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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마스의 악몽惡夢

_노동력착취의 현장

by somehow

백신접종이 하나 둘 완료되면서 조금씩 일상을 되찾아가는 모습이 보이기는 하지만, 이제까지 경험해본 적 없는 전세계적인 전염병 COVID19의 유행은 아직도 진행중이다.

마스크로 입을 틀어막고 사람들과의 접촉을 극단적으로 기피해도 전염병은 끝도 없이 확산되었고, 그것은 사람들사이의 관계에만 문제를 일으킨 것이 아니라 사회, 경제적인 측면에서 더욱 큰 파장을 일으키고 그 수렁에서 언제쯤이나 예전만큼 회복될지 알 수 없다.


그럴수록, 작은 기업들이 입는 충격은 더 클 수밖에 없다. 연매출 2억원이 목표인 아주 작은 사회적기업 더팩토리_D 역시 거센 쓰나미에 휩쓸리듯 휘청거리기 시작한 이래로, 어느새 매출이 문제가 아니라 생존이 목표인 상황이 되어갔다.

인근 관광지에 주로 판매되었던 지역특산농산물을 이용한 초콜릿제품이 생산의 주종목이던 더팩토리_D의 사장님도 살기 위해 닥치는 대로 돈벌 궁리에 나섰다.


그리고, 지난해 11월말 즈음이던가, 내가 숨돌릴 틈도 없이 수제초콜릿을 수만개씩 만들어내는 작업이 마무리되어 갈 주음부터 사장은 새로운 돈벌이를 찾아냈다.

6차산업 인증 식품업체 더팩토리_D는 그곳에서 만들어는 제품을 이용해 체험학습이 가능한 체험학습관이 별도의 장소에서 운영되고 있었다. 그 체험과 관련해, 체험학습관으로 찾아오는 이들에게 제공되거나 아니면, 각급학교에 전화 영업을 해서 직접 체험에 필요한 재료와 도구들을 싸들고 '찾아가는 체험프로그램'도 운영중이었다. 사장은 바로, 그것을 좀더 확장해 전국의 유치원이나 어린이집의 영유아들을 대상으로 상품을 판매해 볼 생각을 해낸 것이다. 그것은 코로나의 창궐과 함께 모든 학교들의 휴업이 장기화됨에 따라 각자 집에서 할 수 있는 다양한 체험학습이나 체험프로그램이 개발 판매되기 시작한 사회적 흐름과 맞닿은 참신한 아이디어였다.

그것은, 취학전 영유아들이라면 당연하게 1~2년씩은 다니기 마련인 어린이집이나 유치원 등을 상대로 중간업자가 전문적으로 영업을 뛰어서 계약을 따오는 것으로 시작된다. 그렇게 확보된 인원수에 맞게 더팩토리_D의 사장님이 개발한 '초콜릿만들기 체험키트'를 제작 판매하는 것이다. 키트 안에는 당연히 더팩토리_D만의 특산농산물이 포함됨으로써, 말그대로 6차산업에도 적합한 아이디어 상품이 아닐 수 없었다. 아이들은 체험키트를 열어 각자 메뉴얼대로 만들어보는 것이다.

재미, 그 이상은 아무 의미도 없어 보이는, 딱 그 재미삼아.


키트의 구성품은 다음과 같다.

각기 다른 6개의 모양으로 된 하나의 투명플라스틱 판 몰드 2개, 지역특산농산물이 든 봉지 한개, 80~100g정도의 다크 앤 화이트 초콜릿이 든 미니 삼각뿔모양의 짤주머니봉지 각1개씩. 그리고 초콜릿을 완성해 담아 볼수 있는 포장세트와 설명서.

다른 것은 갖추는데 어려움이 없었다. 기성품을 대량 구매해 각 키트에 필요 수량만큼씩 넣어주면 되니까.

문제는 각 80~100g짜리 다크 앤 화이트 초콜릿 짤주머니를 수만개씩 만들어내는 일이었다.

초콜릿 만들기 키트에서 중요한 것이 초콜릿이 아닌가.

그렇게 구성된 초콜릿만들기 체험키트는 대략 11월에서 12월24일 직전까지 전국으로 수만 개가 팔려나갔다. 그것은, 거의 매일 나를 비롯한 더팩토리_D의 생산직 둘과 아르바이트 여럿과 사무실 직원들이 날마다 총동원되어 수만개의 초콜릿 짤주머니를 만들어냄으로써 간신히 가능했다.

