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생산직근로자가 되기로 결심한 것도, 더팩토리_D의 사장이 10여년 전 자신의 생명값을 밑천으로 식품공장을 차릴 생각을 한 것도.
그러니 무조건 열심히, 닥치는 대로 돈만 벌면 최선 아닌가.....정말 최선인가.
우선 눈앞에 돈을 잡기 위해, 오로지 돈을 향해서만, 사람을 도구로 사용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그것은 개같이 벌어서 정승같이 산다는 우리 속담의 깊은 의미를 곡해한 것은 아닐까.
"사람이 돈을 쫓아가면 안 된다, 돈을 벌지 말고 사람을 벌어라"
먹고 살기에 필요한 것은 돈이겠으나, 인간다운 삶에서 정말 중요한 것은 사람이라는 뜻은 아닐까.
사람을 믿지 못하고 믿을 것은 돈 뿐이라는 이들이 많은 시절이다.
더팩토리_D의 사장도 그런 경우다.
그녀는 사람을 믿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녀에게 사람은 그저 자신의 사업을 위한 도구, 소모품일 뿐이다.
더팩토리_D는 사장 자신이 피같은 돈을 투자해 일구었다 해도 공장이 돌아가고 회사가 제대로 운영되기 위해서는 혼자만의 힘으로는 불가능한 것이다. 모름지기 사장은 회사의 성장을 위해, 공장이 제대로 돌아가게 하기 위해 적재적소에 맞는 근로자를 써야 한다. 그리고 그들을 부리는데는 그저 제때 지급되는 월급 외의 능력이 분명히 필요하다. 그러므로 제대로 된 회사에는 사장과 이사와 전무나 상무, 경리, 마케팅이나 홍보 등...역할을 제대로 감당할 인원들이 필요하다. 그리고 채용과정도 매우 까다롭게 마련이다.
하지만 더팩토리_D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당사자가 정부의 지원금 대상이 되느냐 아니냐의 여부만이 중요할 뿐이다. 심지어는 선착순이라고나 할까. 그냥 지원대상이기만 하면 첫번째 면접자를 채용 결정해버린다. 대체로 여러명을 면접보는 이유는 더 나은 능력의 소유자를 고르려는 의도가 있기 때문이 아닌가. 그럼에도 더팩토리_D는 운좋게 첫 번째로 면접을 보고, 지원대상임이 확인만 되면 그대로 결정이 되어버린다. 그 다음에 예정된 면접보러 오는 사람은 어떻게 되냐고? 말 그대로 그냥 면접만 본다. 그 사람은 자신이 형식적인 면접에 시간과 에너지를 낭비하고 있다는 사실도 모른 채 최선을 다할 것이다...
내 경우만 해도 그렇다. 내가 더팩토리_D에 들어간 것은 사장의 나에 대한 호의적인 첫인상과 정부지원금 덕분임이 명백했다.
더구나 더팩토리_D는 조직내 브레인이 전무하다. 사장과 경리와 온라인마케팅을 위해 늘 급조되고 수시로 사람이 바뀌는 자리가 있을 뿐이다.
내가 입사한 이후로 2년여동안 일하는 사이, 대략 3~6개월간격으로 여러 사람이 바통 터치하듯 입사와 퇴사를 이어갔다. 짧게는 딱 하루 근무하고 도저히 일할 곳이 아니라며 뒤도 돌아보지 않고 도망가거나, 두어 달 다니며 간을 보니 도저히 안 되겠는지 이런저런 핑게를 대며 떠나고, 혹은 자의와는 전혀 무관하게 강퇴당한-계약을 연장하고 계속 일하고 싶어하던 62세의 생산직 J여사-경우도 있었으며, 온갖 잡일과 힘든 일은 다 몰아시키면서도 전직원들 앞에 세워놓고 비난과 질책, 화풀이의 대상이 되었던 경리조차 도저히 못견디고 뛰쳐나가고 말았다.
나는, 나 역시 수시로 들고나는 그들을 바라보며, 그들과 별로 다를바 없었다. 악착같이 버티었던 2년여의 기간동안, 나는 그저 하루하루 소모되어갔다. 특히 그만두기 직전 5~6개월동안은 밑천을 적나라하게 아낌없이 드러내는 사장의 태도에 하루하루 모욕감과 분노가 쌓여갔다.
