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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mehow Feb 12. 2023

성급한 선택의 결말

_인간이 배제된 열악한 작업환경

늘 그래왔듯 이번에도 마찬가지다.

당장은 무모해보일지라도, 스스로 선택한 길에서 나는 무조건 앞으로 나아가야만 한다.

똘똘한 새친구를 얻은 덕분에 꿀같은 자리도 찾았으니 주저없이 뛰어든다.

색조화장품 화장솔 생산업체 Y 에 첫출근을 했다. 처음 가보는 길이라 옆으로 빠져야할 구간에서 헤매다 멀리 돌아오느라 조금 지체되긴 했으나 흔하고 조금 낡은듯한 조립식공장건물 앞 주차장에는 뜻밖에도 80대 노신사_사장님이 마중이라도 하듯 나와 서있었다.

그리고 처음으로 내가 일할 곳으로 한 발을 디밀었다.


뭐, 어영부영 만들어진 갱의실도, 널찍하고 편안한 방으로 만들어진 휴게실도 그리 불만은 없었다. 면접을 보았던 사장실이 있는 구역과 실제 작업이 이루어지는 공장구역이 벽하나 사이로 분리되어 있으나 아침이라 썰렁한 것은 문제도 아니었다.

식품회사처럼 위생복으로 갈아입지 않아도 되지만 모자와 마스크와 눈보호가 목적인 보안경을 착용하도록 하는 것은 처음이라 어색했다.

그리고 친구를 따라 함께 일할 곳으로 다른 문을 통과해 들어갔다.


오마이갓!


뜻밖에도 냄새. 이 끔찍한 냄새는 무엇인가. 다름 아닌 강력 본드냄새!

냄새에 특히 민감한 나에게 이 당황스런 본드냄새는 무슨 뜻인가.


사실 친구가 하루이틀 먼저 일을 시작했고 "약간 무슨 냄새가 나는데 그리 심하지 않고 하얀 가루같은게 조금 날리는데 그것도 신경쓰일정도는 아니야..."라고 말을 했었다. 나는 좀더자세히 설명해보라고 작업환경에 대해 사전정보를 얻기를 원했으나 그친구는 그이상의 충분한 설명을 하지 못했었다.


그러나 역시, 내가 직면한 현실은 실망스러웠으나 이미 물은 엎질러졌고 나는 허탈한 심정을 감추고 그저 뒤따라 들어갔다. 작은 방처럼 나뉘어진 공간으로 들어서자 더욱 충격적인 현실을 마주하게 되었다.

방들은 여러개가 있었고 각각의 공간에서는  서너사람이 하루종일 공동작업을 한다. 그 '작업실'은, 양쪽으로 놓인 작업용테이블 사이로 사람들이 비좁게 지나다녀야할 만큼 작은 공간이었고 그 안쪽으로 새로운 공간이 '건조실'이라는 명목으로 나타났다.

앞서 말했던 황태덕장을 연상하면 되는 건조실은, 네 사람이 머무는 공간보다는 조금더 넓고 철제 건조대만 사방으로 아래부터 키보다 높은 위치까지 채워졌으며 작업실과는 문으로 연결되어 있었다.

그 작은 작업실은 이미 본드냄새로 출렁거렸다.

한쪽 테이블에서 한사람이  십여 개씩의 스틱이 나란히 가로로 붙어있는 플라스틱본체를  액체본드가 찰랑이도록 채워진 사각용기에 담근다. 본드가 스틱의 일정 부위에 묻으면 그것을 살짝 흔들어 남은 액체를 털어낸 뒤 다음 사람에게 건네다. 그 사람은 그것을 어떤 긴 막대기 모양의 기구에 꽂아, 자신의 작업대 위에 설치된 빨갛고 깊숙한 고무통을 엎어놓은 형태의 화덕모양의 공간에 집어넣는다. 그리고 하얀 가루가 가득 차있는 그 공간 속에서 막대에 꽂은 스틱들을 흔들어 대다가 꺼내면, 스틱은 어느새 여성들이 눈두덩이에 갖가지 색조를 덧칠할 때 쓰는 아이섀도 팁브러시의 형태로 변신해 있다. 그리고 정체불명의 무중력 성질을 띠는 것처럼 보이는 하얗고 고운 가루들이 날린다.


'아이섀도 팁브러시'라는 이름의 바로 이런 것.


내가 참여했던 그 팁브러시 작업의 종류와는 조금 다른듯 같은 듯 가물가물하지만 사진속 딱 저 형태라고 하겠다.

나는 그것을 받아들고 옆방의 황태덕장으로 달려가 가장 멀고 깊은 곳부터 조심스레 걸쳐 널어놓는다. 그 방에 아이섀도 팁브러시들이 가득 차도록 널어놓으면 하루의 일과가 끝이 난다. 그때부터 그 방은 진짜 건조실이 되는데 다음날 아침까지 몇 도인지 모르는 온도까지 일정하게 설정하여, 이를테면 본드에 묻어있는 하얀가루들이 단단히 엉겨붙어 우리가 흔히 아는 저 모양으로 굳어지도록 구워주는 모양이다.


그러니까 일은 한없이 쉬웠다.
시끄럽지도 않고 무거운것을 들어 옮기거나 고단하지도 않았다.
그러나 나는 단 한시도 그곳에 머물고 싶지 않았다.
끔찍하게 싫어하는 냄새와 먼지처럼 온사방에 날리는 가루들...
당장 뛰쳐나가고 싶었으나
내가 선택했던 일이기에, 그러지는 못하고,
참 미안하지만
간신히 딱 하루 버티었다.

작업 환경에 대한 편견이 강한 나는 그곳에 대해 끔찍한 기억을 갖게되었다.

