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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mehow Feb 08. 2023

진격進擊! 언제나 처음인 것처럼

-끝날 때까지는 끝난 게 아니니까

퇴사.

비타민회사에 들어간지 딱 6개월만이었다.


내가 아직 무모하고 철이 없기 때문일까, 주제도 모르고 일말의 불만과 괴로움과 그깟 고달픔쯤 참지 못하고 정처없이 또 어떤 일자리를 찾아나서다니.

왜 두려움이 없을까. 왜 걱정이 되지 않을까.

나역시 늦어도 한참 늦게 생산직에 뛰어든, 햇수로 따지니 이제 5년차 풋내기근로자가 뭐 그리 가진게 많아서 힘들게 차지한 그 자리조차 묵묵히 버티지 못하고 수틀리면 미련없이 툭-툭 떨치고 나서는가 말이다.

근데,


끝날 때까지는 끝난게 아니기때문이다.


맨처음 생산직에 뛰어들었을 때는 제발 취업만 되면 좋겠다고 간절히 바랐다. 한번에 덜컥 취업되기도, 일 못한다고 잘리기도 해봤고 다시 집요한 노력으로 이력서를 남발한 끝에 계약직-정규직의 경험도 해보며 우여곡절 끝에 어느새 5년차가 되었다.

그러는 동안 똑같은 최저시급을 받으면서도 어떤 사람은 천근만근 힘겨운 일을 하고 먼지나 본드냄새 따위가 가득한 곳에서도 마지못해 견디고 다. 혹은 뜻밖에도 상대적으로 신체적 부담이 덜한 일을 할 수 있는 곳도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러니까, 취업이 복불복도 아닌데, 아무리 내가 가진게 없다한들 무조건 어떤 일이든 가리지않고  돈이나 벌자고 목을 는 것도 능사는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자기가 일할 곳이 어떤 노동을 하는 곳인지 정도는 알고 가능하다면 좀더 인간적이고 위생적이고 덜 힘든직종을 찾아헤맬 권리가 있음을 알아차렸다.

그래서 나는 점점 체력의 한계조차 깨닫게 되던 바로 그 시점에 몇가지 단서를 근거로 또 한번의 자발적 퇴사를 결심했다. 그리고 조금더 나에게 맞는, 내가 지금보다 더 잘 할 수 있는 일을 찾아나서기로 한 것이다. 두려움없이. 아니 두려움조차 집어삼킬 무모한 도전정신으로.


고로, 진격進擊! 나의 생은 언제나 처음인 것처럼!


비타민회사에 회의를 느낄 즈음, 입사 직전에 며칠 알바로 일했던 집근처 S&S 화장품회사에서 만났던 동료와연락이 닿았다. 며칠 얼굴보고 얘기 한두 마디 나눈게 전부였으나 나는 그녀의 연락처를 저장해두고 있었고 당시의 심리적 갈등상황에서 누군가와 이야기할 사람이 필요했다. 그때 나는 그녀 A를 떠올리고 연락했다. 그로부터 둘은 친구가 되었다. 그즈음 그녀역시 취업중이던 곳에서 수습기간 종료 며칠을 앞두고 느닷없는 해고를 당했다. 사유가 터무니없을 만큼 황당한 일이었으나, 그렇게 망연자실하던 끝에 그녀가 놀랍도록 좋은 일자리를 찾아낸 것이다. 나도 퇴사 다음날부터 그곳으로 출근하기로 했다.



퇴사직전 하루 오전 몇 시간 지각계를 내고 그 회사_그 놀랍도록 좋은 일자리 면접을 보러 갔었다.

집에서 20분정도 차로 달려가면 되는 그곳은 색조화장품에 쓰이는 화장솔을 만드는 공장이었다.

나보다 며칠 먼저 면접본 A가 알려준 근무/급여조건은 놀라웠다.

당시가 2022년 11월말 즈음이었으니, 시급 9160원을 월급으로 따지면 1,914,440원 정도인데 직원들을 사랑하시는 통큰 사장님은 무려 20만원을 더 얹어주는 데다, 중식비로 16만원인가를 더 준다는 것이다. 해가 바뀌면 거기다 다시 급여 20만원을 인상해줄 계획이란다. 그러면서도 점심은 따로 그곳에서 해먹거나 아니면 빵우유를 제공해 준다는 놀라운 제안이었다.

물론 하는 일도 그리 어렵거나 힘들지도 않다고 했다.

휴식시간이 한번에 10분이 아닌 30분씩인데다, 가볍디 가벼운 화장솔에 약품을 묻혀 어떤 가루를 묻혀주면 그것을 건조시키는 방에 들고 가서, 한겨울 바람에 명태말리는 태덕장의 그것처럼 줄줄이 걸어 놓기만 하면 된다는 것이다!

아, 그럼 그렇지. 세상에는 틀림없이 그렇게 쉬운 일도 있게 마련이지.

그 기쁜 소식을 전하며 A는 한달에 얼마를 받을 수 있는지, 벌써부터 입금되기라도 한 것처럼 설레어했다. 나또한, 비타민회사를 때려치우기로 한 이상 그보다 조금이라도 나은 곳을 찾아야 했기에 옳다구나 싶었다. 그녀 다음으로 달려가 면접을 보고 퇴사 다음날부터 출근하기로 결정했다. 너무나 쉽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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