른 생산직 한명 역시 이미 며칠전부터 공장 내부를 쓸고 닦고 해가며 심사위원들의 발길을 기다리는 것이다.

현장실사는 사무실과 공장, 체험학습장 등등 더팩토리_D의 모든 공간을 둘러보고 생산과정에 대해서도 확인하고 제품을 맛보고 하는 것이었다. 그로써 참가한 회사의 6차산업으로서의 경쟁력과 제품의 독창성 등...뭐 그런 것을 평가하고 장래성을 보는 것이 아니겠나싶다.

실은 그러한 품평회장 마련에 땀방울을 더한 직원임에도 그저 사장이 시키는일만 하면 되는 일개 생산직 근로자에게는 시시콜콜한 내막을 알려준 적이 없다. 그저 하루하루 사장과 사무실직원들이 더불어 일을 처리하며 필요시 생산직까지 불러내어 이것저것 하라는 일이나 하는 입장에 불과하기때문이 아니겠는가. 그러니 돌아가는 분위기를 보아 그저 그렇게 내 잔머리를 굴려 짐작할 뿐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대체로들어맞는것같았다.


아무튼, 품평회品評會 당일 심사위원들이 도착하기로 되어있는 시각이 가까워질수록 사장의 목소리는더욱 커져갔다. 빠뜨리는 것 없이 잘 챙기도록 독려하는 것이 틀림없으리라.

그러던중, 사장이 나에게 왔다. 그리고는 허겁지겁 다급한 목소리로 말했다.

-선생님,노트북있으시죠? 좀 빌려주실 수 있으세요?

일이 없는 하루하루가 이어지자, 나는 자발적으로 그 '노는 시간'에 식품위생법에 관한 온라인 강의를 들으면 어떻겠냐고 사장에게 물은 적이 있다. 그러자 사장은 좋은 생각이라며 그러라고 했다. 그때 필요해서 노트북컴퓨터를 탈의실 사물함에 가져다 놓고, 그 불편한 탈의실에서 이용한 적이 있다.

그것을 알고있는 사장이 뜬금없이 노트북을 빌리자는 것이다. 그때는 이미 노트북은 집에 다시 가져다 둔 상태였다. 없다고하자, 사장이 고민하다가 다시 돌아와 말했다.

-혹시 집에 가서 노트북을 가져올수는 없을까요? 제가 지금 품평회에서 프리젠테이션을 할때 써야하는데 제노트북 외에 한대가 더 필요하거든요. 그런데 어디 빌릴 데가 없네요....

하하...그토록 자신의 명운을 걸다시피하고 오래전부터 준비해온 품평회에 중요한 프리젠테이션 도구인 그것을 제대로 챙기지 않았다는 점이 안타까웠다. 그것이야말로 심사위원들에게 자신의 모든 것에 대해 효과적으로 알릴 시청각도구로 활용될 수 있다는 점에서 최우선으로 준비했어야 한다고 나는 생각되었다.

그런데 그것을 당일 아침에야 불과 30여분 전에야 어디서 빌려 보려는데 없다니, 그래서 일개 생산직 나부랑이한테 빌려달라며, 현장에 있지도 않은 그것을 집에 까지 가서 가져오라는 말이다.

한숨이 나왔다. 사실은 전혀 그러고 싶지 않았다. 황당했기 때문이다.

그리 중요하지도 않은 식탁세트를 80만원씩이나 주고 선뜻 사들이는 사람이 정말 중요한 노트북을 챙기는데는 소홀하고 잠깐 빌려쓰면 된다는 생각을 했다는 것이 우스꽝스러웠다. (실은 매사에 그랬다. 뭐든 굳이 사지 않아도 되는 것은 어디서든 빌려다 쓰는 알뜰주의자였다. 정말 사야할 것은 수십번 다시 생각해 보다가 마지못해 울며겨자먹기 식으로 사는 것이다.앞에서도 이미 얘기했듯이.)


결론적으로 나는 실소를 금치 못한 채, 왕복15분 거리의 집으로 달려가 노트북컴퓨터를 빌려주었다.

그렇게라도 사장에게 도움을 줄 수 있으니 다행이라고는 생각되지 않았다.

자신의 필요에 의해, 너무도 뻔하게 느껴지는 '우리 회사가 잘 되면 너도 좋은 것 아니냐'는 식의 뻔한 동지의식을 억지스럽게 강요하는 느낌때문이었을까.

내가 빌려준 노트북 덕분에 프리젠테이션은 무사히 마쳤다고 했다. 십여명의 심사위원들 앞에서, 그 자신의자부심과 자기연민 사이 줄타기하면서.

그날 심사위원들과 사장만 남아서 프리젠테이션을 하게 되어있는 자리에 얼덜결에 보조를 하느라 참석하게되었던 한 직원의 목격담에 의하면, 그곳은 앞서 얘기했던 그 자신의 대단한 자부심과 자기연민의 의도적 혹은 무방비적 노출의 현장이었다고 한다.

상황은 이랬다.

두대의 노트북을 이용하여, (한대는 사장 자신이 보면서 또 한대는 심사위원들을 향하게 놓고)프리젠테이션을 하는 것이다. 미리 준비해둔 시청각자료를 화면상으로 넘겨가며, 자신의 이력과 제품개발의 시초와 과정과 고난, 그리고10여년 동안의 더팩토리_D의 이야기를 발표하는 과정에서, 역시나 자신의 출생과 성장, 암에 걸려 생사의 기로를 헤매이다 이겨내고 현재에 이르는 과정또한 당연히 포함되었을 것이다.

