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Oh My Life

노인을 위한 나라?

_노인을 볼모로 돈벌이가 가능한 나라1

by somehow

내가 처음 사회복지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나의 어머니의 노쇠현상과 노환에 따르는 노후생활의 변화모습을 곁에서 목격하면서 부터이다. 활력 넘치던 어머니도 세월 앞에서는 역시나 남다를 것 없이 나약한 인간에 다름아니었다. 팔십 세가 넘고 구십 가까이되면서 진작부터 안 좋아 수술을 거친 무릎과 허리상태가 급격히 나빠졌다. 그전까지는 그래도 '아프다' 소리를 하면서도 혼자 마음대로 이동의 자유를 누렸으나 최근 몇해전 급작스레 악화된 신체는 더이상의 회복 불능상태를 향해서만 빠르게 퇴화해갔다.


지팡이 사용조차 강하게 거부하며 불쾌해하던 당신은 결국 지팡이를 짚고도 스스로 몇걸음 이상 걷는 것조차 필사적인 노력이 필요한 상태가 되었으며 혼자서는 친구를 만나거나 대중교통을 이용하는일은 꿈도 꿀 수 없게 되어버린 것이다.

결국, 본의 아니게 집안에 갇히는 상태가 될무렵 노인장기요양보호제도와 노인주간보호센터를 알게 되었다. 그로부터 어머니는 마치 출퇴근하듯 근처의 노인주간보호센터를 이용하는 것이 하루의 일과가 되었다.

그곳을 정한것은 그저우연일 뿐이었고, 친절하고 자상한 듯한 관리자(처음 만난 것은 부원장)의 상담태도에 별다른 걱정없이 이용절차를 밟게되었다. 그로부터 어머니는 2년째 같은 ◉◈▣노인주간보호센터를 이용하신다.

그곳은 바로, 내가 지난해 10주동안 사회복지현장 실습을 했던 그 기관이기도 하다.

물론,어머니가 이용하시는 시설에 대한 호의적 감정과 그 시설에 대한 궁금증 등의 요인으로 나는 실습현장을 스스로 선택한 것이다.

어머니가 다니기 시작할 때 그 ◉◈▣노인주간보호센터는 넓은 로비의 천장이 유리창으로 되어 하루종일 햇빛이 드는 가든(garden)형 공간구성이 특징이며 장점이었다. 어머니가 다니는 동안 몇번 찾아가 보았을 때 전면과 천창을 통해 들어오는 햇빛으로 인해 실내는 답답하지 않고 쾌적한 느낌을 주었다.

당시 그 시설의 이용인원은 40여명 남짓이었다. 하루종일 실내에 머물러야 하는 노인들이 햇빛을 느낄 수 있다는게 마음에 들었었다. 원래 음식점으로 사용되던 장소를 임대하여 주간보호센터를 운영한 것이다. 어쨌거나 내부는 주간보호센터에 걸맞게 재배치되어 사용되고 있었지만, 실내 공간의 넓이에 비해 40여명은 좀 북적이는 듯한 느낌을 준 것이다.

내가 실습을 하던 주말-토요일에는 그 절반의 인원들만 주로 이용하기에 그때는 공간에 여유가 있어보였다.


그러나 내가 실습을 끝낸 몇달 후에 그 시설은 두배 정도 넓은 곳으로 이전했다.

실습을 하던 시기에(4~6월), 그곳의 원장 즉 기관장은 어르신들과 함께 아침에 힘뇌체조를 하는 어느날부터인가 종종 이렇게 운을 떼기 시작했다.

어르신들, 저희가 7월달에 이사를 할 거에요. 여기가 좁아서 어르신들을 많이 모시고 싶어도 못해서 아쉬웠어요. 그런데 이제 더 넓은 데로 옮기면 어르신들을 100분까지도 모실 수 있어요! 넓은데로 가시게 되니까 어르신들도 좋으시지요? 하하하...

100명이나?

그럴까? 기관장이 어느 날부터 자랑인듯 홍보인듯 해대는 소리를 들으며 나는 왠지 고개가 갸웃거려졌다.