사장은 나를 채용하는 시점부터 생산직 평균연령을 낮추고 회사 전체의 평균연령을 낮추기로 결심한 듯했다. 생산직의 평균연령이 60대이던 것이 내가 입사하고 생산직 젊은 여자애 29살짜리가 들어오면서 엄청나게 '젊어'졌다. 그전부터 사무실이야 기본적으로 30대~40대로 젊은 편이었으나, 지난해 가을, 11월 갑자기 20대 후반~30대 초반의 청년들 넷을 채용하면서 사무실의 평균 연령은 더욱 낮아졌다.
갑자기 무슨 일자리가 넷씩이나 필요하겠는가, 코로나시대에. 일이 없어서 한달 매출이 300밖에 안 된다며 징징대기가 사장의 하루 인사였던 시절에. 그럼에도 여름이 끝나기 전 개인적인 사정으로 중간에 그만둔 내 또래의 체험담당직원 후임으로 서른이던가 서른 둘이던가 하는 젊고 똘똘한 여직원이 들어왔다. 다음으로 '청년디지털 일자리'라는 정부지원금 대상으로 포토샵이나 컴퓨터 활용능력이 있는 27세의 남자애와 서른이 안 된듯한 여자애가 들어왔다. 또 한명 역시 서른살 무렵의 여자애였는데, 특이하게도 재택근무직으로 채용을 했다. 그들 모두는 정부의 빵빵한 지원금을 받는 대상으로 월급의 100% 혹은 적어도 90%까지 나랏돈으로 월급들 받는다고 했다.
젊은 피가 수혈되자, 사장은 자신의 선택이 탁월하고 지혜로웠다고 생각됐는지 한동안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월급의 최대 10%정도만 쓰면서도 그들의 노동력은 100% 당당히 사장 자신의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인지, 그것이 얼마나 남는 장사인지 계산이 끝났기 때문인지 사장은 유쾌하고 행복해보이기까지 했다. 또한 그들과 말이 통한다고 생각했는지, 사무실은 늘 웃음이 끊이지 않았다. 사람을 쓰는데 있어 자신의 능력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해보였다.
그러나, 딱 거기까지 였다. 사장의 잔대가리의 헛점은 머지않아 드러났다.
청년 디지털 일자리는 코로나로 힘들어하는 중소기업을 돕기위해 도입된 제도이다. 아래 주소에 들어가면 내용을 쉽게 파악할 수 있다.
문제는 디지털일자리사업으로 채용된 청년들에게는 원래 주어진 업무 외에는 시킬 수 없게 돼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더팩토리_D의 사장은 그것까지는 미처 생각을 못한 것이다.
그전까지 더팩토리_D는 가끔씩 다급한 납품건이 들어오면 달랑 둘뿐인 생산직 인원만으로는 날짜를 맞추기 어렵기에, 사장 자신은 물론 사무실의 인원들이 모두 달려와 생산포장에 매달렸다. 그들은 자기 본연의 업무외에도 공장이 바쁘다고 할 때마다 위생모자와 가운을 뒤집어쓰고 엉성하고서투르게 내포장과 외포장을 열나게 도왔다.
당연히, 회사가 바쁘다는데, 다 같이 잘 먹고 잘 살자고 하는 짓인데...하는 사장의 유무언의 압력아래 자연스럽게 동원되었다.
그러나, 청년 디지털 일자리사업으로 들어온 젊은 피들은 역시 달랐다. 그들은 그들 자신의 업무와 역할의 한계를 명확히 알고 있었고 한두 번은 이해하고 도와주었으나 그것이 반복되려 하자 반항하고 나섰다. 그들의 태도는 분명하고 당당했다.
전혀 예상 못하고 있던 사장은 당황했다. 그전까지, 더팩토리_D에서 한솥밥을 먹는 이들은 자신이 시키는 대로, 불만이 있어도 그냥 궁시렁대면서도 따랐기에 젊은피들의 낯설고 당당한 반란에 놀라서 사장은 뒤로 자빠질뻔한 것이다.