바로 그 부분에서, 사장은 또 프로답지않게, 이성적이지 못하게 혹은 동정심 유발작전인듯 아닌듯 의도하지 않은 듯 의도적이게도 울먹이는 것을 빠뜨리지 않았다는것이다.

우연히 그 자리에 곁다리로 앉아있던 직원은 그런 상황에서조차 제 얘기를 하다가 저스스로 연민에 빠져 또다시 뜬금없이 울컥이는 그녀의 모습을 보고 놀랐다고 했다.

아, 얼마나 자신의 지난시절이 사무치도록 아프고 고단했던 것일까. 정말 미안하게도 나는 짐작도 할 수 없어서, 그러한 전언에 그만 실소를 흘리고 말았다.


그러나 공개되고 이성적이며 프로페셔널하게 진행되어야할 자리에서 불쑥 터져나온 울먹임은 그 자리의 심사위원들에게도 적잖이 당혹스러웠던가보다. 더구나 프리젠테이션의 내용이 6차산업과 관련한, 더팩토리_D의 제품의 독창성과 미래성이나 뭐 그런 것에 대한 진지한 어필보다는 사장 자신의 개인적이고 사적인 '고난의 역사'를 어필하는데 더 오랜 시간을 투자했다는 점에 대해 지적했다는 것이다.



어찌되었든, 품평회는 끝나고 시간이 아무리 흘러도 심사결과에 대한 얘기가 없었다.

나는 그 결과가 너무나 궁금했다. 상금을 받으면 소고기를 사주겠다는 사장의 허황된 약속 따위가 기다려져서가 아니었다. 그토록 요란하게 모든 사람들을 동원해가며 도전한 대회에서, 그토록 동정심 유발작전까지 써가며 매달렸던 품평회의 결과가 궁금했을 뿐이다.

그렇게 가을이 저물어갈 무렵이던가, 어느날 경리에게 물었다.

그때 그 품평회 결과는 어떻게 되었는지, 그러자 그녀가 대답했다.

-아,맞아요. O등 했대요.

2등이었는지, 3등이었는지 지금은 정확하게 기억나지 않는다. 1등은 아니었던게 틀림없었다.

-아 그래요? 그런데 왜 우리한테는 말을 안해주는거야? 그 난리를 쳐가며 땡볕에서 고생해가며 도와준게 우리들 아냐? 정말 웃긴다...상금은 얼마받았어?

나는 좀 황당했다.

사무실에 있던 경리는 회사의 거의 모든 일에 대해 자연스레 거의 처음 알게 된다. 그러니 그 대회에서 결국 상위에 입상했다는 사실도 먼저 알게 된 것이다.

그렇더라도 바로 그 입상결과애 대한 내용은 나중에라도 사장이 직접, 늘, 툭하면 불러모으는 사무실 원탁 앞에서 얘기해주기를 나는 바랐기 때문이다. 욕심이었을까?

자신의 필요에 의해 감언이설과 우롱을 뒤섞어 직원들을 부려먹어놓고, 제 입으로 상금받으면 어쩌고 하는 부질없는 약속까지 해놓고, 정작 기대하던 결과를 얻고나서는 은근슬쩍 입을 닦으려는 느낌을 받았기 때문이다.

경리에게 그 사실을 전해 들은 뒤로도 나는 사장이 입상 사실에 대해 얘기를 할 것인지 기다렸으나, 끝내 결코 그런 일은 없었다. 우리는 모두들 입상소식에 대해 마치 비밀인 것처럼 입을 다물고 지냈다. 상금은 600만원인가 700만원이라고 했다.


그 며칠후 점심시간에 회식이 갑자기 잡혔다. 당시 탤런트 이순재가 광고하는 그 돼지갈비집에서, 그때, 한 직원이 무심코 사장에게 물었다.

-사장님, 그 상금 받아서 고기 사주시는 거에요?

그러자, 사장이 눈을 똥그랗게 뜨면서 시치미를 뗐다.

-무슨 소리야! 아니야...

대체 뭐가 아니라는 거지? 소고기 사준댔다가 돈아까워서 돼지고기로 변경하게 되서 쪽팔려서 그러는 걸까, 아니면 상금을 600인가 700인가 받게 됐다는 사실이 우리들에게 알려지는 것이 싫은 것일까.


그 얼마후, 사장이 어느날 아침에 시청에 들어간다고 경리가 말했다. 무슨 일인가 했더니, 600인가 700만원을 상금으로 받게 된 그 대회의 상장을 받으러, 시상식에 참석한 것이다.

얼마나 기쁜 일인가, 이 기쁜 소식을 모두에게 전하고 서로 축하하면 얼마나 좋을 일인가! 그러나 마치 도둑질하듯, 경리 외에는 알리지도 않고 혼자 조용히, 사장님 혼자 상장을 받으러 갔다는 것이다. 나는 자꾸만 기분이 나빴다.

회사에 문제가 생기면 전부 직원들 탓이고 좋은 일이 생기면, 오로지 자신만의 공으로 돌리는 저 당당함이라니!

정말 왜 그러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알려지는게 싫은 것이 명명백백했다. 상을 받는게 문제가 아니라 상금을 받게 됐다는 사실이 알려지는게.

그래서 나는 사장에게 톡을 보냈다.


사장님 축하드려요! 미리 알려주셨으면 다같이 축하드렸을 텐데요.


그러자 사장이 짧게 답했다.

감사합니다.







keyword
이전 20화자부심自負心과 자기연민憐憫 사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