솔직히 말해서 나는 40명이라는 인원이 한 곳에 모여 있는 것도 별로 좋아 보이지 않았었다. 더구나 내 어머니는 주말을 제외한 주중에만 이용하셨기에 늘 북적거리는 40여명 속에서 이리저리 휩쓸리는 것은 아닐까 걱정스럽기도 했다. 그런데, 앞으로는 무려 100명을 한 장소에 몰아놓겠다는 소리를 저런 감언이설로 늘어놓다니....

그러다 나의 실습기간은 끝났고, 시간이 흐른 뒤 주간보호센터도 진짜로 더 넓은 곳으로 이전을 하였다. 실습이 끝났어도 나는 시설 이용자인 어머니의 보호자로서 계속해서 그곳과 연결되어 있는 상태이므로 자연스럽게 어느날 그곳을 구경하러 가보았다. 예전에 비해 전체 공간은 두배 이상 넓어졌다. 그러나 단독건물이었던 이전과 달리 이곳은 오래된 주상복합건물의 4층에 자리했는데, 넓은 창들이 있으나 천창을 통해 들어오던 예전의 밝은 햇살의 호감도는 떨어졌다. 그냥 답답하지 않을 정도라고나 할까.

그로부터 몇달이 흐르는 동안에도 어머니는 열심히 그곳에 출퇴근하셨다.

거동이 불편함에도 불구하고 마치 자신의 지켜야 할 일과인 듯 여기셨다.

그러는 사이 100명의 어르신을 모시는 것을 목표로 했던 기관장은 영업력을 발휘하여 열심히 노인들을 끌어모았는지, 매일 이용하는 인원이 어느새 60명 정도에 이르렀다.

그리고 겨울이 되었다. 사람이 많으니 기관에서 어르신들을 송영하는 차량을 이용하는 인원도 늘어날 것이고 아주 먼 곳에서 사는 분들도 적지 않은 듯했다. 그러다보니 센터를 오가며 부득이 차에 올랐다가 집까지 도착하기 전까지 오랫동안 차 안에 머무르게 되는 경우도 흔했다.


송영送迎:가는 사람을 보내고 오는 사람을 맞음.
주간보호센터의 송영서비스는 필수적이다. 주이용자가 노인이므로 그분들을 집앞에서 모셔오고 다시 모셔다드리는 서비스가 필요한 것이다.


젊은이들 같으면 한 시간을 타고 다니더라도 집에만 내려주면 문제가 없을 것이다. 그러나 노인들은 신체기능의 노화로 인해 배변기능이 자신의 의지와 다르게 작동하기도 한다는게 문제다. 바로 내 어머니의 경우도 예외가 아니었는데, 진작부터 아침에 갈 때나저녁에 돌아올 때도 일찍 차에 태우고도 한참씩 여러 명을 태우러 돌아다니는 동안 차에 오래 머무르게 되고, 오후에도 멀리까지 사는 사람들을 먼저 데려다 내려주고 맨 나중에 집에 돌아오는 횟수가 늘어나기 시작했다. 불만이었으나 처음부터 나는 그점을 어필하지 않았었다. 어머니도 그냥 그러려니 하시니 내가 굳 이나서서 왈가왈부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어느날 어머니는 결국 몇차례 심각한 상황에 처하고 말았다. 차에 오래 타고 여기저기 다른 사람들을태우러 다니는 아침 시간에 큰일이 벌어진 것이다. 그 처리 과정에서 어머니를 돌본 요양보호사의 부주의한 처사는 어머니의 자존감에 더욱 상처를 입히기도 했다. 당시 어머니가 느끼셨을 절망감의 정도를 나는 그저 짐작만 할 수 있을 뿐이다.

결국 모든 문제는 차를 오래 타고 다니는 것이라며 하소연하시는 어머니를 나는 결코 무시할 수는 없었다. 나는 센터의 부원장에게 그 사실의 전말을 알리고 요양보호사의 부주의를 시정하도록 당부함은 물론 '구순노인의 신체기능에 문제가 있어서 그러니 어머니가 차에 되도록 오래 머물지 않게 송영시 차량서비스 개선조치를 해주길 바란다'는 뜻을 전했다. 그러자 그녀는 뜻밖에도 한달에 천만원씩 적자가 난다느니,하는 경영상의 어려움이 크다는 하소연을 늘어놓았다. 또한 인원이 많아서 모든 어르신들이 서로 먼저 가려고 해서 그렇다며 양해를 해달라는 것이다.