작업장에 충만한 본드냄새, 그것은 저 스틱에 스펀지가루를 묻히기 위해 사용되는 만큼 어쩔 수 없는 것이다. 또한 하얗게 날리는 플라스틱가루는, 말하자면 플라스틱을 먼지만큼 아니 그보다더 더 가벼울만큼 미세한 크기로 잘라 본드 묻힌 스틱에 달라붙도록 한 것이다. 입자가 고울수록 뭉쳐졌을때도 부드러울 것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것들이 스틱에 붙은 상태는 일시적이어서 들고 이동하고 황태덕장에 널어놓은 상태에서도 계속 날린다.

그러므로 하룻동안 소성과정을 거쳐야 완전하게 달라붙고 정착되어서 사진과 같은 형태를 갖게 될뿐더러 손으로 만져도 부서지거나 허물어지지 않게 되는 것이다.


그토록 열악한 환경때문에 마스크도 3M방진마스크를 주고 플라스틱 가루가 눈에 들어가지 않도록 보안경을 쓰고 목워머까지 가능하면 두르도록 했던 것이다. 잘 보이지 않아도 플라스틱가루는 그 작업공간에 가득 날리고 있을 것이었다. 그보다 당황스럽고 끝내 납득할 수 없었던 것은 본드냄새였다. 나는 그저 첫날이라 보조역할만 했으나 스틱에 액체본드를 묻히는 작업을하던 베트남에서 온 젊은 여직원은 자기작업대 코 앞에 본드 그릇을 놓고 하루종일 그 작업을 해대고 있었다. 그 위쪽으로는 작은 환풍기가 있어서 열심히 본드냄새를 빼내고 있었으나 당연히 역부족이었다.

그 모든 작업환경을 파악하고 나자 나는 너무나 당황스러웠다.

어떻게 이런 환경이 가능한가, 아직도.

내가 볼때는 작업자를 위한 환경개선이 충분히 가능할 듯한데, 경영자는 그런 쪽으로는 전혀 투자와 개선의 의지가 없어보였다.

그 대신 너희들이 고생하는거 아니까 그냥 돈으로 더줄게.였다.

나는 그 놀랍도록 좋은 일자리를 알려주고, 그 작업환경에의 회의보다는 단지 일반 시급보다 높다는 사실만으로 그 일을 하겠다고 나선 친구 A가 진실로 존경스러웠다.


면접날 딱 한가지 내가 빼먹은게 있다면, 내가 일하게 될 공간을 미리 둘러보지 못한 것뿐이다. 멋진 노신사의 친절한 근무조건 제시에 눈과 귀가 멀어, "친구가 먼저 보고 갔으니, 미리 보지 않아도 되겠지요?"라는 허를 찌르는 한마디에 나는 그만 방심하고 말았다.

"아, 그럼요...? 그럼요....(어차피 일할건데, 안봐도 되겠지요....)"

얼덜결에, 돈도 그렇게 많이 준다는데 죄송스럽게 뭘 또 들여다보게 해달라고 하냐는 자기합리화에 매몰되어, 나는 적어도 한 번쯤 앞으로 일할 곳에 대해 생각해볼 기회를 내팽개치고 말았다. 그로써 나는 또한번 어리석은 선택의 오점을 남기고 말았다.

그제서야 새삼 깨달았다.

돈이 전부가 아니다.

내가 볼 때, 그곳은 얼마든지 작업장 환경개선이 가능했다. 액체본드를 칠해야 하는 작업대 위에도 가능한한 작업자가 냄새를 덜 맡도록 환기시설과 분리장치를 설치할 수 있고 플라스틱가루를 묻히는 빨간고무통같은 어설픈 작업대도 충분히 새로운 소재와 설비로 교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나 80대의 노회한 사장은 그런 것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다.

심지어 액체본드 작업대 위에 콧구멍만한 환풍기도 최근에야 설치되었다고 하니, 그전에는 그 끔찍한 본드냄새를 온종일 그 밀폐된 방안에서 작업자들이 들이마시며 작업을 했을 것이 아닌가...

사장은 설비투자대신 인건비에 선심을 씀으로써 마치 근로자들을 매우 위하는 것처럼 현혹하고 있었으나 내가 볼때는 결코 아니다.

오히려 그 저의가 너무나 가증스럽게 느껴졌다.



그로부터 첫날이자 마지막이 된 그날, 시간이 날 때마다 나는 워크넷을 뒤지며 다른, 좀더 인간적인 일자리를 찾기 시작했다.

그때 친구A와 나의 일자리 선택의 기준이 다르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그녀는 일단 급여가 많은 곳을 선호했다. 나도 물론 돈을 많이 준다면 좋겠지만, 내가 그동안 파악한 바에 의하면 일이 힘들고 어려울 수록 급여가 십원이라도 높았다. 그러니까 이유없이 돈을 더주는 곳은 없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나는 이미 높은 급여를 찾지 않았다. 다만, 내 체력으로 오래 할 수 있도록 덜 힘들고 덜 고된 일, 그리고 그냥 최저시급이면 된다. 생산직에서 어떤 전문적인 능력이 있는 것도 아닌데 그이상은 아무리 바라봤자, 안 되는 일임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그친구는 십원이라도 더 받을 수 있는 곳을 찾아다니는 듯했다. 그러다 보니 그전까지 해온일도 내가 보기엔 험하고 몹시 고된일이었다.

물론 그자신이 그것을 어느정도 감당할 정도의 체력도 있는것 같기는 했다.

그후로도 그녀와 나는 함께 일할 수있는 곳을 찾아보았으나  지향점이 다르다보니 쉽지 않았다.


그날 퇴근시간전에 나는 대형 베이커리공장에 지원했고, 다음주에 면접을 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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