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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내심의 한계

_투자도 관리도 없는 더팩토리_D

by somehow

몸과 마음이 더없이 피폐해진 상태로 2020년이 가고 2021년이 되었다.

크리스마스만 지나면 악몽같았던 짤주머니생산의 굴레에서 벗어날 줄 알았으나 그 작업은 그로부터 연초까지도 이어졌다. 물론, 주문량은 눈에 띄게 줄었다. 영업 중간업자의 조언대로 짤주머니 대량생산기계를 들였더라면, 그것을 이용하여 본전이라도 빼먹을 요량으로 초콜릿체험키트 생산을 좀더 왕성하게 이어갔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사장은 그런 투자, 그런 욕심은 없었나보다. 그 지난 몇달동안 우리 머슴들을 만족스럽게 부려먹었고 반대 급부도 그만하면 나름대로 만족스러웠던가보다.


나는, 그렇게 혹사당하는 날마다 언제 그만둘까를 생각했다. 일이 더 많아져서 깔려죽기 전에 그만두리라 수없이 다짐했으나, 또 하루하루 누가 이기는지 보자는 심정으로 버티다보니 결국 해가 바뀌고 말았다.

스스로 때려치우지 못한 것은 퇴직금이라도 최대한으로 챙겨야겠다는 생각때문이었다. 사회적기업이라, 아무리 눈엣가시라도 사장은 결코 나를 해고하지는 않을 것이니, 실업급여는 꿈도 못꾸게 되었고 그렇다면, 스스로 그만둘 수밖에 없으나 가능한한 버틸 때까지 버텨서 퇴직금이라도 최대한 확보하겠다고 악에 받쳤다고나 할까... 그 하루하루는 내 인내심의 한계를 시험하는 나날이었다.


특히 내가 더 오래 더팩토리_D에서 일하는 것이 어렵겠다고 느낀 데는 어렴한풋한 이유가 있었다.

처음 깎듯이 존중하며, 일개 생산직인 입장이 오히려 황송할만큼 나를 대하던 사장의 태도는 시간이 흐를수록 오만불손, 교만, 무례함으로 변해갔다. 물론, 입으로는 늘 선생님어쩌고 하였으나 눈빛과 억양과 태도는 그 단어와 전혀 다른 뉘앙스를 노골적으로 대변했다. 그렇다고 해서 일개 생산직근로자로 입사한 입장에서 누구보다 특별한 대우나 처우를 바란 것은 결코 아니다. 나는 다만, 더팩토리_D의 대표자로서 공명정대하고 일관한 태도를 바랐을 뿐이다.


입사당시 사장은 내게 그 어떤 사무능력도 바라지 않았다. 그럼에도 컴퓨터로 글을 쓰니 워드 정도는 할 수 있다고 했다. 그 정도면 충분하다던 사장은 어느 날부터 엑셀프로그램을 다룰 줄 아느냐고 물었다. 그러면서 완제품생산일보라고 하는, 내가 그때까지 수기로 작성해온, 일지를 엑셀을 이용해서 작성하라고 종용하기 시작했다. 그것은 또 2020년 말의 폭발적인 짤주머니 생산량을 기록하는 과정에서 원재료인 초콜릿의 재고량과 입고와 출고, 짤주머니 일일 생산량을 기록하는데 있어 수기작성으로 인한 오류가 종종 발생하자 비롯된 일이었다.

물론, 엑셀프로그램으로 그 일지를 작성하면 편할 것이지만, 그때까지 나는 엑셀을 써본 적이 없었다. 생산직근로자가 되기 전까지 글을 쓰는 작업에 필요한 프로그램은 엑셀이 아닌 워드프로그램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니 엑셀의 필요성을 느낀 적이 없어서 배운 적도 없었던 것이다. 그런데 그 연말의 어느날부턴가 갑자기, 나에게 엑셀로 일지를 작성하라며, 엑셀을 다룰 줄 모르는 나를 바보취급하기 시작했다.

나는 당혹스러웠다. 갑자기 엑셀프로그램을 익히려니 마음이 급하고 초조해서 쉽지가 않았다. 그래도 사무실직원들의 도움으로 겨우 기본적인 운용법을 익혀 완제품생산일보 작성에 활용하게 되었다.

