_막무가내식 밀어붙이기의 고수
그 품평회장, 아니 원래는 직원용 휴게실은 어떻게 되었을까.
시끌벅적, 요란스러운 품평회가 끝난 뒤로 그곳은 당연히 진정한 의미의 직원휴게실로는 활용되지 못했다. 다만, 점심시간이면 인근의 싸구려 밥집에서 배달시켜먹는 도시락을 먹는 공간으로만 작동했다.
사장까지 다해도 10명도 안 되는 인원들이 매일 8인용 원목식탁세트에 둘러앉아, 너무나 저렴해서 거의 다 인스턴트 식품들로 채워진 반찬들로 이루어진 식은 도시락을 까먹는다. 점심시간이면 돈 아끼러 제 집으로 달려가 혼자 점심을 먹곤 하던 사장도 원목식탁에서 밥먹는 즐거움을 누리기위함인 듯, 그때부터는 동참하기 시작했다. 점심시간조차 부자유스러운 시간이 되어갔다.
그렇게 직원휴게실은 점심식사를 위한 공간으로 활용되었고 그 외에는쓸모가 없었다. 비좁은 탈의실이나 그곳이나 불편하게 의자에 쭈그리고 앉아야 하는 것은 마찬가지이니 나도 굳이 쉬는 시간이라고 그곳으로 달려갈 이유가 없었다. 또한 날이 점점 추워지고 한겨울이 되자 아무리 난로를 두개씩 갖다 틀어도 추워서 점심도식락을 먹는것도 힘들었다. 뚜껑을 열자마자, 영하의 내부 공기때문에 음식은 빠르게 식어버렸다. 그나마 뜨거워야 할 국이나 밥마저. 그러니 나중에는 점심시간에도 그곳에 들어가기를 중단하게 되었다. 결국 코딱지만한 사무실에서 너무나 비좁은 원탁에는 다 모여 앉지도 못해서 그냥 대충 자기 책상이 있는 직원들은 그 자리에서 도시락을 까먹어야했다. 늘, 먹어도 배부르지 않는 이상한 식사시간이었다.
내가 더팩토리_D를 그만둔 것은 2021년 4월 말인데, 그 몇달전인 2020년 가을쯤부터 나와 또다른 생산직 여자애의 일이 조금씩 늘어났다. 제품으로 생산되는데 필요한 원재료, 원물이라고도 하는 초콜릿의 유통기한이 임박해졌기 때문이다. 당연히, 코로나때문에 그동안 판매가 부진한 이유로 생산량도 최소량으로만 이어져왔기에 그만큼 원재료의 재고량은 쌓였을 것이다. 그것의 유통기한이 도달했을 때는 폐기해야 한다. 그러나 유통기한의 마지막 날에라도 그것을 이용해 제품을 생산해 내면, 그날로부터 새로 1년의 유통기한이 생겨난다.
따라서 폐기 기한이 다가오는 원물 재고량을 파악하여 가능한한 제품생산에 돌입하게 된다. 제품생산을 도맡은 여자애도 그만큼 바빠지는 것이다.
나는 원래 포장이 전문이지만, 수제초콜릿 한가지를 생산하는 책임이 지워져 있었기에 그것을 해내야했다. 마찬가지로 유통기한 임박 초톨릿 원물을 이용해서.
놀랍게도 유통기한이 한달 정도남았을 때에야 사장이 그것을 지시했다. 매일 최대 몇개씩 만들어낼 수 있는지 계산해보라고 하더니 한달 안에 그것을 다 해내라는 것이었다. 기계를 돌려서 생산해내는 것과 달리 수제초콜릿이란, 말 그대로 거의 내 노동력과 시간만의 결합으로 가능한 것이다. 냉장고와 탬퍼링기구는 그저 보조수단일 뿐이다. 내가 얼마나 많이 손을 놀리느냐에 따라 하루의 생산량이 정해지는 것이었다. 그렇게 한달여 동안 나는 거의 1만개가 넘는 수제초콜릿을 만들어냈다.
힘들었다. 하루 온종일 점심시간 이외에는 쉬지 않고 손을 놀려야했다. 물론 냉장고도 쉬지 못하 는건 마찬가지였다. 앞서 얘기했던 그 식당 주류보관용냉장고.
그럼에도 하루 하루 다가오는 유통기한에 밀려 원재료 초콜릿을 미처 다 사용하지 못하게 될까 걱정되었다. 그래서 휴일에도 일을 해야 했다.
그 일이 끝나자, 사장이 1~2년 전에 개발한 또다른 수제 판형초콜릿의 원재료인 공정무역초콜릿 또한 유통기한이 임박해져왔다. 다시 그것을 수제로, 미친 듯이 만들어냈다. 그 당시를 생각하면 아직도 정신이 없다. 어떻게 그 많은 걸 만들어냈는지 아득할 정도이다. 나중에는 혼자 다 처리할 시간이 부족해 알바생들까지 동원되었다.
그 과정에서 나는 사장과 입씨름을 하기도 했다. 시간이 부족한데 어떻게 유통기한 전까지 만들어내느냐고 하자, 사장이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그 원물 초콜릿을 다 쓰지 못하면 그대로 폐기해야 한다는 것이다.
나는 어처구니가 없었다. 그렇게 아까우면 미리미리 일을 시키든가 할 것이지, 늘 그런 식으로 유통기한이 촉박해서야 일을 시키는게 문제라는 사실을 모르는 것 같았다. 더구나 원재료에 대한 책임을 왜 직원에게 묻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제품으로 생산해내지 못하면 니가 다 사줄거냐니?? 그렇게 절박한 상황에서도 자신은 한 푼도 손해보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기 때문일 것이었다.
또 제품으로 생산하고 나면 다시 유통기한이 1년이 생기니까 판매를 시도할 수도 있고, 그것들을 그 1년내 팔지 못하더라도 힘없는 기부처에 떠넘기고 기부영수증을 받아냄으로써 결과적으로 자신은 거의 한푼도 손해를 보지 않을 수 있게 될 것이기 때문일 것이다. 참으로 훌륭하고 놀라운 잔대가리의 사장님이시다.
어찌되었든, 까라면 까고 만들라면 만들어내야 하는 생산직 노동자로서는 오로지 내 육체의 노동력과 시간과의 싸움으로 간신히, 헐레벌떡, 날마다 밤이면 열손가락이 퉁퉁 부어서 굽어지지도 펴지지도 않는 상황속에서도 한달여에 걸쳐 수만 개의 판초콜릿을 만들어냈다. 그 과정의 세세한 스토리는 더이상 떠벌이고 싶지도 않을 정도이니 이 정도로 정리해본다.
참, 한가지, 그 수만개의 공정무역 판초콜릿의 포장까지도 이후에 모두 해내야 했는데 물론 전직원들이 돌아가며 동원되었던 것은 말할 것도 없다. 문제는 그 다음, 그것을 팔아먹으려는 사장의 지난한 노력이 이어졌다. 여기저기 온라인사이트들을 통해 적잖이 판매를 하기도 했으나 완제품의 재고량 역시 엄청났음은 물론이다. 그러다 보니 사장은 우리 직원들에게까지 그것들을 강매하려 했다. 각자 몇개씩 판매를 하라느니, 할인을 해줄테니 사먹으라느니...처음에는 농담식으로 시작하더니 나중에는 장난인듯 진심인듯 정색을 하고 날마다 볶아대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