그러니까 100명을 수용하려는 목표달성을 위해 닥치는 대로 노인들을 받아들이다 보니 차량 부족과 송영 소요시간에 문제가 있을 수밖에 없다며 이해해 달라는 소리였다.

천만원이나 매달 적자가 난다는 소리는 스스로의 장삿속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것에 다름아니라고 생각되었다. 참 어이가 없었지만, 어머니를 맡긴 입장인데다 우는 소리를 하는데 더 뭐라 할 수도 없고 해서 나는 다시 다독이는 소리를 할 수밖에 없었다. 운영하기 힘들겠다고 이해하는 소리를 했다. 그랬더니 그후로 어머니의 출퇴근시 승차시간을 조절하는 노력을 보여 주었다. 아주 내 마음에 들지는 않지만 그래도 노력을 하는 듯했다.


그러나 다른 더 큰 문제는 얼마 후에 또 드러났다.

한파가 몰아닥치는 이 한겨울의 어느날, 센터에서 돌아온 어머니가 외투를 벗으며 생각난 듯이 하소연을 하셨다.

날마다 찬물로 양치를 하니까 이가 시려서 못 살겠어! 화장실 갔다 올 때도 맨날 찬물로 손을 씻어!

이게 무슨 소리지? 나는 깜짝 놀랐으나 그날 나는 어머니의 말을 못들은 체했다. 내가 어떻게 해야할 지 당황스러웠다고나 할까. 그런데 며칠 후 어머니는 다시 똑같은 소리를 하며 얼굴을 찡그렸다.

엄마, 정말이야? 이 한겨울에 찬물로 양치를 한다고?? 미친거 아냐??
그제서야 나는 더 이상 참을 수도 모른체 할 수도 없게 화가 났다.

한파가 몰아치는 한겨울에 노인들에게 찬물로 양치를 시킨다니, 말이 되는가?

다른 어느 곳과 마찬가지로 주간보호센터에서는 코로나 이후로 개인 방역을 철저히 한다는 명목으로, 아침에 센터에 들어서는 순간부터 소독제를 뿌리고 손을 씻게 하고 양치를 하게 하며, 어르신들 점심 식후에도 반드시 양치를 하도록 하고 하루중 매번 화장실을 다녀올 때마다 손을 씻도록 강제하고 있음을 나는 잘 알고 있었다.

그런데 그런 순간에, 따뜻한 물이 아닌 찬물을 사용하게 한다는게 이해가 안 되었다.

어머니가 말한 상황이 우연히 한두 번이거나 일시적인 것이면 그렇게 내게 몇번씩이나 하소연할 리가 없다고 생각되었다.


고민끝에 그날 밤, 나는 부원장에게 다음과 같은 톡을 보냈다.


나:

안녕하세요

궁금한점있어서 문의드립니다.

주간센터 세면대에 온수가안나오나요?

얼마전부터 어머니가 화장실갔다올때도 그렇고, 식후 양치물도 찬물만 나와서 손이 너무시리고 이도 너무시려워서 하기가 싫다고 하시더라고요.

설마 이 추운겨울에 노인들께서 찬물로 손을씻고 양치를 하시나요?

그거야말로 좀 아닌것같은데요..

진실을 알고싶어서요

그러자 즉시 아래와 같은 답이 왔습니다.

부원장:

온수사용하고있고

어르신 목욕이나 한꺼번에 양치이용하실때 그럴때가 있다고 들었습니다

아무래도 60분정도가 한꺼번에 이용하시니 데울동안 그런거같아요

보일러온수이고

정수기처럼 일정물을빼면조금시간이걸리는타이밍있습니다

나는 당장 뭐라고 해야할 지 어리둥절했다.

내가 알고 싶은 것은 팩트가 맞다. 그런데, 그래서? 분명히 문제가 있는 팩트가 그러한데, 그 점을 개선하려 한다거나 하는 자신들의 의지에 대한 안내는 보이지 않았다.

