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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mehow Dec 01. 2022

어느날, 죽음이 내게 물었다

_『죽음이 물었다』_Book review




깊어가는 겨울 어느 날, 책 한 권이 도착했다.



어느새, 잘 쓰인 소설책 한쪽도 시 한 조각도 읽지 못하고 있던 나에게 그것은 적잖이 반가운 선물이었다.    



어쩌면 저 멀리 자신이 마지막으로 들어서야 할 문이 가까워졌다고 느낄지도 모르는, 늙고 사위어가는 구순 노모의 뒤로 감춘 두 손에는 알갱이가 점점 사라져 가는 모래시계만이 남아 있는 듯하다.

모래 알갱이는 하루하루 희미하게 반짝이며 부질없이 줄어들고 있다.


그것은 내 어머니에게 닥쳐오는 가장 커다란 사건이면서 망연히 바라볼 수밖에 없는 나에게도 아직 답을 짐작도 할 수 없는 물음이다.    

 




죽음.

죽는다는 것은 무엇인가.

나는 가끔 철부지 어린아이처럼 이런 생각을 한다,

나만 죽는 게 아니라 다행이야!     

...그렇다고 사실, 죽음이 두렵지 않은 것은 아니다.     

 

이러한 걱정과 두려움은 질병으로 고통받으며 자신이 죽을 시간을 거의 확실하게 알게 되는 이들에게는 더욱 크게 다가올 것이다.    

 


죽음이 물었다


이 책은 브라질의 완화의료전문가 아나 클라우디아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완성된 책이다.

브라질 완화의료 최고 권위자인 저자는 20여 년째 다양한 활동을 통해 사람들에게 죽음을 올바르게 인식하고 받아들이도록 하는 노력을 해오고 있다.


한국 호스피스/완화의료학회의 정의에 의하면,

호스피스 완화의료란, 치료가 어려운 말기 질환을 가진 환자와 가족을 대상으로 통증 및 신체적, 심리적, 사회적, 영적 고통을 완화하여 삶의 질을 향상시키는 전문적인 의료 서비스』이다.

이 책의 저자인 아나 클라우디아 역시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다.


완화의료는...
병이 진행되어 신체적 고통이 극심해지고
의학적으로 더 이상 손을 쓸 수 없게 되었을 때
가장 큰 가치와 필요를 지닌다.
........

더 이상 병을 치료할 방법은 없을지라도,
그 환자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남아 있다.
-P.69
    

즉, 환자를 치료할 의학적 방법이 아닌 또 다른 돌봄 활동(완화의료/호스피스)은 분명히 가능하다는 의미이다.


특히 저자는 완화의료의 참의미에 대해, 죽음에 직면한 사람들의 고통을 줄여주고 남은 시간 동안 자신의 삶을 정리할 수 있는 여지를 주는 것이며,  ‘안락사나 조력자살과 같은 죽음의 촉진은 결코 아니다강조한다.


사람들은 죽음에 가까워지면 자신의 유한성에 대해 고통을 느끼면서 자신의 삶을 돌아보기 시작한다. 진통제등의 도움으로 신체적 고통이 완화되면 그 다음에는 자연스레 감정적이고 정신적인 고통의 표현이 나타나게 된다. 그리고 자신이 죽어가는지도 모른 채 열심히 살아오느라 놓치고 ‘마무리되지 않은 일-P.75’에 생각이 미치게 된다.


누구나 한 번은 맞이하는 죽음 앞에서, 사랑하는 이들과의 이별을 받아들여야만 하는 환자들에게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고 마무리할 시간을 갖는 것은 매우 중요한 과정이다. 그 과정에서 완화의료는 커다란 의미와 무게를 갖는다.


죽음에는 연습이 없다.

모두가 단 한 번의 죽음을 맞이하지만,
결과적으로 삶 전체와 일맥상통하는 아름답고
감정적인 장면이 연출된다.
사람들은 결국 살아온 대로 죽는다.
 
의미 있는 삶을 살지 못했다면
의미 있는 죽음을 맞이할 기회를 가질 가망도 없다.
_P.78


누구든 좋은 삶이 있어야 좋은 죽음도 맞이할 수 있다는 뜻이다.


우리는 날마다 더욱 풍요롭고 안락한 삶을 한 성취를 위해 노력한다.

그러나 그것들에 다가갈수록 결국 우리는 진실에 직면한다.

[가질수록 더욱 갈망하게 되는 현재적 욕망에는 끝이 없음에도 결국은 유한하다]는 사실이다.

그 모든 영원할 것 같은 성취물들은 내가 죽는 순간 나와 함께 나에게서 빛을 잃고 먼지처럼 소멸된다.

다시 말해, 나라는 존재가 현재할 때만 그 모든 물질적-외적 행복도 의미가 있을 뿐, 내가 세상에서 사라질 때는 그 역시 무의미해진다.


하루하루, 해가 지는지 강가에 꽃이 피었는지 눈이 내리는 지도 알아차리지 못할 만큼 정신없이 그 모든 성취를 위해 노력하는 것만으로도 그 자신은 만족스러울지 모른다. 하지만 그러는 동안, 그 자신의 성취를 누리고 돌아볼 시간은 줄어들고 죽음의 시간은 에누리 없이 다가온다는 사실은 짐작도 하지 못한다.

죽음 뒤에 남겨질 덧없는 풍요를 위해 스스로를 소멸시켜가면서까지 욕망의 사다리를 오르지만 그럼에도 그 끝에는 죽음이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을 잊고 산다.

아무리 노력해도 죽는 순간까지도 갈망하는 것들을 원하는 만큼 얻을 수는 없다, 인간의 욕심에는 한계가 없기 때문이다.


