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Oh My Life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_노인을 볼모로 돈벌이가 가능한 나라2

by somehow

어쩌면 내가 다 할 수 없으니 떠넘기듯, 어머니를 부탁해야만 했던 ◉◈▣노인주간보호센터의 배신감 충만한 태도에서 나는, 꾹꾹 욱여 작은 상자에 담겼던 용수철처럼 맹렬히 반응했다.


장사가 너무 잘 되서 이제는 불평불만을 해대는 시끄러운 손님은 받기 싫다는 뜻인가.

당신 아니라도 이토록 번드르르한 대규모 센터에 들어올 노인들은 줄을 섰다, 이 말인가.


인간의 과학기술과 생명연장에 관한 연구의 한계는 없는 것일까....이러다가 백살이 아니라 200살까지 살아남기 도전!이라도 할 판이다.


무작정 인간의 수명연장에 관한
노력만 할 것이 아니라,
연장된 수명만큼 스스로의 능력으로도
더 잘 살 수 있는 방법까지 세트로 묶어서 연구하고 개발해야 하는 것 아닌가?
신체기능은 다 쇠퇴하여
자신의 의지로 해낼 수 있는 일이란
몇 가지 되지도 않는데도,
숨만 겨우 쉬고 앉아 있어도,
그 노후가 진정 행복하고 평화로울까?

관절의 여기저기를 갈아치우고도 구순의 어머니는 날마다 고통의 노래를 부른다.

그것은 절망의 부르짖음에 다름아니다. 그나마 인지능력은 정상이라 스스로에 대한 좌절감이 더욱 큰 지도 모르겠다. 차라리 내어머니보다 이른 나이에 진작 치매에 걸려 하루중에도 여러 차례 정신이 오락가락하는 노인들은 그 자신에 대한 비명조차 내지를 경황도 없어보인다.

그러나 결국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철저히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이란 먹고 싸고 잠을 자는 정도가 아닐까....


아무튼,

어려운말씀인데

어르신 여러가지편의를위해소규모주간보호센터 알아보시면 어떠실까요

부탁드리겠습니다

라는 마지막 답을 들은 그날, 나는 어머니를 모시고 아담하고 새로운 노인주간보호센터를 둘러보며 설득하기 시작했다.


엄마, 인원이 60명 100명 씩 되는 곳에서는 엄마를 잘 보살펴주지 못해. 저기로 옮기자, 응?

그래? 그럴까?

하다가도 어머니는 다시 이렇게 말한다.

그래도...내가 거기 적응하느라 얼마나 힘들었는데..... 이제 겨우 화투 친구도 생기고 해서 좋은데...

하, 엄마 한겨울에 계속 찬물로 양치하고 싶어? 날마다 찬물로 손 닦고 싶냐고? 그건 아니잖아? 친구는 가서 또 사귀면 되지! 나는 우리 엄마 절대로 그런데 다니게 하고 싶지 않아. 부원장이 우리더러 싫으면 다른 데로 가라고 했다니까!

그러자 어머니는 놀란듯 나를 본다.

뭐야? 니가 다 말했구나! 나는 그냥 너한테만 한건데 그걸 왜 거기다 다 말했냐? 지난번에도 니가 말해서....집에 빨리 데려다 주기 시작한 거구나? 왜 그랬어?!

우리 엄마니까! 우리 엄마가 그런 데서 왜 그런 대우받으며 눈치보고 있어야 되냐고?

아이고...왜 그 사람들 마음 상하게 그런 말을 했어? 그냥 참고 있으면 되는데...

오히려 어머니는 나를 원망하셨다. 왜 기관운영자들에게 싫은 소리를 해서 불편을 끼치느냐는 거다.

