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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침표를 찍다.

_인간실격

by somehow

전화기를 들었다놨다 하며, 그렇게 일하기 싫으면 무급휴가 가고 싶냐고 협박하며,

무슨 위원회를 소집하여 본때를 보여주겠다며 어딘가로 연락하여 너를 죽여주겠다는 엄포와 달리, 사장은 그대로 좀더 씩씩거리며 나와 맞짱을 뜨다가 회사밖으로 뛰쳐나가버렸다.

공장안을 쩌렁쩌렁 울리는 말다툼 소리에 놀란 직원들에게도 재미난 구경거리가 되었다.


얼마 후, 사무실에서 반가운 소식이라며 들고 왔다.

유선생님, 사장이 차몰고 나가다가 어디를 박았대요~~!! ㅎㅎㅎ...

제 분을 못이기고 화풀이하듯 차를 몰다가 저 혼자 사고를 냈다는 것이다.

나는, 나역시 그녀의 억지스러운 고함소리가 귓가에 맴돌아 한동안 벌렁거리는 가슴을 진정시키느라 애썼다. 입사 이후 최악의 결투였고, 최대의 저항이었다. 모욕감이 온몸을 휩싸고 돌았다.

나는 애초에 그럴 생각이 아니었다. 아무것도 계획하거나 예정한 것은 없었다. 그럼에도 나는 어떤 심정인지 알 수도 없는 순간 그렇게 맞짱을 뜨고 말았다. 아무리 개기고 들어도 사장은 결코 나를 먼저 해고하지 못하리라는 것을 잘 알기에, 죽기 전에 한번 깩소리라도 질러봐야겠다는, 막다른 골목을 등진 사람만이 할 수 있는 마지막 단말마의 비명이었다고나 할까.

나는 그냥 그쯤에서 수건을 던지고 싶었다. 나는 다만 열심히 일하고 정당한 노동의 대가를 바랐을 뿐이다. 그러나 동상이몽이란 그런 것일까. 뜻밖에도 그런 정당한 바람조차 교활하고 악의적으로 모욕당하는 상황을 더이상은 견디기 힘들었다. 그러나 사무실의 젊은 직원들이 나를 뜯어말렸다. 끝까지 버티고 차라리 개기면서 사장을 괴롭히라고. 아무리 농땡이를 치고 괴롭히더라도 사장은 결코 나를 자르지 못할 것이기에.



그로부터 나는 날마다 마음속으로 사직서를 썼다. 이것이야말로 그녀가 가장 바라는 일임을 너무나 잘 알면서도 나는 앞으로 얼마나 더 오래 버틸 수 있을 지 짐작할 수도 없었다. 하루하루가 지옥같았고 천년같았다.

그때부터는 언제 2년을 채우는지 날짜를 헤아리기 시작했다. 4월15일부터 3년차가 시작되는 것이다. 그로써 연차가 새로 생기고...2년치 퇴직금을 제대로 확보할 수 있다.

나는 2021년4월30일까지 근무후 퇴사하기로 결정했다. 그리고 4월이 되자마자 사직서를 던졌다.


내가 어느날 아침 사직서를 내밀었을 때, 사장은 전혀 놀라지 않았다. 다만 쿨하게 말했다.

알겠습니다!

마음 속으로 얼마나 기다리던 순간이었겠는가.

이를테면, 왜 그러느냐는, 무슨 일 있느냐는식의 서툰 거짓 질문도 하지 않았다. 너무나 간절히 바라던 순간이었기에?

늘, 그런식으로 지원금이 끊긴 직원들에게 온갖 핑계를 대어 쫓아내기에 이골이난 입장으로서, 그녀는 나와 맞짱을 뜨던 그날 이후 바로 이런 순간을 예상하고 기대해왔음을 짐작할 수 있을 정도였다.

그러더니 얼마후에 외포장실에 있는 나에게 찾아와서는 마음에도 없는, 단지 퇴사 이유를 분명히 확인하기 위해 필요한 절차인 듯 건조한 질문을 던졌다. 이미 머리속으로는 지원금을 받을 수있는 새로운 후임을 찾을 계획서 작성을 이미 끝냈을 것이다.

왜 그만두시는 거에요? 혹시 지난번 일때문은 아니죠?

그것도 그렇지만 너무나 지쳐서 이제는 좀 쉬고 싶어요. 어머니도 연로하셔서 늘 신경쓰이니 쉬면서 수발도 잘 들어드리고 하게요.

나는 진실을 말하지 않았다.

너때문에, 툭하면 무급휴가 가고 싶냐고 협박하는 사장 너때문에 그만 수건을 던진다고 하지 않았다. 나는 결국 자발적으로 회사를 그만둔 것이다.