‘이제 됐어. 더 이상은 필요 없어.’라고 말할 사람이 있을까.


결과적으로 우리는 가장 불확실한 것들을 향해서만 그토록 나아갈 뿐 죽음에 대한 준비는 하지 않는다.

죽지 않을 것처럼 살면서 죽음에 대해 말하거나 생각하기를 피한다.     

평생 일에만 매여 산 것도 죽음을 앞둔 상황에서는 후회로 남을 수 있다.


“이럴 줄 알았더라면 그때 그렇게 하지 않았을 텐데...”


이제 와서 돌아보면 과거의 수많은 선택의 순간에 대한 후회와 미련만이 가득할 것이다. 그러나, 누구나 그렇듯 그때의 결정은 그 당시에는 최선이 아니었던가.


죽음을 앞둔 상황에서 후회하지 않는 삶을 살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

.

.

책장을 넘기며 나 역시 스스로를 돌아보게 되었다.

무슨 일이든 최선을 다하려는 노력은 삶을(그리고 그 마지막을) 향상시킨다.
오늘 당신은 다른 길을 택할 수도 있었는데 그러지 못했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매 순간 당신은 최선을 다했다._P.221
우리는 인생을 살면서 자기 자신으로 사는 법을 배울 기회를 갖지 못한다. 어릴 적에는 자신의 감정과 생각을 솔직하게 표현하지만 가족이나 학교, 사회가 우리의 정체성을 부끄러워하도록 만드는 경우가 많다. 그리하여 다른 사람들의 인식을 통해 세상에서 자신을 표현하는 법을 배우며 주위 사람들의 기대와 스스로 만들어내는 기대에 맞추어 살게 된다. 주위 세상이 기대하는 모습을 보여주려 애쓰게 된다.._P.255


저자는 마치 나의 생각을 읽기라도 하는 듯 이렇게 이야기하고 있다.


“내 삶의 주인으로 살 것,
자기 자신을 잃지 않고 나답게 사는 것이 가장 좋은 삶.”이라고.


나답게 살기 위해, 죽음 앞에서 담담해지기 위해 사전 연명의료 의향서(P.240~)를 미리 준비하는 것도 의미 있는 일일 것이다. 명백한 결말이 예견되는 상황에서조차 불필요한 의료행위를 지속하는 것을 원치 않기에, 인간은 존엄성과 품위를 유지하며 죽음을 맞이할 자유가 있다고 생각하기에, 숙고의 시간을 거쳐 나 역시 몇년 전 순수하게 자발적 의지로 사전 연명의료 의향서를 작성/등록했다.



사전 연명의료 의향서, 시스템 등록 완료 알림



사전 연명의료 의향서는 19세 이상의 사람이 향후 임종과정에 있는 환자가 되었을 때를 대비하여 자신의 연명의료 중단 등 결정이나 호스피스 이용에 관한 의사를 직접 문서로 작성한 것이다.


이 책을 읽으며, 죽음 앞에 마주 앉게 될 때 나는 어떤 심정일 지 수없이 짐작해보게 되었다.... 나 역시 보통의 당신들처럼 지나간 수많은 시간들에 대한 후회와 아쉬움과 미처 해결되지 못한 채 세월 속으로 던져버린 숙제들을 떠올리며 고통스러워할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나는 나 자신에게조차 용납할 수 없는 무책임한 생을 살았다고 괴로워할지도 모르겠다. 다시 살 수만 있다면 지난 그 시절의 과오나 오류따위 얼마든지 되풀이하지 않겠다고 후회의 눈물을 흘릴지도 모르겠다.

.

.

.


진정한 죽음과 삶의 의미에 대해 저자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우리는 살아있는 모든 날들에 죽는다. 하지만 그런 인식이 결여된 모든 날에는 더 빨리 죽는다. 우리는 죽음의 날에 앞서 버림받았을 때 죽는다. 죽음 후 잊혀졌을 때 죽는다._P.92   
 
우리 모두는 언젠가는 죽는다. 따라서 살아있는 동안에는 삶이 주는 기회를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우리는 미래에 대한 꿈을 꾸고 그 꿈을 향해 나아간다._P.94


그렇기에 우리 모두는 주어진 하루하루에 더욱더 최선을 다하려 노력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가끔은 여전히 절망과 좌절을 경험하겠지만, 늘 그래왔듯 앞으로도 나역시 무슨 일을 하며 사느냐보다는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해 고민하려 노력할 것이다.


또 한 살, 내 곁의 다정한 죽음에 한 걸음 더 가까워지더라도, 언제든 그가 내 앞에 마주 앉더라도 담담하게 미소 지으며 손 내밀 수 있기를 기대한다.

그때, 완화의료의 혜택을 받으며 신체적 정신적 고통이 사라진 지점에서 나는 무엇을 위해 살았는지, 내가 걸어온 길을 고즈넉이 돌아볼 수 있기를 희망한다.


인생을 살면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보다 더 중요한 건
‘어떻게 살았는지’와 ‘무엇을 위해 살았는지’이다.
 
삶의 끝에 이른 사람들을 돌보면서 얻은
가장 큰 교훈은
‘왜’가 아니라 ‘무엇을 위해’에 답해야 한다는 것이다.

당신은 무엇을 위해 사는가.
-P.252    
          






_책을 덮으며, 어느날 문득 출간준비중인 이 책을 누구보다 먼저 읽어볼 기회를 제공한 도서출판 세계사측에 감사의 뜻을 전한다. 또 한해가 저무는 시점에서 이 책은 또 1년의 삶을 돌아보고 정리할 수 있는 의미있는 시간을 제공해주었음에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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