결과적으로 사장덕분에 엑셀을 강제로 익히고 활용할 수 있게 되었으니 고맙다고 해야할까...그럴거면 차라리, 초기부터 엑셀을 배워두라고 미리 권유를 했다면 어땠을까 생각되었다. 할일 없어서 빈둥거리던 그 나날들에 엑셀을 배워보라했더라면 좋았을 것 아닌가 말이다...


또 한번은 원재료 초콜릿과 지역특산농산물을 이용해 생산해낸 초콜릿제품 원물을 완제품으로 포장할 때의 일이다. 그것은 호퍼저울이라고 하는 기계와 자동포장기계를 조작하여 이루어진다. 호퍼저울로 일정하게 세팅된 중량만큼 원물이 필름지에 담기면 자동으로 실링하고 끊어주는 기계가 연이어 작동하여 완성된다. 바로 그 자동실링/커팅기계가 말썽이 생겼다. 그 기계는 좌우균형이 완전하게 맞지 않으면 오작동을 일으키곤 했는데, 이전에도 종종 그런 문제가 생기면 사장이 달려와서 그것을 해결하곤 했다.

2021년 1~2월즈음의 어느 날에도 내가 그 기계를 작동시키던 중 오류가 났고 그것을 고쳐달라고 말하는 과정에서 사장과 나는 크게 말다툼을 하고 말았다. 그 과정은 설명하자면 너무나 장황해서 줄여야겠다. 나는 기계가 너무 원시적이라고 말했다. 늘 느낀 것이지만 주먹구구식으로 기계를 돌보는 것이 불만이었기에, 쉽게 말해 투자를 하라고 말했다.

시업을 한다는 것은 수익을 얻기 위한 활동이 아닌가, 그렇다면 중요한 제품생산을 위한 투자가 이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더팩토리_D에는 그 '투자'가 전혀 없었다. 그곳의 모든 생산, 포장기계들은 대부분 처음 공장을 시작할 때 어디선가 지원을 받아 들여놓은 것들이었다. 대부분 10년이 기본 연식이었다. 그외 최근에 들여온 기계들은 없다고 보면 된다.

투자란, 그런 기계들을 정기적으로 관리하는 것이고, 더 좋은 생산성을 위해서는 더 새로운 기계로 교체하는 것이 아닐까.

늘, 저 기계가 얼마짜린지 아세요???!!! 소리만 해대며 오래되어 덜컥거리는 기계들을 애지중지했다. 내가 보기에는 참 한심해보였다. 그런 모든 상황들 속에서 자꾸만 자신에게 반대하고 나서고 말싸움까지 지지않고해대는 내가 사장의 입장에서는 기막히고 꼴보기 싫었을 것이다. 나도 충분히 이해하지만, 나는 좀 바뀌길 기대했다. 나는 더팩토리_D가 잘되길 바라는 사람이었다. 잘 되어야 내 월급을 주는 사장도 부담이 덜하지 않겠는가. 그래야 나도 좀더 오래 일할 수 있지 않겠는가 말이다....

그런 생각에서 나는 당시의 더팩토리_D, 그 낡아빠진 시스템과 투자없는 사업방식이 안타까웠고 변함없는 사장의 태도에 지쳐갔다.


특히 그즈음의 가장 충격적인 사건은 생산시설에서 일어났다.

생산시설에는 원재료 초콜릿을 한번에 500Kg정도씩 넣고 녹일 수 있는 대형 중탕기가 있고 그로부터 연결된 관을 통해 초콜릿이 흘러가서 원재료농산물에 분사, 코팅되는 원형 코팅기 있다. 그게 더팩토리_D의 기본적인 생산라인이다. 어찌보면 매우 단순한 시스템이다. 그런데 그 두대의 기계와 연결된 이 중요했다. 60도 정도로 녹은 초콜릿은 직경 1~2cm정도의 그리 굵지 않은 쇠파이프와 PVC로 추정되는 관들을 거쳐 원형코팅기까지 도달해야 하는데, 가는 동안 초콜릿이 굳지 않도록 모든 관들은 열선과 보온재로 감싸져 있다.

그러나, 관을 통해 흘러가는 초콜릿은 기대와 달리 늘, 종종, 수시로 굳어서 혹은 관의 어딘가에서 막혀서 생산과정이 순탄치 않았다. 나는 그 과정의 대부분 지켜보았으며 해결과정을 지켜보며 보조하였기에 알게 돤 사실이다.

