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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mehow Feb 07. 2023

변명辨明, 오로지 나를 위한

_끝날 때까지는 끝난 게 아니다

국민연금 체납사실을 알게된 신입들이 들썩이자, 전무님이 나섰다.

그는, 직원들과의 소통과 화합을 위해 애쓰셨다.

그분이 이번에도 신입들의 우려를 이해하신다며 말씀하셨다.


"저도 알고 있는 일이고 당연히 걱정되실 겁니다. 회사가 조금 어려워서 그런건데, 곧 한꺼번에 해결해드릴 겁니다.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그 며칠후, 부장을 통해 이런 소식이 전해졌다.

"이번에 국민연금을 해결하기 위해 시중은행에서 대출을 받으려고 한다. 그런데, 은행측에서 직원들에게 퇴직연금계좌를 하나씩 개설해주길 요청한다. 그렇게 하면 대출이자를 조금이나마 할인해 준다는 것이다. 따라서, 지난 여름휴가때 휴가비를 주지 못한 것도 있고 해서, 이번에 회사에서 전직원들에게 10만원씩을 지원해줄테니 퇴직연금계좌를 개설하라고 한다....그 계좌는 본인들이 계속 유지해도 되고 굳이 해지하고 싶다면 반드시 해를 넘긴 뒤에 해지하는 것만 지켜주면 된다..."


무슨 뜻인지 이해는 갔다.

당장 돈이 없으니 대출을 받아서 해결해주겠다는 것이다. 이런저런 조건을 붙이긴 했지만 들어보니 우리에게 손해될 일은 없어 보였다.

그리고 얼마후 약속처럼 실제로 6.7.8월분 국민연금이 납입되었다. 그때가 9월말에서 10월초 즈음이었으니 입사한지 4~5개월 만이었다.


그래서 그뒤로는 쭉-연체없이 따박따박 직원들의 국민연금을 제때 납입하고 있을까.


결론은 당연히

 "아니다"


그런 일로 생전처음 국민연금 가입내역을 수시로 확인하기 시작했다. 그후로도 종종 열람하는 버릇이 생겼는데, 11/30일자로 사표내고 12/1일부로 퇴사한지 3개월이 돼가는 오늘, 현재까지도 나의 국민연금은 여전히 9.10.11월분 연체상태이다.

대체로, 3개월 연체통지서로 시끄러워지면 한번씩 납부하고는 그후로 다시 같은 상황이 이어지는 것이다.


나의 국민연금 연체상황_20230204조회본


물론...회사를 믿고 묵묵히 일하면 언젠가는 다 해결될까.

되겠지, 될 수도 있겠지...?

그런데 그 사실보다는 그렇게 직원들의 국민연금따위 좀 밀리면 어떠냐는 식의 사고방식을 가진 경영자의 태도가 근본적인 문제라고 생각되었다.  놀랍게도 국민연금 3개월 정도는 상습연체를 해도 고용노동부나 관계기관에서 어떤 특별한 제재를 가하지 않는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그러다보니 그런 식으로 밀고 나가는 것에 아무런 죄의식이나 부담이 없는 것이다. 앞으로 사업이 잘돼 금고에 돈을 쌓아놓는 지경에 이른다 한들, 과연 사업주는 충분히 학습된 국민연금 체납의 유혹을 이겨낼 수 있을까싶은 생각이 들었다.


지난해 말 기준 우리나라 전체 국민연금 체납사업장은 51만 8000곳, 체납액은 2조 2573억원에 달한다. 현재 1인 이상 사업장은 의무적으로 국민연금에 가입해야 한다.
사업주가 노동자의 급여에서 국민연금 보험료를 원천징수해 국민연금공단에 납부하는데, 특히 체납시에는 노동자에게 피해가 발생한다.
건강보험의 경우 체납시 사용자만 진료가 제한되고, 산재·고용보험은 체납하더라도 노동자는 불이익이 없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국민연금을 고의적으로 납부하지 않은 사업주에 대해 형사고발을 하더라도 법원은 '경제적 어려움'을 체납의 '정당한 사유'(국민연금법 제128조)로 인정해 처벌 강도가 낮은 실정이다.

지난해 국민연금 체납 71건(43억 1000만원)이 고발됐으나 징수액은 3억 5000만원에 그친 가운데 13건은 불기소처분, 11건은 조정을 거쳐 처벌을 받지 않았다.
허종식 의원은 "고용주가 보험료를 체납할 경우 노동자들은 수급자격을 확보하지 못하며 폐업시에는 수급권 확보가 불가능해진다"며 "장기체납 사업장에 대한 특별관리체계를 구축해 노동자들의 피해를 방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 2020년10월 아시아경제 박혜숙 기자hsp0664@asiae.co.kr기사 일부 인용


나는, 그후로 9.10월분 국민연금 연체기록을 다시 확인하고 싹 해결해준다는 약속이 앞으로는 그런 일이 없으리라는 의미는 아니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결국, 비타민회사에 대한 신뢰가 무너지면서 그동안 보이지 않고 굳이 느끼지 않았던 불만사항들이 하나둘 체감되기 시작했다....어느새 몸과 마음이 한없이 지쳐가면서 고달파지기 시작했다.