심지어 그 젊은 피들은 할 일이 너무 없어서 하루종일 휴대폰으로 게임을 하며 시간을 때우기 일쑤였다. 그것은 사장이 있을 때도 변함없었다. 정부지원금 대상으로 합법적인 6개월 계약을 맺은 그들은 그 기간동안 자신들이 결코 짤리지 않으리라는 확신이 있었을 뿐 아니라, 그렇게 종일 빈둥거리는 것은 맡길 일이 없어 시키지못하는 사장의 탓일 뿐, 전혀 꿀릴 것이 없다는 당당한 태도를 보였다.
사장은 그들이 자기 앞에서 대화를 하면서도 양손과 두눈은 휴대폰 게임을 멈추지 않음에도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마치, 병신같았다.
어느 순간부터 상황의 주도권은 젊은 피들에게 넘어가 있었고, 사장은 오히려 그들의 눈치를 보며 전전긍긍하기시작했다.
사장에게 있어 직원들은 다만 돈벌이에 동원되는 포장, 생산의도구이며 소모품일 뿐이었다.
사장은 늘 이렇게 부르짖었다.
우리 제품은 누구나 만들 수 있다!
레시피대로만 하면 되는데 무슨 경력이 필요하냐.
20년 경력자도 써봤지만 초보자보다 더 잘 하는게 아니더라!
방법만 가르쳐주면 당신도 만들 수 있고 아무나 데려다 시켜도 할 수 있다!
이토록 투철한 신조가 있기에 주력 상품인 초콜릿제품을 생산하는 생산직에 경력이 없는, 조리학과를 나왔어도 관련자격증 하나 없이 게으른, 뷔페식당에서 피자만들기나 담당했던 29살짜리 여자애를 아무런 갈등도 없이 90% 지원금 대상이라는 이유로 선뜻 채용할 수 있는 자신감이 가득했던 것이다.
수시로 바뀌고 경력없는 생산자를 쓰는데 대해 내가 가끔, 일관된 품질이 보장되지 않는다고 우려하면, 네까짓게 뭔데 품질운운하느냐는 태도를 보이며 깔아뭉갰다.
직원들은 그냥 일정기간 열심히 돌아가던 톱니바퀴가 마모되면 교체하듯, 쓰다가 버려지는 소모품, 얼마든지 교체 가능한 도구에 불과했다.
더팩토리_D는 일자리창출형 사회적기업이라는데, 일자리창출이라는 의미가 무엇인지 의아했다.
그것이, 가능한 많은 사람들에게 일자리를 주기 위해 일정기간 동안만 일을 하게 하고 그 다음엔 바통터치하듯 내보내고 다른 사람에게 일자리를 주는 것을 의미하는 것인가? 재계약이란 있을 수 없고, 나처럼 정규직이라는 이름으로 채용이 되었어도 지원금이 종료되고 자신의 돈으로 월급을 주는 기간이 1년이 넘어가면 노골적으로 사람을 능멸하고 모욕하며 참담한 심정으로 그만두도록 유도하는 것이 일자리창출형 사회적기업인가?
젊은 피들의 반란에 기겁한 사장은 그후로 다시는 그들에게 납품일을 도우라고 말하지 않았다. 만약 그것을 종용하게 되면, 젊은 피들은 그 사실을 정부에 고발할 수 있고, 그렇게 되면 더 이상 정부지원을 받을 수 없게될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로 인해 일처리에 부하가 걸린 것은 오로지 공장의 생산직, 나를 포함한 두명뿐이었다. 공장은 최소한의 인원으로 유지되어 오고 있었기에 한번씩 일이 몰리면 도움이 손길이 없이는 납기를 맞추기가 쉽지 않았다. 특히, 제품을 생산하는 사람보다, 포장해서 내보내는 일을 해야하는 나혼자 완전한 독박을 쓰게 된 것이다.
그즈음, 나는 빠르게 지쳐갔다.
아무리 완충해도 사용하기 시작하면 금세 방전되어버리는 배터리처럼, 나는 곧 지쳐 쓰러질 것만 심정으로 자동기계처럼 쉴새없이 손을 놀려야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