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Oh My Life

추석 즈음2

_느닷없는 배앓이

by somehow

언니 집에 도착했을 때 어머니는 2층에 있는 방안 침대에서 스스로 일어나 워커를 밀고 화장실에 가려고 하는 중이었다. 물론 기저귀를 차고 있음에도 어머니는 화장실에 가려고 노력한다.

언니집에서의 일주일여 시간동안 초기에는 밤새 기저귀를 여러장 적시기도 했다고 한다. 그럼에도 정신만은 여전히 또렷하다.


언니부부가 추석을 쇠러 떠난 후, 나는 때맞춰 어머니의 식사를 차려드리고 화장실이동을 지켜보거나 도우며 하룻밤을 지냈다. 기본적으로 예민한 성격인 나는 집에서와 마찬가지로 그곳에서도 밤새 어머니가 깨어나는지 귀기울이느라 깊은 잠을 이룰 수 없었다.


그것은 어머니의 신체활력이 쇠퇴하여 나와 함께 살기 시작한 이후로 자연스럽게 몸에 배어버린 습관이기도 했다. 그러니까 나는 이미 수 년째, 어머니의 움직임과 불편을 호소하는 새된 음성 따위에 보이지 않는 줄로 연결된 마리오네뜨 인형처럼 한밤중에도 꿈결이건 잠결이건 거의 자동반사적으로 깨어나 어머니의 방으로 쫓아가곤 한다....그것이 이제는 자연스러운 듯하면서도 가끔은 당연히 지친다. 어머니가 많이 편찮은 밤일수록 나의 불면 또한 잦아지고 신경은 더욱 예민해지게 마련이다.

어느 때는 잠결에 어떤 소리에 놀라 무심결에 일어나 어머니방으로 뛰어가 기척을 확인하기도 한다. 다행히도 어둠에 잠긴 방안에서 어머니의 고른 숨소리만이 새어나올 때면 차라리 안도한다.


그렇기 때문인지...올해 이른 봄무렵 느닷없이 악화되었던 나의 궤양성대장염은 곧 호전되는 듯하였으나 다시 길고 지루한 투병모드로 진입한지 오래다. 그러다 참 공교롭게도, 어머니가 우측 11번 갈비뼈 골절로 입원하시던 딱 그 무렵에 나의 갑작스런 배앓이도 시작되었다. 그것은 그저 배탈이 난 것처럼 여름휴가를 마치고 출근한 무렵부터 시작되었다. 돌이켜 생각해 보건대, 그 무렵부터 어머니도 소변실수가 잦아졌는데, 그저 심화되는 노화의 증상이라고만 여겼으나 신우신염으로 방광의 염증이 심화되고 있는 중이었던 것같기도 하다.


바로 그런 경우에, 나는 어머니의 마리오네뜨 인형인 것만 같다.

당신과 보이지 않는 줄에 연결이라도 된 것처럼, 어머니의 고통인 듯 아닌 듯 나의 배앓이로 전이되어 오는 듯이 여겨진다.


그러는 동안, 배탈인 듯 장염인 듯 살살살-- 아랫배가 아프면서도 설사는 하지도 않는 이상한 배앓이도 일주일여가 넘도록 이어졌고, 참다 못한 나는 내과에서 장염약을 갖다 먹기도 했으나 전혀 나아지지 않았다. 의아한 생각에 부인과 진료까지 받아보았으나 그쪽에는 전혀 문제가 없었다.

그렇게 어느날 불현듯 이어진 배앓이는 궤양성대장염이 심하게 악화되었을 때 기억중추에 아로새겨진 경험적 고통과는 또 다른 유형이었기에 의아하고 막막했다.

마침내, 어머니가 낙상사고로 입원한 다음날 즈음에는 이유를 알 수 없는 배앓이가 더더욱 심해져, 원래부터 궤양성대장염 치료를 위해 다니는 병원 응급실로 찾아갔다. 그곳은 서울의 대형대학병원답게 수많은 응급환자로 북적거렸다. 결론적으로, 그곳에서 무려 네시간의 지루한 기다림 끝에 진료를 받았으나 이상이 없다는 소견만 들을 수 있었다. 그 무한정할 것같았던 응급실 대기중 배앓이는 더욱 심해져 갔음에도, 의사들은 피검사와 엑스레이진단 결과 아무런 단서도 찾지 못했다. 원인을 알 지못하니 그저 진통제와 진경제 등의 알약 몇알을 처방해줄 뿐이다.

나는 허무했으나 어쩔 수 없는 심정으로, 그저 통증이 사라지기만을 바라며 자정이 넘어서야 집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처방받아온 약을 다음날 아침까지 먹었다. 제발, 배가 아프지만 않기를 바랄 뿐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뜻밖의 결과를 낳았다. 오전 근무가 끝날 때까지도 배앓이는 이어졌고 너무 아프면 먹으라고 준 좀더 강력한 진통제를 점심 식후에 먹었는데, 그것이 문제를 일으켰던 것이다.

오후 근무를 시작하고 30여분 정도 지나갈 때, 오히려 통증이 배가 되며 온몸이 떨리고 메스껍고 어지럽고 식은땀이 나면서 그 자리에 서있기도 힘든 지경이 된 것이다. 참다 못한 나는 휴게실로 나갔으나 이상증상은 가시지 않았고 이내 화장실로 달려갔다. 구토를 하고....뱃속의 모든 것을 쏟아내고 한참 시간이 흐르자 정신이 돌아왔다.