아니야, 다른 노인들은 대부분 혼자 살잖아, 그러니까 그분들은 집에 가서도 어디 하소연 할 데가 없으니까 아무 말도 못하고 이가 시려도 그냥 참고 있는 거야. 또 혼자 집에 있으면 밥도 먹기 힘드니까 그 끼니 해결하러 거기 다니시는 분들도 많잖아. 거기서 실습해서 다 알아 이제. 그런데, 엄마는 나랑 같이 사니까 그래도 힘든거 그렇게 말할 수 있는 거고, 나는 자식이니까 엄마가 그런 취급받는거 알게 되면 시정해 달라고 말할 수밖에 없지! 그게 왜 잘못이야! 앞으로 사람이 더 늘어날거야, 사람 많은데는 안 좋은 거야....! 옮기자, 이 참에. 잘됐잖아. 안 그래도 점점 마음에 안 들기 시작했는데...

그래도 싫어....안 옮겨! 그냥 있을 거야. 안 가! 사람 새로 사귀어야 되는거 힘들다고...


결국, 어머니는 지금 현재까지도 그대로 매일 찬물로 양치질을 하며 손을 닦으며 진저리를 치면서도 그 센터를 이용중이시다.

그렇다고 내 맘대로 무작정 어머니를 그곳에서 끌어내 올 수는 없었다.


아무리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이 몇 안 되는 노인이라도, 자식이라도 당신의 의사를 무시하고 일방적으로 내 마음대로 할 수는 없었다.


얼마전 요양보호사 이론공부를 하면서 노인의 신체적 심리적특성과 노인 학대 등에 관해 배우면서 새롭게 알게된 것은 노인들은 현재상태의 변화를 싫어한다는 사실이다. 힘들고 불편해도 자신이 이미 익숙해진 현실적 상황에 그대로 머무르기를 차라리 원한다는 것이다. 변화된 환경에서 새로이 적응하는데 대한 두려움과 걱정이 크기 때문인 것 같았다.

노인학대의 경우에도 노인 당사자가 원치 않는 일을 억지로 하게 하는 것도 학대에 해당된다. 때리고 욕하거나 방치하는 것은 당연히 학대이지만, 자신이 편안하게 느끼는 상황을 억지로 변화시키는 것도 마찬가지다. 현재 이용중인 노인주간보호센터에는 딸인 내가 보기에는 말도 안 되는 서비스의 허점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어머니는 그외 다른 면에서는 대체로 불만이 없으며 많은 사람들과 북적이며 지내는 것이 좋은 것같았다. 찬물로 양치하고 손좀 닦는 것은 얼마든지 견딜만한, 나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또다른 만족감이 있는가보다...


그래서, 나는 차마 더이상 강력하게 어머니를 설득할 수가 없었다.


종교생활을 못하게 하는 것도 학대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몇년전 동생의 권유로 교회에 다니게 된 어머니는 스스로 거동이 매우 불편한 요즘에도 주말이면 기를 쓰고 교회에 가겠다고 나서곤 하신다. 처음에 나는 그것을 결사적으로 뜯어말렸었다.

그런데 요양보호사 이론을 공부하며 그게 학대라는 사실을 알고 나서는 그럴 수가 없어졌다. 다만 오고가는 경우에 한바탕씩 난리가 나곤 하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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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일을 겪으며 나는 내가 어떻게 현명하게 해야 할 지, 내가 이렇게 팔팔 뛰는 게 잘못인지 알 수 없었다. 그래서 브런치에서 알게 된 사회복지전문가 유미애작가님께 조언을 청하기도 했었다. 박사님도 나와 같은 생각을 해주셨다. 당연히 시정조치를 부탁하는게 맞고, 어머니를 즉시 그 시설에서 분리하는게 우선이라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장기요양보험공단에도 그러한 사실을 알리고 시정조치를 요구해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결과적으로, 그 이후로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지내고 있다. 물론 나는 건강보험공단 장기요양보험센터에다 ◉◈▣노인주간보호센터 실상을 고발할 생각도 했었다. 그러나, 그렇게 되면 고발인의 신분이 밝혀지고, 그때는 정말로 어머니는 그 시설을 떠나야만 할 것이다. 순순히 그곳을 떠날 마음을 먹지 않는 이상 계속 이용한다면, 정말로 내 어머니에게 어떤 불이익이 돌아올 지 알 수가 없는 상황에 처하는 것이다.


