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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mehow Nov 29. 2021

뒤늦은 출발

_절박한 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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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요가 발명을 낳는다던가, 빛이 필요해 전구를 만들었듯이?


내 경우,


절박함이 도전의식을 자극했다.


세상살이에 대한 뒤늦은 깨달음으로 겁도 없이, 용감하게도 어느날 문득,

생산직근로자의 삶에 도전할 수 있었던 용기의 원천 또한 절박함이었다. 단, 그 절박함은 경제적인이유 만으로는 충분히 설명되지 않는다.



선로線路 변경:


삶의 어느 시점부터 남들과 좀 다르게 진행되기 시작했다.

그것은 내 의지이기도 했고 내 의지가 아니기도 했다.

일정한 간격을 두고 배치된 각자의 선로가 곧게 뻗은 시작점에서부터, 나아가던 어느 순간 각이 발생했다.

문득 돌아보았을 때, 이웃들과의 간극은 서로의 얼굴을 확인할 수도 없을 정도가 되어 있었다.


더이상 비슷하게 살 수 없다면 나답게 살아야 했다.


잠수종에 갇힌 듯, 가슴 속에 들끓는 세속적 열망과 달리, 주변의 태도와 달리, 절대 현실은 갑갑하기만 했다.


그것을 견딜 수 있었던 이유는 딱 하나, 책임감뿐이었다.

선택에 대한 책임_어떤 책임의 시효가 다했을 때 절박감이 밀려왔다.

절박감이 스스로 선로 변경을 꾀했다.


나는 필드로 나섰다.(브런치북:가장 열렬한 하루)

여러 번 회고했듯이 나는 최선을 다해 생산현장의 삶에 익숙해지기 위해 노력했다.

노력이 싸구려일당으로 치환되는 와중에도 나는 의미를 두기 위해 애썼다.

그나마 의미와 보람으로 완전하게 치환되지 못한다는 사실을 깨닫자 봉인해둔 절박감이 다시 고개를 들었다.



주로走路 변경:


절박감이 나를 도전하게 했다.


다른 길를 찾아보기로 했다.

때마침 새로 들어온 생산직 동료(더팩토리_D의 스물아홉살 초보 생산직 여자애. 브런치북:더팩토리_D 747일간의 기록)를 보고 더듬더듬 를 찾았다.


그 아이는 처음, 지방에서 조리학과 전문대를 다녔는데, 얼마나 공부를 안 했으면, 조리관련 자격증 따위도 하나 없다는, 내가 보기엔 그냥 게으르고 식탐많고 머리 나쁜, 그래서 100킬로가 넘는 돼지가 되었으리라는 편견을 강하게 심어주었다.

같이 일한 1년 남짓 시간 지켜보는 동안에도, 일에서 상황변화에 대한 민감성도 떨어지고 매사에 느긋하고 둔해서 도무지 나와는 맞지 않는 성향이었다.

그런데, 뜻밖에도 그 아이는 입사하자마자 온라인으로 사회복지사 공부를 시작했다. 동생이 사회복지사로 일한다며, 자신도 장래에는 그 일을 하고 싶다는 의도를 밝혔다.


그때까지도 나는 생산직근로자로 조용히 살고 싶었다. 싸구려일망정, 성실한 노동의 대가가 따박따박 지급되는 시스템에 제대로 적응만 한다면 그것도 나쁘지 않을 듯 싶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느 순간부터 그 희망에는 균열이 발생하고, 나는 점점 자신이 없어지기 시작했다.


그때, 나는 그 여자아이를 다시 돌아보았다.


불현듯, 사회복지공부를 해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럼에도 그것을 결심에 옮기기까지는 수많은 고민과 계산과 시간이 필요했다. 무엇보다도 온라인으로 하는 학습시스템에 의구심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돈만 주면 누구나 접속할 수 있는 온라인학습시스템 따위가 얼마나 미래를 담보할 수 있을지도 가늠할 수 없었다.