너무나 당연스러운 일상일 뿐, 내가 확인하고 싶어 하는게 어떤 문제인지 전혀 인식하지 못하는 것 같았다. 더구나 들었다라니? 남의 일인가? 듣고 넘어갔다는 소리가 아닌가....

그 자신은 바로 노인을 위한 사회복지시설을 운영하는 입장이 아닌가....

그 후에라도 다른 추가 답변이 올지 기다리느라 그 밤을 그냥 보냈다.

섣불리 뭐라 해야할 지 당황스럽기도 했기 때문이다.


다음 날 아침이 되었다.

센터에서 송영오는 차를 기다리며, 나는 결국 다음과 같은 폭발 직전의 감정이 충분히 담긴 회신을 보내고 말았다.

나:

부탁드립니다

온수기 작동문제라고 미루지마시고요.그게문제일지라도 보완하는게 맞겠죠.

양치할때나 손닦을때 더운물 주세요.

인원을 60명씩이나 받으실거면 그에맞게 설비도 갖추시는게 맞지않을까요?

그걸못한다면 감당못한다는 의미 아닐까요.. 규모 키우는데 힘쓰지 마시고 노인들을진심으로 배려하고 정말 필요한 부분을 제대로 해주시는게 맞을것같네요.

겨우 더운물 양치와 손닦을때 더운물 항상 쓸수있게 해주는거야말로 가장 기본적인 것이죠.

이 추운겨울에 찬물양치라니요 원장님도 찬물로 하시나요?

밤이 지났어도 변함없는 상대의 무반응에 나는 노골적으로 이렇게 강력히 요구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자 톡을 보낸 후에도 한참동안 답이 없었다. 나름대로...자기들끼리 대책을 생각하느라 그랬을까.

그러더니 한참 후에 이런 자상한 답이 날아왔다.

부원장:

어려운말씀인데

어르신 여러가지편의를위해소규모주간보호센터 알아보시면 어떠실까요

부탁드리겠습니다


이게 뭔 개뼉다귀같은 답변인지? 공손한 듯한 저 답변 속에는 우리는 대규모시설이고 한사람한사람의 불만사항을 다 들어줄 수 없으니 참고 견디거나, 혹은 그게 싫으면 떠나라는 뜻이 담겨 있지 않은가.

이제라도 읍소하며 개선하겠다고 해야 옳지 않은가? 온수사용 문제는 더구나 내 어머니 한 사람만을 위한 개선요구사항이 아니었다. 말없이 참고 견디는 그외 60여명의 다른 어르신 이용자들의 문제이기도 했다.

다들 말없이 참고 견디는데 왜 너만 그렇게 자꾸만 이거 해달라 저거 해달라 불만이 많으냐, 는 볼멘 태도 아닌가 말이다.


적어도 자신들이 입버릇처럼 하는 말대로 노인을 제부모처럼 생각하고 위하며, 사명감을 가지고 노인을 위한 시설을 운영하는 사회복지 전문가라면 조금 더 진지하고 자숙하는 모습을 보여야 하지 않을까.


단지 기분나빴다는 의미가 충분히 느껴졌다. 나는, 매일 8시간씩 이용하시는 내 어머니의 보호자로서 이용하는 시설의 개선을 요구할 권리가 없는 것일까? 화가 부글부글 끓었다. 안 그래도 진작부터 인원도 늘어나고 해서 마음에 안 들었는데,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라는 식의 태도는 도화선이 되었다.

일단 어머니가 센터로 출발하신 뒤, 어머니의 보다 나은 둥지를 찾아보기 위해 나는 근처의 소규모 주간보호센터 몇 곳에 가보았다. 내가 겪은 일을 이야기하고 온수사용 문제에 대해 문의하니, 그곳에서는 모두 온수는 기본으로 잘 나오게 되어 있고 그런 게 문제가 될 수는 없다고 말했다. 실제로 수도꼭지를 틀어보아도 따뜻한 물이 쏟아졌다. 무엇보다 인원이 30명 내외 정도였고 그들은 모두 더이상 규모를 늘릴 생각은 없다고 대답했다. 그중에서 특히 한곳이 마음에 들었다. 그래서 오후에 어머니를 조퇴시키고 모셔가서 구경을 함께 하기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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