사실, 그렇게 대량으로 단기간에 초콜릿짤주머니를 생산하기 위해서는 원래 자동 혹은 반자동식 생산기계가 필요할 것이다. 이를테면, 치약튜브같은 용기에 녹은 상태의 초콜릿을 자동으로 짜넣고 마감하는 식(그것은 이미 기성품으로도 판매되고 있었고, 우리와 비슷한 체험키트를 판매하는 다른 업체들의 경우에는 그렇게 깔끔하고 위생적인 초콜릿튜브가 포함되어 있었다)으로 해야 가능할 것이다. 그러나 사장은 역시 그 기계를 살 생각따위는 처음부터 없었다. 1년 내내, 날마다 거의 빈둥빈둥 놀면서 월급이나 축내던 머슴들의 노동력을 활용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겼는데 왜 자동화기계를 들이겠는가.

아무리 힘들어도 1년내내 놀고 먹었던 생각을 한다면 어찌 힘들다 소리를 하겠는가 싶은, 당연한 계산이 따랐을 것이다.

실제로, 그 많은 흑/백의 초콜릿 짤주머니를 만들기 위해 공장의 모든 인력을 동원하여 날마다 닥달을 해대는 동안 그러니까 수제로, 오로지 인간의 노동력만으로 시간과 싸워가며, 하루에 한개라도 더 만들어 내기 위해 모든 머슴들은 손가락이 보이지 않을 만큼 빛의 속도로 움직여야 했고 일요일에도 쉬지 못하고 동원되었다. 그러면서 하루하루 빠르게 지쳐갔다. 그래서 조금이라도 힘든 기색을 보일라치면, 사장은 항상 입안에 머금고 있던 대사를 가차없이 뱉어냈다.

-여름내내 놀 때는 좋았죠, 크리스마스 전에 다 끝날텐데 뭐가 힘들다고 하세요? 저는 새벽 5시부터 나와서 박스에 날인했어요!

맞는 말이었다. 인간의 양심으로, 우리는 일년내내 원치 않았음에도 어쩔 수 없이 놀고 먹은 대가를 그 두어 달동안 혹독하게 치러내야만 했다. 너무나 맞는 말이어서 차마 맞짱을 뜨지는 못했으나, 그럼에도 활용가능한 기계장비를 구입해서 초콜릿봉지를 생산해낸다면 그보다 더많은 매출을 올릴 수 있을 것임에도, 그녀는 오로지, 우리들의 노동력만으로 모든 것을, 정해진 기한 내에 해내라고 종용했다.

사실, 전국의 어린이집들을 돌며 영업을 해오는 중간업자는 지금보다 더 많은 매출량을 확보할 수 있으니 짤주머니생산기계를 들여놓으라고 수없이 재촉했다고 한다. 얼마만에 맛보는 달콤한 현금의 유혹인가, 1년 내내 매출은 바닥을 쳤고 다달이 유통기한 임박 제품들을 기부하는 것도 한계에 다다를 즈음이었으니!

그러다 어느날 갑자기 시작한 초콜릿체험키트-아이디어 상품-하나로 하루하루 수백만원씩의 현금이 바로바로 입금되는 상황에 사장의 메마른 가슴도 뛰지 않았을 리가 없다. 그러니 중간업자도 자신의 영업력을 믿고 기계설비에 투자를 해서 좀더 장기적으로 함께 더 크게 벌어보자고 옆구리를 찔러댔을 것이다.

참 놀라운 것은 한편으로 사장의 뚝심이다.

결코 그런 유혹에 넘어가지 않았다는 것, 당시의 수입만으로도 쏠쏠하다 느꼈던가 보다. 기계를 들이자면 적어도 수천만원이상은 나가야하니, 당장 그런 투자를 원치 않았던 것이다. '물 들어왔을 때 노 젓는다'고, 월매출이 300밖에 안 된다며 시시때때로 직원들에게 푸념을 해대던 시절을 생각하면 돈 욕심이 날 법 한데도 사장은 결코 위험한 베팅은 하지 않았다.

-크리스마스 지나면 끝이니까, 그 전까지만 물량을 빼면 되는데 굳이 기계설비가 왜 필요합니까? 영업팀도 크리스마스이후 물량은 없다고 했어요. 그때까지만 고생해주세요!

그런 사정을 알게 되면서 우리 머슴들은 역시, 대단하신 사장님!이랄밖에!! 투자하지 않고도 조금 더 머슴들을 닥달하고 혹사시키면 될 것인데 뭣하러 쓸데없이 돈을 쓴단 말인가. 그 덕분에 우리는 나날이 극도의 스트레스와 노동력착취에 시달리며 빠르게 지쳐갔다. 연차가 있어도 쉴 수가 없었다. 날마다 8시간씩 거의 한시도 쉬지 못하고 발을 동동굴러야 했다.

머슴들 모두의 소망은 똑같았다. 어서 크리스마스가 되기를, 어서 저 끔찍한 크리스마스가 지나가기를.

그러나 사실 크리스마스가 지나도 일은 끝나지 않았다. 그 일은 한동안 좀더 계속되었다. 수량은 조금 줄어들었지만.