나름대로의 숙고를 거쳐 결국, 2020년 8월 사회복지사2급 온라인학습시스템에 등록했다.

따질수록 승률만 계속 낮아지는 게임같았으나, 물러설 수 없다면 도전하기로 결심했다.

수많은 불가능의 확률과 비관적인 경우의 수에도 불구하고, 나는 어쩌면 나만의 미래를 담보해 보기로 했다.


그만큼 절박했다.


더팩토리_D에서 날마다 시달리며 정년을 맞기 위해서는 얼마나 비참하고 모욕적인 수백만시간을 견뎌야 할 지 몰랐다. 그토록 비굴하게 수백만시간을 견디느니 다시금 탈출을 꿈꾸는 탈옥수처럼 절박하게 출구를 찾아나섰다.


삼인행 필유아사언三人行, 必有我師焉 이라던가, 

내가 속으로 비웃었던 그 아이에게서 새로운 삶의 방향을 찾았다는 점에서, 나는 부끄러웠다.

한편으로는, 아무리 열렬히 하루하루를 치열하게 살아낸다 한들 타인들에게는 나역시 한낱 하찮은 존재일 수 있음을 상기하며 반성의 시간을 갖기도 했다.


인용:논어의 문법적 이해<네이버지식백과>

子曰: "三人行, 必有我師焉. 擇其善者而從之, 其不善者而改之."
(자왈: 삼인행 필유아사언 택기선자이종지 기불선자이개지)

"세 사람이 함께 길을 가면 거기에는 반드시 나의 스승이 있다. 그 가운데 나보다 나은 사람의 좋은 점을 골라 그것을 따르고, 나보다 못한 사람의 좋지 않은 점을 골라 그것을 바로잡는다."




더팩토리_D 입사 즈음부터 어머니는 급격히 쇠해져갔다.

올해 구순에 이른 당신은 그 생애 동안, 자신의 어깨와 온몸을 짓누르는 천만근의 무게와 책임감을 오로지 스스로의 뼈와 살을 갈아내는 고통과 고난의 시간속에 버티어왔고 그 결과, 모든 짐에서 자유로워야 할 오늘에 이르러서는 더없는 육체적 고통의 나날을 견디고 계시다.(브런치북:쓸쓸하던 그 골목을 기억함)


가장 가까이에서 지켜보며 동거하는 자식으로서, 필연적인 나의 미래이기도 한 구순 노모의 현재진행형 노인성 질환과 장기요양보험제도 등에 관해 관심을 갖게 된 것은 매우 당연하고 자연스러웠다.


더불어 사회복지 이론과 실제에 관한 궁금증도 생겨나기 시작했다.

막연하던 그 의문에 답을 찾고 노인복지/사회복지 분야에서의 직업적 가능성에 대해서도 탐구하기로, 나의 절박한 도전은 맞물려 돌아갔다.

그리고 새벽 세시 반 기상으로 온라인 학습 과정을 이어가는 중간, 160시간의 현장실습도 완료했으며 최종적으로 1년반 기간의 모든 과정은 지난 10월에 종료했다.

마침내 11월초에는 정식으로 사회복지사 2급 자격증을 발급받았으나 현 시점에서 그 종잇조각은 물론, 나의 미래에 대하여 아무 것도 보증하지 못한다.


단지, 절박함 속에 승률 낮은 도전이 시작되었고
마침표를 찍었다는 사실만이
스스로 대견한,
증표에 불과할 수도 있다.


그 길기도 짧기도 했던 실습기간의 기억을 떠올려 보려 한다.

다 그렇듯 이론과 실제는 아무리 제대로 겹쳐보아도 엄청난 간극이 존재한다.

현장에는 교재만으로는 확인할 수 없었던 현실적 장면과 좌절과 한숨이 가득했다.


일지는 한장으로 끝날 수도, 더 오래 이어질 수도 있으나...지금 그것을 가늠하기는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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