내가 그만두기 두달전 쯤에, 거의 매일 사장에게 시달리던 경리가 이악물고 버텨 3년치 퇴직금을 챙기고 뛰쳐나갔다. 그후 내가 내쫓기듯 퇴사를 결정했고, 그 뒤로 제품생산을 하던 어린 여자애도(물론 그녀에게는 개인적인 사정도 있었으나, 나의 상황을 지켜보며 몹시 혼란스러워 했다) 곧이어 그만두겠다고 통보하는 일이 이어졌다.


그것은 심지어, 불법적인 도살장에서
동물을 고통스럽게 도살하는 참혹한 장면을
다른 동료 동물이 지켜보게 하는 것과
같은 효과라고 나는
감히 정의하겠다.

더팩토리_D에 머물렀던 2년동안, 나는 동료들이 마음의 상처를 입고 어찌할 수 없을 만큼 참담한 심정으로 그곳을 떠나는 광경을 지켜본 우리안의 동물과 다를바 없었다.

곧 자신이 다음 차례가 되리라는 끔찍한 현실적 공포에 떠는.



퇴직금 정산문제가 남았다. 사장은 다시 한번 나를 찾아와서 무언가 짚고 넘어가겠다는 태도를 보였다.

선생님, 입사하실 때 정규직으로 일하고 싶다고 하셨죠? 그래서 제가 그렇게 해드렸고요... 어쩌고 하면서 나역시 분명히 하고 싶은 바로 그 입사시점에 대해 운을 뗐다.

결론적으로 말해서, 계약서를 쓴 것은 6월1일이었으나 이미 4월15일부터 일을 시작했으므로 퇴직금산정도 4월15일부터라고 내가 다시 강조했다. 그것은 노무사에게도이미 확인해둔 사항이라고.

그러나 사장은 계약서를 쓴 날짜가 6월1일인데 왜 4월15일부터 산정을 해야 하느냐며 말도 안 되는 자기주장을 늘어놓았다.

나는 참담한 심정으로 근로기준법에 의거하여 내 말이 맞다고 대꾸했다.

사장은, 50살도 넘은 아줌마를, 그것도 경력도 없는 초보자를 일하게 해줬으면 고마워하지는 못할망정, 노무사 운운하며 근로계약서 운운하며 퇴직금산정에 아는 체하며, 가타부타하는 나를 대단히 못마땅해 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이미 결심했다. 끝까지 최대한 내 것을 지키겠다고.

사장은 또 원래 퇴사시점이 4월30일인데 4월15일에 시작되는 3년차 연차 13개를 쓰기 위해 13일 전에 근무종료를 하게되는 것도 고까워했다.

그런데 마침 후임자가 15일 이후에 들어왔고 일주일여 기간동안 인수인계를 해야했다. 연차기간에.

그때 사장이 제안했다.

그러면 아르바이트로 일하는 것으로 해주세요. 출퇴근기록도 따로 적어주시고요.

즉, 연차기간이라 나는 더이상 출근하지 않아도 되는데 인수인계를 위해 출근해야 하고, 그러면 일당을 계산해주어야 하니 그 기간을 알바로 생각하고 일해 달라는 것이었다. 어쩔 수 없이.

오케이. 나는 뭐 나쁠게 없었다. 그런 제안이 없었다면 나는 후임이 들어오거나 말거나 그냥 연차13개를 남겨놓은 시점부터 출근하지 않아도 되는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렇게 1주일여 기간동안 아르바이트까지 끝내고 더팩토리_D를 영영 떠난 후, 다음달 10일 되어 마지막 급여일에 입금된 총액은 내가 생각한, 월급과 퇴직금과 마지막 일주일치 아르바이트급여까지 모두 제대로 계산된 것이 아니었다. 알바일당과 연차기간의 일당은 금액차이가 분명했다. 뻔뻔스러운 꼼수가 눈에 보여, 웃어넘겨줄 수가 없었다. 일 시킬 때는 쿨한 척 알바로 하라더니, 역시나 막상 돈을 줄때가 되어 계산기 두드려보니 연차기간의 급여일당으로 계산하는게 한푼이라도 줄이는 방법인 것이다.

심지어 실제 총 근무일수가 747일인데도 퇴직금 지급명세서에는 700일로 되어 있었다.

나는 매우 불쾌했다.

마지막까지 돈가지고 장난치는 사장의 태도가 정말로 한심스럽고 모욕적으로 느껴졌다.

몇번의 톡 대화로도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기에, 내가 마지막 최후통첩과도 같은 내용의 최후 톡을 보내고서야 겨우 해결되었다.


다시 상기시켜드릴까요.
저는 입사일인 4월15일부터 근로계약서 쓰고 싶어서 계속 문의했었는데 어쩐 일인지 계속 미루셨죠. 그러다 며칠후에야 제게 사장님이 말씀하셨죠. 신중년 적합업무 지원금받는것 신청하는것 때문에 기다려 달라고. 그거 되면 쓰자고 해서 6월1일로 쓴거잖아요. 그야말로 그당시에 사장님께 돈 한푼이라도 더 지원받게 하느라고 한거였는데 모르는체, 서로 합의했다느니 하는 말씀그만하시고요.

