꾹꾹 눌러 담고 있던 감정들, 그 스러지지 않는 실타래의 끝부분은 슬쩍 건드리는 것만으로 이토록 장황한 사설과 분노와 역겨움의 악취를 풍기며 끝이 없을 것처럼 딸려나온다.
생각같아서는 앞으로도 얼마든지 나는 여전히 세세하고 적나라한 그곳의 풍경과 그안에 담겨져 출렁이며 고통받았던 나의 이야기들을 풀어낼 수 있겠다.
그러나, 그래서, 이제 나는 불현듯 여기서 멈추어야겠다.
전혀 상관없는 타인들의 렌즈에는 그저 특별할 것 없는 사회적기업, 혹은 조금 특별한 이력을 가진 젊은 여사장의 식품공장이야기에 불과할 그 장소를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사실은, 여전히 속이 불편하다.
아무리 찢어발겨 내장을 끄집어내고 갈아엎는대도 그 시간동안 내 영혼에 휘갈겨진 상처는 여전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멈추어야겠다.
그리고
괄호를 친다.
(이 괄호 안에 아직 분이 덜 풀린, 조금더 덕-덕- 긁어내어 그 피묻은 부스럼조각들을 응시하며 창자 속 깊은 가래침을 퉤-뱉어내고 싶은 덜삭은 감정들의 찌끼들을 욱여 담는다.)
그리고 끝내야겠다.
다만, 마지막으로 그 사회적기업의 젊은 여성사업가가 어떻게 나를 개쫒듯 쫓아냈는지, 그래도 마지막까지 일말의 인간성을 믿어보려던 입장이 얼마나 모욕당했는지에 대해서만은 꼭 밝혀야겠다.
한편으로는 두렵기도 하다. 스스로에게 너는 그렇게 한점부끄럼이 없나? 되물어야 하기에.
수없이 되짚어 보았다. 적어도 나는 그처럼 상대를 능멸하거나 모욕한 적은 없었다. 적어도 나는 그럴 위치가 아니었다. 나는 초보생산직근로자로서, 하루하루 일할 수 있다는 사실에 감격하여 열심을 다히려 노력했을 뿐이라고 항변한다.
2020년12월 즈음, 나는 오른쪽 엄지 손가락에 이물질이 박히는 사고를 겪었다. 별것 아니었고 공장은 너무 바빠서 아픈것도 잊고 시간이 흘렀다. 2021년 3월이 되면서 바쁜 공장일이 마무리되어가자 엄지손가락이 여전히 부어있음을 깨닫고 병원에 가서 이물질제거 수술을 받았다. 엄지손가락에 칼집이 난 것이다. 최소 2주동안은 붕대를 감고 이틀마다 가서 소독을 받아야했다. 감염방지를 위해서.
손을 자유롭게 쓸수 없게 되었음에도 나는 티내지 않으려최선을 다해 일했다. 3월중하순이었다.
그 무렵, 공장의 생산과 관련해 중요관계자가 위생상태점검을 하러온다며 공장 전체구역에 대해 청소 지시가 내려졌다. 포장담당인 나와 생산담당자, 달랑 둘이서 그것을 해내야 한다. 시간은 1주일여.
그때 하필 기다렸다는듯이, 제품생산담당자가 코로나확진자와 접촉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며 자가격리에 들어갔다. 공장 전체 청소는 오롯이 내 몫이 되어버렸다. 얼마든지 할 수 있었다. 내 양손이 멀쩡한 상태였다면.
그러나 나는 엄지손가락 이물질 제거수술을 받은지 하루이틀밖에 안된 상태였고 오른손으로 무엇을 힘주어 잡고 하는 일은 쉽지 않았다. 그럼에도 지시가 내려진 날 나는 내 전담구역인 내외포장실과 완제품실 등의 청소 외에도 제품생산담당자의 구역인 생산시설 3~4곳을 청소하게 된 것이다. 그중에서도 짤주머니를 몇달동안 만들어 내느라 바닥과 벽면까지 온통 초콜릿 범벅이 되어있는 생산실 청소가 문제였다.
사장이 나에게 지시했다.
바닥에 세제를 풀어서 수세미로 박박문질러 닦아주세요. 초콜릿이 눌어굳어져서 제대로 긁어내야 합니다!
나는 붕대로 칭칭 동여매어진, 힘을주거나 물체를 꽉 잡으면 통증이 느껴지는 오른손엄지손가락의 상태에도 불구하고 두말없이 청소에 임했다. 뜨거운 물과 세제와 수세미를 이용하여. 하루종일, 간신히.
1:이물질제거 수술직후
하필 오른손이어서 동작은 무척 힘들고 어려웠다. 칼자국이 난지 하루이틀밖에 안되어 조금만 힘을 줘도 통증도 느껴졌고 금방 피가 터지는 것은 아닐지 걱정스러운 상태였으나, 했다.
나는 사실 억울했다. 내 청소구역도 아닌데, 왜 내가 해야하는가. 자가격리가 끝난 뒤에 담당자가 와서 해도 늦지 않을 것같은데 사장은 너무 서두르는 것 같다고 생각했다.
