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Oh My Life

실업급여수급자의 나날

_대체로 맑음, 그리고 분주함

by somehow

꿈에도 바라던 실여급여수급자의 삶이 시작된지 4개월째다.

월급생활자의 삶을 살기 전에는 미처 알지 못했던, 비자발적 실업에 의한 실업급여의 혜택은 적당히 달콤하다. 일하지 않고도 일정기간 적당한 급여를 받으며 살 수 있으니까.

그러니 이또한 열렬히 누리고 즐기는 것이 맞을까....


내가 아는 어떤 사람은 정말로 열심히 그 자신에게 주어진 6개월의 실업급여수급기간을 알뜰히 채우며 끝까지 실업급여를 타 드시고 나서야 다시 일자리를 찾아 나섰다. 그자신은 물론 그를 지켜보는 나역시 대단하다는 생각을 했다.

나도 처음엔 그 모범답안대로 꼭 그렇게, 내가 누릴 수 있는 최대한의 실업급여를 당당히 바닥까지 싹싹 핥아 먹으리라 결심했었다.

그런데, 막상 그토록 바라던 자격을 얻고 그 삶을 누리게 되자 마음속 깊은 해저海底면으로부터 하루하루 꾸물꾸물 차 오르는 어떤 것이 있었다......

하여, 나는 실업자가 된 순간부터, 정확히는 실업급여를 받고 휴지기에 들어가기 전부터, 나의 실업급여수급자로서의 삶을 계획하기 시작했다.


1. 요양보호사 자격을 따보자

2. 엑셀프로그램을 마스터하자

3. 실업급여수급이 끝나면 사회복지사로 취업을 하자

4. 내일배움카드로 할 수 있는 많은 것을 배워보자


그것은 마치 버킷리스트처럼 보인다.

첫번째, 요양보호사자격은 그래도 국가자격이라 매년 정기적으로 치러지는 시험 일정을 파악해 과정에 들어가야 했다. 잠시 탐색을 거쳐 마침내 지난해 11/22에서 12/8까지 몇주동안 집중적으로 줌수업을 듣는 과정을 선택할 수 있었다. 다행히 사회복지사 자격증이 있는 경우에는 요양보호사과정에서 단축되는 부분이 있었다. 그리고 집체수업이 원칙이었으나 코로나19의 창궐로 인해 줌수업이 허용된 것이다..

줌수업은 기간동안 매일 오후6시부터 10시까지 실시간 화상강의를 들어야 했다.

꼼짝않고 카메라 앞에 얼굴을 들이대고 모니터로 수업을 듣는 일이 뜻밖에도 쉽지만은 않았다. 어쨌거나 그렇게 정해진 수업시간을 채우고 나서 바로 시험을 보면 좋으련만, 국가시험이다 보니 정해진 시험일정은 올해 2월 19일이었다.


시험은...수업을 12월초에 끝내고 무려 두달여의 시간이 주어졌기에 대비할 시간은 충분했다. 시험 종료 후 몇시간뒤에 발표된 정답을 맞춰보니 충분히 합격선이었다. 오히려 성급해서 몇문제 틀린 게 속이 쓰릴 뿐.

응시소감을 적어보자면, 솔직히 난이도자체가 너무 낮다. 그러나 꼼꼼히 공부하지 않으면 쉽게 맞추기 알딸딸한 문제들이 분명히 포함된 시험이었다. 요양보호라는 업무의 특성상, 시험의 의도 역시 업무상 필요한 상식과 지식들을 가능하면 충분히 익히도록 하는 것이라고 생각되었다. 사람을 대상으로 하는 일이다보니 그 대상자를 돌보는데 있어서 학습자가 얼마나 구체적으로 정확히 기본지식을 갖추고 있느냐가 중요하기 때문이 아닐까.

쉽게 말해, 가족들이 아플 때 서로 옆에서 돌보듯, 누구나 환자나 노인을 돌볼 수는 있지만 요양보호의 주 대상인 65세이상인 대상자의 노화와 치매 등의 상태와 증상에 따라 가장 최선의 돌봄을 행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리라.

그러니까, 공부를 하지 않더라도 지극히 상식적인 정도의 문제는 맞추겠지만 구체적으로 대상별 맞춤이 필요한 지식영역에 대한 질문지 앞에서는 분명히 망설이게 될 것이며, 그동안 알고 있던 상식에 비추어 찍었을 때는 뜻밖에도 정답이 아닌 경우도 있을 것이다. 바로 그런 지식의 허점, 상식의 태만을 방지하기 위해 요양보호사 과정의 이론 수업은 반드시 필요하고 달달 외울 정도가 되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것은 결국 반복학습으로만 가능할 것이다.

나역시 여러번 반복을 거듭함으로써 이제야 비로소 요양보호의 실제적 임무의 중요성을 어렴풋이나마 이해할 수 있게 된 것같으나, 이 역시 교만일지도 모르겠다.

합격자 발표는 3/8일이고 그후 자격증이 나올 것이다. 이로써 나의 첫번째 목표에는 도달하였다.

두번째 엑셀프로그램 익히기에도 나는 도전했다. 12월 8일에 요양보호사 이론수업이 끝나고 2월19일 시험까지는 시간이 너무 많이 남아서, 나는 도저히 그냥 있을 수가 없었다. 원래는 요양보호사자격시험의 부담감때문에 2/19이후에나 엑셀프로그램 배우기에 나서려고 했으나 그러기엔 너무 지루했다.