그때 응급실에서 처방받은 약설명서에서 읽었던 부작용의 내용이 떠올랐다. 그 잠깐 사이에 겪은 증상들은 거기 적힌 부작용의 내용과 모두 일치했다. 약물부작용이었고 구토와 배설을 통해 모두 토해냈으니 이제 곧 나아질까...싶었으나 나는 더이상 근무를 이어가는 것은 무리라는 판단을 했다.


결국 또다른 병원의 응급실로 향했다.

그곳에서도 지루한 대기끝에 마주한 의사에게, 원래 다니던 병원 응급실에서 받은 약의 부작용을 겪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결론적으로, 일차진료에서는 역시 정상이라는 판단이 나왔다. 분명 이상한 배앓이를 겪은 나는 난감했다... 그럼 뭐지?

곧이어 의사가 CT촬영을 해보자고 제안했다. 문제가 있다면 분명히 나올 것이라며.

CT촬영 결과,

장 벽에 가스가 찼다는 것!??

장에는 늘 가스가 차기도 하고 자연스레 가스를 배출하기도 하는데, 장 벽에 가스가 찼다니?

나는 어리둥절했다. 특별히 잘 못 먹은 음식이 있는지 물었다. 그동안 배가 아파서 특별히 뭘 먹은 것도 없었고 그저 일상식을 이어갔을 뿐이다. 그러자 의사가 설명을 더했다.

스트레스가 원인일 수 있고, 장 벽에 가스가 차는 일은 드물고 자연적으로 빠지기도 하지만 일반적이지 않은 경우에는 수술을 해야할 수도 있다는...

그러니 당장 특별한 조치는 없으며 적절한 처방약을 내어주고 진료자료를 복사해주며 나의 주치의에게 수일내로 가볼 것을 권유받았다.

그렇게 길고지루한 두번째 응급실에서의 진료가 끝났다. 다행인지 그로부터 나의 배앓이는 잦아들었다. 한마디로, 몹시 기분나쁜 그 배앓이가 사라지자 흔히 하는 말, '살 것같다'의 의미가 진정으로 느껴졌다. 궤양성대장염이라는 지병을 안고 살기는 하지만 그것과 또다른 말초적 배앓이의 고통에서 해방되는 것은 또다른 삶의 기쁨이었다.



이 사연을 길게 늘어놓는 것은, 어머니가 퇴원 후 언니집으로 갈 수밖에 없었던 필연적인 이유가 바로 나의 두번에 걸친 '응급실 행'이었기 때문이다.


항상, 어머니에 대하여 예민하고 과민하다 싶은
나의 불면적인 자동반사적 기상행동때문에
언젠가 큰일이 날것이라고 경고하던 남편의 근심처럼,
늘 팽팽하게 당겨져 있던 나의 신경줄이 마침내
긴장의 끈을 놓쳐버린 것일까.
결국 스트레스가 문제였던가.........

그로써, 나의 배앓이를 핑계로 당분간 어머니를 언니에게 맡길 수 있게 되었으나, 그 역시 최종적인 방법은 아니다. 다행히 어머니는 하루하루 나아지고, 기력이 회복되는 만큰 원래의 고집도 되살아나 애써 병구완중인 큰딸과도 다투기도 시작하는 듯하다. 추석 전날 밤과 당일 하루종일 곁에서 바라본 어머니는 뜻밖에도, 언니의 심신의 상태와는 별개로, 큰딸네 집에서 지내는 것이 마음에 놓이는 모양이다. 친절하고 다정한 큰사위의 관심에도 안심하는 모양이다.

극진한 언니의 병구완 덕분에 어머니는 회복될 것이고 우리집으로 귀환하게 될 것이다.


어머니의 귀환에 대하여, 미리부터 남편은 장 벽에 가스가 찼었고 잘못하면 수술을 요하기도 한다는 배앓이가 반복될까 싶어 나의 불면의 밤을 또다시 걱정하겠지만, 나의 어머니인 것을 어찌할 것인가.

그저 순리에 따르는 수밖에 없을 것이다.


만에 하나, 가능한 한 끝까지 우리는 어머니와 함께 지내려 노력하겠지만 그럼에도, 한계에 봉착한다면 우리들은 어쩔 수 없이 어머니의 요양원행을 진지하게 고민해야만 할 지도 모른다.


어머니의 장기요양보험 서비스유형을 재가에서 재가/시설로 변경신청한 것도 그런 상황에 대한 대비책이었다. 추석전에 급히 제출한 신청서는 다행히 변경요청이 승인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유효기간이 올해 말까지라 10월에 다시 갱신신청을 하여 기간을 몇년 연장해야 하는 과정이 남아있다. 아직까지는 어머니를 요양원에 맡기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이번 추석즈음, 우리 가족은 명절의 감상따위 느낄 겨를도 없이 황망한 시간을 보내야했다. 그럼에도, 가족이 있기에 힘들 때 서로 힘이 되고 위로가 되어줄 수 있음에 감사한 마음이다.


다시 어머니를 부탁하고 돌아가는 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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