다음날이 되었고 내가 청소해 놓은 구역을 살펴본 사장은 새로운 지시를 내렸다.
아직도 더러운 부분이 있네요. 벽면 구석에 곰팡이들도 좀 닦아내세요.
사장의 말이 끝난뒤 내가 입을 열었다.
단호하게.
못하겠어요.
사장이 눈이 동그래지며 발끈하는 음성으로 되물었다.
지금, 뭐라고 하셨어요?? 못 한다고요? 왜요?
거기는 원래 제 구역이 아니잖아요? 저, 손 다쳐서 하기 힘든 데도 걔(자가격리중인 생산 담당자)가 없으니까 할 수 없이 묵묵히 제가 했잖아요?
그러자 사장은 놀란듯이, 금시초문이라는 듯 되물었다.
손 다치셨어요? 언제요? 왜 말 안하셨어요?
나는 이미 단체톡에 손에 붕대를 칭칭감은 사진을 올렸었다. 그래서 알고 있으리라 생각했었는데, 자기는 그사진을 본 적이 없다며 처음 알았다고 했다. 나는 손가락을 들어보이며 말했다.
그러니까, 더 이상은 못해요. 제가 손 다쳤다고 엄살부리지도 않았고, 불편하고 힘들어도 할 만큼은 했으니 나머지는 자가격리 끝나고 담당자가 돌아오면 그 때하라고 하세요, 저는 더 이상 못해요.
그러자 사장은 언성을 높였다.
그런데, 오른손은 다쳤어도 왼손을 멀쩡하잖아요?!! 저기 쭈그리고 앉아서 왼손으로는 수세미잡고 닦아낼 수 있잖아요?!!
뭐라고? 왼손으로, 쭈그리고 앉아서? 나는 더욱 차분하게 대꾸했다.
아니요! 못해요. 더 이상은 못해요. 제 구역 아니니까 저 혼자는 못해요. 담당자 오면 시키세요. 그땐 도울 수 있어요.
나의 대꾸에 사장은 격렬하게 분노를 표출하기 시작했다. 왜 자기 말을 안 듣느냐는 것이겠지, 그도 그럴 것이 그전까지는 하라는 대로, 어렵고 힘든 일이어도 투덜대다가도 내가 그냥 따라주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갑자기 자기 지시를 거부하는 나를 향해 분노가 치민 것이었다.
정말 못해요?!!! 그럼 OO위원회 소집할까요?!! 정당한 지시를 거부하면 어떻게 되는지 아세요?!!!
하참....어처구니가 없었다. 사장의 지시를 거부했으니 무슨 위원회를 소집해서 잘잘못을 따져 페널티를 주겠다는 개소리였다. 그러면서 가지고 있던 휴대폰을 들었다놨다하며 어딘가로 전화를 거는 척 해대며 분하다는 듯 노골적으로 씩씩거렸다.
나도 더이상 참지 않기로 했다.
소집하세요! 소집하시라고요! 저는 더이상 못합니다. 제 일도 아닌데 왜 다 합니까? 처음부터 못한다 한 것도 아니고 일단 깨끗하게 했잖아요? OO위원회 소집하세요!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저렇게 벌컥 화를 낼 일인가 싶어서 황당했다. 사장과 나는 서로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가며 다투었다.
그전까지, 보일 듯 말 듯한 나에 대한 고압적이고 몰상식적인 그러한 태도의 마지막 패를 가차없이 까발리는 것이었다. 더 이상은 너를 존중하는 척도 하지 않겠다는 선전포고 같았다. 또한 자신이 시키는 일에 대해 못하겠다든지, 강력하게 거부한 적이 없는 나의 태도에 당황한 것이다.
그 순간 그녀의 머릿속으로는, 너한테 얼마나 잘해줬는데 니가 그럴 수가 있느냐....하는 생각으로 가득했을 것이다. 그녀는 늘 너희들에게 내가 얼마나 잘해주느냐를 떠벌였다. 잘해주는 게 정말 잘해주는게 아니었는데도 가끔 회식시켜준 것, 점심값 내주는 것, 주말에 일하면(원래는 1.5배 임금을 쳐줘야 함에도 그러지 않고) 점심 사주고 하루 쉬게 해주는 것...등 어느 회사나 다 하는 것만큼도 제대로 하지 않으면서 늘 자신이 쓴 돈에 대해서만 생색을 냈다.
그렇기에 그녀는 분노했다.
너를, 내 아까운 생돈 들여가며 월급주고 일하게 해 주는데 어떻게 니가 그럴수 있니?하는 심정이 충만했달까.
그 모든 복잡한 감정들이 역력히, 여실히 낱낱이 읽히는 그녀의 분노가 기막혔다.
나는, 그냥 나를 짤라도 좋겠다는 심정이었다. 그렇게 꼴보기 싫으면, 시키는 일 안 했으니 짤라라, 제발 해고해달라....그러나 결코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