그래서 나는 1월17일부터 시작하는 ITQ와 컴활2급 실무 자격과정에 지원했다. 우선 나는 엑셀프로그램만 배우고 싶었으나 그것만 가르치는 곳은 없었다. 작년 5월인가 인터넷과정으로 엑셀을 배워보긴 했는데 그것은 줌수업도 아니고 강사와 소통이 되지 않는 일방적인 수업이라 결과적으로 나는 그 시간동안 무엇을 배웠는지 기억도 하지 못했다.


사회복지사의 주업무가 엑셀프로그램을 기본으로 요구한다기에, 나는 되든 안되는 일단은 엑셀이 뭔지, 다룰줄은 알아야 명함이라도 내밀 것이라고 판단했고 도전했다.

역시 집체수업이었다. 수업을 듣기위해 모인 수강생들은 대부분 20대의 청년들이었는데 뜻밖에도 내나이대로 보이는 사람들도 너댓명 정도 포함되어 있었다. 청년들이야 스펙을 위해 모였을것이고 내또래중 여자는 나혼자였지만 다들 퇴직을 앞두거나 퇴직자인 경우로 보였다. 그중 한 남자분역시 사회복지학과를 나왔으나 다른 분야에서 일하다 퇴직하고 사회복지사로 후반기 삶을 도모해볼까해서 찾아온 경우였다. 열댓 명의 수강생들은 학원에 직접 가서 매일 강사와 대면으로 1/17일부터 2/25일까지, 바로 지난 금요일까지 매일 오전 9시부터 1시반까지, 그렇게 과정을 마쳤다. 물론 그과정에서 코로나 확진자가 나와서 줌수업으로 바뀌었다가 다시 집체교육으로바뀌는 등 우여곡절이 있었다.

그 수업에서 한글과 엑셀, 파워포인트를 배웠다. 한글프로그램이야 평생 써온것이라 다 안다고 생각했으나 서식지정과 같은 부분에서는 역시 새로운 것을 배우는 기회가 되었다. 한글이나 파워포인트는 상대적으로 어렵지 않았으나 역시 엑셀이 문제였다. 그것도 대체로 이해는 했으나 함수를 이용해 결과값을 찾아내는 작업이 핵심이고 힘겨웠다. 함수식을 외우는 노력이 최소한으로 필요했다.


암기...간단한 함수들은 반복 연습을 통해 저절로 외워지고 사용이 가능했으나 인수가 많이 들어가는 함수식은 잘 외워지지 않았다. 어쨌든 그 역시 나름대로 최선의 노력을 다했고 2/27일 일요일에 시험을 치렀다.

우선은 한글과 엑셀만 도전했는데, 한글의 경우 A등급을 기대할만큼 충분히 마스터했었는데, 처음 해보는 시험방식에 너무나 긴장을 해서 실수를 저질렀다. 그래서 어쩌면 A가 안 나올 수도 있을 것같아 우울하다.

다음으로 엑셀 시험을 봤는데, 함수식을 이용해 문제를 푸는 문항 중 함수는 쉬운 것, 이미 충분히 익힌 것 몇개만 풀기로 결심하고 임했었다. 그런데 뜻밖에도 함수식을 계획보다 몇 개 더 풀어내는 기적이 일어났다. 제발 B등급만 맞자고 생각했었는데 어쩌면 충분히 될것 같다.

파워포인트 시험은 3/12일로 예정돼있다. 한번에 세 과목을 다 치르는게 부담스러워서 따로 보기로 한 것이다. 학원을 다니는 기간에 요양보호사 시험이 끼어 있어서 부담이 되기도 했으나 적당한 긴장과 부담감이 도전의식을 배가시킨 것도 사실이다.


뛰어난 능력자들에게 나의 버킷리스트는 도전이라는 말이 무색할 만큼 하찮은 것들일수도 있겠다.

그러나 나는 어느새 점점 어떤 목표를 향해 다가가는데 주저함이 점점 없어지는 것도 사실이다. 이제는 또 어떤 무엇을 새로 배워볼까 하는 생각을 한다.

아무튼, 엑셀과 요양보호사 자격증이 나오는대로 사회복지자격과 더불어 다시 새로운 분야에서의 월급생활자의 삶으로 회귀하려는 꿈을 꾼다. 아무래도 나는 실업급여생활자의 삶이 권태롭게 느껴진다. 넉달째 나의 실업을 증명하면(요양보호사과정이나 컴퓨터를 배우는 과정 등이 모두 실업기간중 직업능력을 키워 장차 구직을 위해 노력한다는 의미로 활용된다) 일정한 날 입급되는 실업급여가 기쁘기는 하지만 마냥 상쾌하지 않은 이유는 무엇일까.


내일배움카드

요양보호사과정이나 ITQ와 컴활2급실무과정 모두 내일배움카드를 통해 진행했다.

내일배움카드라는 놀라운 제도 덕분에 나는 그동안 망설이거나 부담스럽게 느꼈던 공부를 할 수 있었다. 그것은 직장이나 나같은 실업자=구직자들도 쓸 수 있는 아주 좋은 직업훈련시스템이 아닌가 생각된다.

직장인들 대부분 이 카드를 잘 알고있을 것이지만 내가 이것을 알게 된것은 불과 1년도 채 되지 않았다.

물론 자부담비용이 발생하지만, 그역시 나는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무조건 100%무료는 사용자의 동기를 오히려 반감시킬 수도 있을 것이다.

쉽게말해 내돈이 들어갔으니, 아까워서라도 열심히 임하게 되지 않겠는가 말이다.

최근에는 발급대상이 확대되어서 대학생들도 이 카드를 활용할 수 있게 되었다고 한다.

이렇게 나의 소소한 버킷리스트는 지워져갔다.


실업급여수급자로서의 하루하루,
나는 또 새로운 무엇을
배워볼까, 뜻밖에 주어진 소중한 이 시기를
어떻게 충실하게 채워볼까 고민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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