마지막으로 정리해서 요청드립니다.
고용노동부 홈피가시면 퇴직금산정계산기가 있으니 제대로 정산해주세요.
거기 보면 마지막 근무일의 다음날이 정식 퇴사일이라고 명시되어 있습니다. 앞서 보낸 톡에서는 퇴사일 바로잡는 것은 봐주려고 했으나 그럴 이유가 전혀 없네요.
제 연차가 4/30일까지 13개가 남아있었기에 4/30까지 근무하고 종료한 것으로 계산했었으니 정확히 말해 제 공식적인 퇴사일은 5/1일입니다!
사직서에도 근무기간을 2019.4.15~2021.4.30이라고 썼으니 퇴사일이 5/1이 맞습니다. 이에 맞게 근무일수 계산 제대로 해서 다시 퇴직금 정산해 차액 지급해주세요. 알바비 덜보낸 것까지.
제가 고용노동부 홈피 퇴직금계산기로 계산한 것 보내드리니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만약 이번주 금요일까지 처리해주지않으면 제가 할 수 있는 모든 법적조치를 취할테니 그런 줄 아세요.
계약서보다 실제 근무시작일자가 근로기준법에서 더 우선한다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으면서 나가는 사람한테마다 그런식으로 계약서가 우선이라느니 서로 합의했다느니 하는 식으로 본질을 흐리고 자신의 이득만을 지키기위해 꼼수를 부리는 태도에서 정말로 실망스럽고 불쾌하네요.
그런 사람을 조금이라도 봐주려고 했던 본인이 정말 바보같네요.
지원금 받을 때는 가만있더니 지원금 끊기니 시간갈수록 자기돈으로 월급주는게 그렇게 아까워서 갈궈대기 시작하고 심지어는 툭하면 무급휴가 가고 싶냐고 협박하고..내가 바보라서 그냥있었다고 생각하셨나요?
일례로 주말근무시에는 1.5배주는게 원칙인거 몰라서 그냥 있었던거 아닙니다.
고용노동부 찿아가게 만들지 말고 내가 알고 사장님이 아는 그대로 내 근무일수 하루도 빼지 말고 정확하게 계산해서 보내세요.
나랏돈 빼먹는데는 혈안이 되서, 자기 돈으로 월급 안 주니까 별필요도 없는 인력까지 뽑아놓고 시킬 일도 많지 않아서 종일 게임이나 하게 만들어 놓고도 다른 일 시키면 고발할까바 겁나서 공장일 바쁠 때도 도와주란 말 한마디도 못하고 눈치나 보면서, 열나게 일한 사람한테는 그런 식으로 한푼이라도 안 주려고 추하게 굴지마시고요.
사회적기업가라면 그게 맞는 마인드를 갖추세요.

다시 정리해드립니다.
제 근무기간은 2019.4/15~2021.4/30일까지입니다. 퇴사일은 5/1이 맞습니다. 그대로 적용해서 제대로 계산하고+ 알바비부족분까지 내일까지 입금하세요.
끝까지 매너있게 인간적으로 대하려다 실망한 사람한테 그야말로 제대로 고발당하고 싶지 않으시면!

이 건과 관련해 전화를 하라고하셨다죠? 잘못된 부분 바로 잡으면 될 일이지 더이상 통화는 필요없습니다. 어서 인연을 끝내고 싶을 뿐.

참 더 있네요.
근로자대표 누가 하고 싶댔나요? 등록할 때도 그렇고 퇴사하게 되어 취소하는데 필요한 서류 떼오라면서 너무 당당하시더이다. 서류발급받는데 들어간 비용은 왜 내가 내야되는 건데요? 그것까지 내놓으세요! 남은 서류도 돌려주시고. 남의 돈은 십원이라도 아까운 줄 모르고 자기 돈만 그렇게 아까워하시니 생각할수록 정말 후안무치하시네요.
할 말은 많으나 여기까지만 하겠습니다.
-5/20일자 마지막 톡 내용전체



인간으로 태어나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하는가 다시금 생각해보게 된다.

누구나 현재의 삶에 충실하지만 그 방법이 굳이 그토록 비열해야만 할 것인가.... 적어도 돈을 위해서 살지는 말아야 하지 않겠나...






“...환상이 사라진 삶은 죽음에 더 가깝다.”는 드라마 속 그녀의 대사 한 구절이 마음에 남아 있다.

여성기업가G에게 더팩토리_D라는 사회적기업은 철저하게 돈벌이를 위한 현실일 뿐, 가엽게도 그녀에게는 나만큼의 환상도 꿈도 남아있지 않은 것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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