어느 순간, 어머니는 자신이 이용하는 시설의 볼모가 되어버린 것이다.

그것은 나의 부주의함과 경솔함 때문인 것만 같아 마음이 무거워졌고, 한없는 무력감을 느꼈다. 황당한 일이 버젓이 일어나고 있음을 뻔히 알면서도 아무 말도 아무런 액션도 취할 수 없는 이 상황에 자책감마저 밀려왔다.


내가 시정을 요구했던 사항은 단지 내 어머니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그곳을 하루종일 이용하는 60여 명 노인들 모두의 문제이기도 했다.

그동안 아무도 그에 대해 불만을 제기하지 않았다고 해서 당연히 그래도 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한 사람이라도 문제를 제기하면 문제의식을 가지고 적극적으로 해결하려는 자세를 보이는 것이 맞지 않을까.


운영상의 어려움만을 내세우며, 아무리 클라이언트의 태도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한들, 사회복지전문가로서의 프로의식은 내다 버린 채, 지극히 감정적으로 반응하여 다들 조용한데 왜 당신만 떠드냐는 식의,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세요, 식의 태도는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내가 부원장에게 훈계하듯이 따지듯이 운영을 똑바로 하라는 듯이 말했다고
어머니나 동생은 나를 책망했다. 예의바르게 눈치 보아가며
제발 부탁드려요....했어야 할까...
나의 화법이 다정하지 않았음은 분명히 인정하겠지만,
그 순간 나는 그 누구의 대리인도 아닌 바로 내 어머니의 자식으로서
늙은 어머니의 일상에 관한 일이었기에 결코, 감정은 냉철하게 배제한 채
점잖고 기품있게 항의할 수는 없었다고 항변하겠다.

그 순간, 나에게는
화법의 부조리를 따지기보다
일단 무조건, 열렬하게 공감해 줄
응원군이 필요했다.
적어도 남편과 유미애 작가님만은
그렇게 적극적으로
동조해주셨기에 힘을 얻었다.



사회복지 전문가라며, 노인을 [제 부모님처럼 여기며 편안하게 모시겠다며, 자식들은 아무 걱정하지 말라]는 홍보문구를 자랑스레 내건 센터 운영자가 실은, 노인 한 사람을 더 확보하면 '두(頭)당 얼마나 남고 얼마나 비용을 더 줄일 수 있는지' 손익계산에만 오로지 몰두하기 시작한 것은 아닌지 의문이 아닐 수 없다.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는 영화가 있었다.

영화에서 의미하는 노인은 단순히 신체적 연로함을 의미하지 않는다. 이미 생각과 가치관이 고정되어 변화의지도 없고 노력도 하지 않는 자가 바로 노인에 다름아니다. 그런 의미에서도 저 기관의 운영자 역시 그누구보다도 이미 변화도 개선의지도 없는 진정한 의미의 노인의 수준에 들어선 것 아닌가.


그에게 이 나라의 사회복지는 노인을 위한 것이 아니라,

노인을 이용해, 볼모삼아, 이익추구만이 가능한 나라로 인식되었다고 생각될 뿐이다.






글을 올리고 난 이후, 오늘 아침에도 어머니께 물었다. 아직도 여전히 찬물로 양치하시느냐고,

요샌 '양치할 때만 바가지에 따뜻한 물을 담아다 두고 한 컵씩 쓸 수 있게' 해준단다...참, 그나마 다행이라고 해야 하는 건가, 아직도 그 타령으로 뭐하는 짓인가 하는 생각도 든다...

그럼에도 이미 그 사건은 내 손을 떠났고,

나는 더이상 궁극적인 상황개선을 위한 어떠한 노력도 할 수가 없다.


한없이 무력無力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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