그 생산실에서 생산자가 생산을 하던 어느날, 이중으로 된 중탕기의 온수관에서 물이 샜는데(그 역시 늘 있는 일), 뜻밖에도 맑은 물이 아니라 초콜릿이 섞인 듯한 색깔이 흘렀다. (중탕기는 이중으로 된 밥그릇이라고 생각할 때, 원재료 초콜릿이 들어가는 내부그릇의 바깥쪽에 물을 채우는 그릇이 겹쳐져 있다고 보면 된다. 바깥쪽에 겹쳐져 있는 그릇의 안쪽에 물을 채우고 온도를 조절하여 내부 그릇에 담긴 초콜릿을 녹이는 것이다. 그러니까 초콜릿과 물은 결코 만날 수 없고 섞여서도 안되는 것이다. 그런데 초콜릿이 어떻게 그리로 흘러 들어갔는지 알 수 없었다.) 그로부터 일이 시작되었고 그것은 진짜 시작에 불과했다. 늘 부분적으로 막히고 뚫고 하던 초콜릿 이동 관들까지 결국에는 다 뜯어내어 확인하게 되었는데, 뜯어낸 관에서는 떡지고 썩은 초콜릿찌꺼기가 흘렀고 썩은 내가 진동했다. 그제서야, 그동안 만들어낸 초콜릿제품 원물의 위생상태가 대단히 의심스러웠다. 더욱 놀라운 것은 그 전체 연결 관을 지난 10년동안 단 한번도 세척하거나 교체한 적이 없다는 사실이다.

직원들 모두 경악을 금치 못했다.

제품을 생산하는데 있어 가장 중요한 원재료인 초콜릿이 흘러가는 저 관의 위생이야말로 무엇보다 중요할텐데, 바로 그렇게 심각한 문제가 생겨서야 10년만에 처음으로 확인하게 되다니, 그것도 우연히, 어쩔 수 없이.

그때 그 기계설비들을 공장설립당시 설치해준 업자가 문제를 해결하러 왔다. 그는, 그 역시 자신이 설치해준 기계와 관들의 상태를 보며 고개를 저었다고 한다. 직원들이 관의 관리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자, 사장은 이렇게 말했다.

-관리라뇨? 관리는 가만히 두는게 관리예요. 지난 10년동안 아무 문제없이 잘 됐는데 관이 문제라니요? 이번에 P가 뭘 잘못 건드려서 그렇게 된거 아닌가요?


일반적인 상식으로, 가정에서 흔히 쓰는 정수기만 해도 한달에 한번, 1년에 몇번씩 관을 교체하고 소독을 하면서 꾸준한 관리로 위생상태를 유지하려 노력하지 않는가. 그런데, 수많은 사람들이 믿고 먹는 제품을 생산하는 식품공장의 생산시스템에 '관리'라는 개념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게 황당했다. 그럼에도 어떻게 매년초 실시되는 정기적인 식품위생단속에서 무사히 살아남고 HACCP인증까지 받을 수 있는 것인지 이해가가지 않았다.

그렇게 충격적인 현실 앞에서도 사장은 자신의 그릇된 경영방식과 판단의 오류에 대해 반성하거나 바로잡으려는 생각보다는, 생산자 P의 과오때문이라는 주장만 해댔다.


모든 것이, 시간이 흘러도 나로서는 적응이 되지 않았다. 사장의 독선적이고 잘못된 경영방식과 사고방식은 누구도 바꿀 수 없다고 판단되었다. 멀리 볼수록, 더팩토리_D는 하루하루가 주먹구구식으로 연명하는, 구멍가게만도 못한, 사회적 헌신따위는 기대하거나 스스로 할 수도 없는 사회암적인 기업이 아닌가. 그리고 그러한 더팩토리_D에서 가장 암적인 존재가 바로 사장 자신임에 틀림없다고 생각했다. 그녀는 결코 스스로는 물론 더팩토리_D를 객관적으로 볼 수 없다. 자신의 문제가 무엇인지, 진정한 사회적 기업이 되기 위해, 아니 그저 바르고 위생적인 식품업체가 되기 위해서라도 그동안 간과해온 문제가 무엇인지 들여다보고 현명하게 판단할 생각이 없어보였다.


그러한 모든 상황들 속에서 나는 더욱 지쳐갔고 점점 인내심이 한계치를 향해 갈즈음, 사장도 나를 눈엣가시로 보는 태도가 역력해져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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