2.마음이 떠나자 하루하루가 지옥처럼 느껴졌다. 매일매일 그곳을 떠나야할 이유를 찾았다.


두번째 단서는, 라인 혹은 팀워크.


비타민공장의 생산부는 크게 생산과 포장파트로 나뉜다. 나는 분명히 포장부에 들어갔으나 막상 일을 시작하자 필러라고 하는 내포장단계의 일에도 적응해야했다.


국민연금체납사건으로 마음이 떠나기 시작하자, 필러실과 포장실을 오가는 순환근무도 날이 갈수록 괴롭고 힘들었다. 아무리 시간이 흘러도 적응이 되기는 커녕 고달프다는 생각만 커져갔다.

순환근무, 포장실과 필러실 순번을 정해 돌아가며 적응하기.

포장실에서는 여럿이 손발을 맞춰 여러가지 형태의 포장을 한다. 라인을 타는 것이다. 컨베이어벨트 양쪽에 짝을 이룬 두세 명이 서서 봉지에 담겨나오는 제품들을 박스에 담고 팔렛트 위에 쌓아 올리거나, 커다랗고 둥근 투명통에 비타민이 500정 씩 담겨나오면 재빨리 뚜껑을 닫고 스티커를 붙여 다음 사람에게 보내는 것이다.

나는 그전까지 라인을 타는 일 자체를 거의 해보지 않아서 그 작업에 투입될 때면 어렵고 늘 당황스러운 심정이 되곤 했다.

그 두려운 500정 포장 라인작업에서도 뚜껑닫기에 투입된 그날, 나는 그때까지 느껴보지 못했던 좌절감에 사로잡혀 쩔쩔매었다.

결론적으로, 그날 나는 망했다.

6개월이나 지났으니, 적응했어야 한다. 그러나 나는 그러지 못했다...


나는 변명하고 싶다.

지난 6개월동안 나는 이 작업을 불과 서너번 정도 경험했었다.

다른 일에서는 어느 정도 익숙해졌고 사람들과도 적응했다고 생각했는데, 그야말로 뼈를 묻을 때까지 묵묵히 일하려고 마지막 일터로 삼으려고 했은데, 500정 라인작업에서 걸려 넘어지자 그게 아닐 수도 있다는 확신이 들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나는 라인타는 일은 감당이 어렵다는 생각이 들었다. 컨베이어벨트 앞에서 내 앞으로 지나가는 제품들을 놓치지 않고 붙잡아 내 몫의 작업을 해내는 일은 극도의 긴장감을 불러일으켰다. 오래 하다보면 익숙해지겠지만, 이 나이에 익숙해질 때까지 얼마나 더 허둥거려야 한단 말인가....


어느새 나의 마음은 하루하루 주차장 마당 앞까지 떠나가고 있었다.

부장과 과장, 팀장 몇...그들은 팀웍이 좋았다. 수년째 손발을 맞춰온 그들은 일도 척척이고 사적인 일에서도 많은 부분 함께하는 듯 했다. 하루 9시간을 하루이틀도 아닌 나날을 함께 하다보니 가족만큼 어느 면에서는 가족보다도 더 많은 시간과 정을 나누고 있는 것이다.

나는 나와 나이대가 비슷한 그들과 잘 섞이고 싶었으나 왠지 물과 기름처럼 겉도는 느낌이 들었다. 그렇다고 나보다 아래인 40대의 몇몇 동료들은 또 그들대로 잘 어울려서 내가 섞여들기 불편하게 느껴졌다. 그러다보니 얼덜결에 나스스로 왕따가 된건가 싶은 생각이 문득문득 들기도 했다.


팀워크teamwork: 팀이 협동하여 행하는 동작. 또는 그들 상호 간의 연대.


라인(컨베이어벨트)의 속도에 맞춰 일사불란하게 작업이 이어질 때 팀워크는 생산성 향상이 가능하다. 그러니까 라인작업은 곧 환상적인 팀워크를 전제로 하는 것이다.

반면, 팀원 1-2-   -4가 마무리 척척 제역할을 해내어도 중간에 나같은 찌질이(3) 하나가 그 속도와 리듬에 몸을 던지지 못하고 허우적대는 순간, 모든 것이 엉망진창이 되어 버린다는 사실을 온몸으로 여실히 보여주며 실감했다. 나는 죄책감에 사로잡혔고 무능한 스스로에 대해 절망했다. 그깟 라인작업 하나에 적응을 못해서.

그날의 낭패감은 끝내 나를 깊은 고민의 늪에 빠뜨렸다. 그리고,


결론적으로 사표를 던지기로 마음먹었다.


한살이라도 더 먹기 전에 더 잘 맞는 옷을 찾아야할 것 같았다. 틀림없이 어딘가, 내가 잘 할 수 있는 일이 있을 것만 같았다. 맞지 않는 옷을 잘 못 입을 줄도 모른채 남아있는 시간들을 괴로움속에 울면서 다닐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2022년 11월30일을 마지막 근무일자로 통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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