마침내 크리스마스전날 마지막 주문량까지 내보낸 뒤, 사장은 뜻밖에도 직원들에게 10만원씩 보너스를 입금했다. 정말 깜짝 놀랄 일이었다. 월급 외에는 한푼도 없음은 물론, 점심 값조차도 더 싸구려 식당을 찾아다니는 사장이, 무려 10만원씩이나 쏘다니!


그로써, 제 주머니에는 도대체 얼마나 많은 수익금이 쌓였길래 이렇게까지, 고생했다며, 선뜻, 그 아까운 돈을 머슴들에게 선심쓸 수 있는지, 어렴풋이 짐작할 수도 있었다.


아무리 많은 돈을 준다 해도 우리는 별로 기쁘지 않았다. 그 겨울동안 우리들은 모두 혹사당했다. 노동력 착취란 바로 그런 것이라고 절실히 깨달았다. 아무리 월급을 받아가며 일한다 해도 근로자에게는 감당할 수 있는 노동의 강도와 정도가 있을 것이다. 우리는 그 몇달동안 매일매일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하고 아무 생각도 하지못한 채 무조건 전속력으로 달리기만을 강요당하는 경주마와도 같은 심정이었다. 그 기간동안 나의 체중은 5킬로그램이나 빠졌다. 꼭 노동력착취때문만은 아니겠지만 매일매일이 악몽과 같았던 그당시 몸과 마음은 모두 지쳐 곧 쓰러질 것만 같았다.




초콜릿체험키트를 구성하는데는 몇가지 과정들이 필요하나 가장 힘든 과정이었던 짤주머니생산에 관해서만 적어보겠다.

초콜릿짤주머니를 수제로 만드는 방법은 어찌보면 간단하다고 할 것이다.

60도의 온도로 녹인 초콜릿을 한 국자정도, 베이킹용 투명비닐 짤주머니에 넣는다. 80~100g정도 들어간 짤주머니 입구를 금색 빵끈(철사 줄)으로 새지 않도록 단단히 틀어 묶고 나머지 부분은 잘라낸다.

문제는 단단히 철사줄로 조여 묶는일이 결코 쉽지 않고 하루종일 수백개씩 반복될수록 손에 고통이 쌓인다는 점이다. 적당히 돌려 묶었다가는 나중에 샐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만들어진 초콜릿은 굳어진 상태로 체험키트에 포함되어 아이들에게 배송되는데, 그것을 사용하기 위해서는 마찬가지로 60도정도의 따뜻한 물에 담가 녹여야한다. 그 과정에서, 단단히 묶여있지 않으면 물이 들어가거나 초콜릿이 샐 수도 있고, 끝부분을 잘라 다양한 모양의 몰드에 짜넣을 때 묶인부분으로 새나올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한두 개도 아니고 매일 수백 개의 짤주머니를 만들어 내는 과정에서 수백 번 철사줄로 묶는 일이 반복되자,아무리 멀쩡한 사람이라도 이내 양손의 고통을 호소하기 시작한다.

생산실에서 여러 명이 매달려 만들어진 짤주머니들은 사과박스타입의 단단한 상자에 100~200개씩 담겨져 내게 옮겨졌다. 그 박스는 엄청나게 무거웠다. 포장실 한켠에 산더미처럼 초콜릿박스들이 쌓였다. 날인작업을 위해 그것을 테이블로 들어올리거나 내리는 일 또한 무한노동력의 소모를 뜻했다.

나는 짬짬이 짤주머니생산을 돕는 외에, 포장실에서 짤주머니에 유통기한을 날인捺하는 작업을 주로 담당했는데, 그 일 역시 결코 녹록하지 않았다. 날인기는 얼마나 오래되었는지 알 수 없게 구형이었고 낡아 있어서 허접하기 짝이 없었다. 날인작업은 다크 앤 화이트 초콜릿의 서로 다른 유통기한에 맞춰 각각 달리 찍어야 했다. 금속으로 된 숫자조각을 일일이 틀에 끼워맞춰 넣은 뒤, 짤주머니 한개씩을 날인기에 대고 하나씩 철컥, 철컥, 찍어내는 것이다. 한 번에 하나씩만.

그 기계는 낡고 불편했으며 무한반복되는 작업은 고통스럽기 그지 없었다. 그나마 앉아서 하니까, 짤주머니의 아가리를 틀어 묶는 것보다 쉬워 보일 것이었다. 나도 처음엔 쉬운 일을 하게 되어 다행스러웠다. 그러나 막상 매일 몇시간씩 쉴 새없이 같은 작업을 되풀이하다 보면 역시 지치고 고통스러웠다. 양쪽팔이 저리고감각이 없어졌으나 멈출 수는 없었다. 결코 쉬운 일은 없다는 사실을 또다시 번번이 깨닫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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