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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mehow Feb 17. 2023

팔뚝을 걷어붙인 빠띠쉐

_더불어 노동자의 쉴권리는 어디에?

S제과에 출근하던 즈음, 날씨는 제법 추웠던 것으로 기억한다.

첫날 그 이상하게 꼬불꼬불한 길을 타고 공장에 처음 도착했다. 허름하고 잘 열리지도 않는 낡은 조립식건물의 뻑뻑한 출입문을 열고 붉은 녹이 슨 철제계단을 3층까지 올라갔다. 그곳은 이를테면 건물의 옥상처럼 넓었꼬 한쪽에 사무실과 갱의실등이 있는 낡은 조립식건물이 하나 올려져 있는 형국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마당같은 옥상 한쪽, 갱의실을 찾지못하고 헤매었다.

겨우 찾아들어간 그 무방비상태의 방을 본 그날 첫번째로 당황하고 경악했다.


그곳은 갱의실이라기보다 그냥 썰렁한 창고였다. 오래된 형광등은 켰어도 어둑어둑했고 먼지가 가득한 낡고 오래된 철제캐비닛만이 덩그러니 서있기에 갱의실로여길뿐이다. 캐비닛외투를 벗어넣고 작업복으로 지급받은 하늘색티셔츠를 내 옷위에 겹쳐입었다.

난방은 애초부터 안 되는 듯 신발을 벗고 올라서니 바닥은 바깥이나 다름없게 얼어죽을 듯이 차가웠다. 황급히 준비를 마치고 내려갔다. 절로 터져나오는 한숨을 삼키며...


다시 철제계단을 내려와 1층 출입구로 들어서니 화장실이 있고 그 앞을 지나쳐들어가면 생산현장이 있다. 그곳 앞공간을 전실이라고 하는데, 그 공간이 참 지저분했다. 면접보러 와서도 그곳을 지나갔었지만 그때는 몰랐던 사실이다. 화장실도 냄새는 안 나고 심지어 보일러가 돌아가는지 훈훈하기까지 한데 웬지 지저분하고 창고처럼 물건들이 쌓여있고 수돗물도 나오지 않아 세면대를 사용하지 못하게 되어있었다.

일단은 그렇다치고 현장으로 들어갔다.


늦게 간 것도 아닌데, 사장과 7년째 일한다는 반장과 1년되었다는 베트남에서 온 30대 여자애,그리고 알바 여인이 일하고 있었다. 주로 내가 일하게 될 넓고 큰 공간은 포장실이라고 명명하는게 맞다.

대형 오븐들이 몇 대씩 서있고 작업대와 갖가지 생산도구들과 빵빵하게 뜨거운 전기난로도 두어 대 있어서 춥지는 않았다. 오븐에서 구워져나온 (아래 사진과 같은) 여러 대의 랙에 가득 채워진 바게트빵을 사장이 칼질하여 예쁘게 잘라주면, 나를 비롯하여 베트남 여인과 알바와 반장이 달라붙어 각자의 자리에서 마늘소스를 하루종일 바른다. 그것들을 비닐봉지에 60개씩 넣어 박스포장하면 택배로 나가게 된다.


트레이(가운데사진과 같은 쟁반)마다 빵반죽을 성형하여 올려 채우고제빵랙 채로 오븐에 넣어 굽는다.


일은 너무 쉽다.

가끔 소스를 바르거나 포장을 하기도 한다. 저 제빵랙에 (가운데 사진처럼) 철제 트레이(쟁반)가 가득 채워진 상태로 밀어 움직일 때는 무게때문에 힘들 때가 있으나 바퀴가 달려 있어 어려운 일은 아니다.

내가 주로 일하던 포장실 옆에는 실제 빵반죽과 소스등을 만들어내는 생산실이 있다.


생산실에서는 한명의 빠띠쉐가 출하되는 모든 빵의 반죽을 만들고 마늘빵 소스 등을 배합한다.

S제과에서는 마늘빵이 주종목이지만 다른 종류의 빵이나 케이크시트를 만들기도 한다.


기본적으로 쉽고 단순한 첫 날 첫 두시간 작업 후 휴식시간이 되었다.

최초의 심각성은 그때야 비로소 눈치챘다.


그 공장에는 휴게실이 없다는 것!


이건 또 뭐지??

화장실이 좀 그저 그 런것도 참겠는데, 무슨 생산공장에 휴게실이 아예 없다니....

더구나 쉬는 시간이 되었으나 아무도 쉴 생각을 하지 않았다. 사장도 반장도 계속 쉬지 않고 자신들이 하던 일, 소스를 만들거나 포장을 하거나 바게트 빵 컷팅 작업을 이어갔다.

내가 당황하여 두리번거리자, 베트남여인이 다가와 그냥 아무데서나 앉아서 쉬란다.


나는 어리둥절했다.

왜 휴게실이 없는지, 그럴거면 의자라도 갖다놓던지.

작업자의 휴식의 권리가 그곳에서는 아예 부재했다.

내 눈치를 알아차린 반장이 다음 휴게시간에는 따땃한 전기난로 앞에, 어디 야외로 놀러 가면 바닥에 깔고 앉는 '자리'를 친절하게 펼쳐주며 말했다.

여기 앉아서 편히 쉬세요.

여전히 이해가 안됐다.

이런 곳에서 7년 동안 일해서 반장이 되었구나, 얘야! 고생이 많았구나...


나는, 까탈스럽기로 한가닥하는 나는, 달랑 10분씩의 휴게시간일 망정 근로자의 휴게시간은 완벽하게 보장되어야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므로 적어도 휴게실이라는 이름의 공간은 있어야 하고 자유로이 다리접고 앉아 쉴 의자정도는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그곳에는 아예 휴식의 개념이 존재하지 않았다.


오로지 하루종일 노동만이 중시되는 곳이라니!


사장이나 반장은 계속 일하면서 너희는 쉬어라, 고 말하는 것이다. 쉴 공간이 없는데도.

나는 실망했다. 첫날부터.

낡고 허름한 사무실이나 갱의실 등은 그냥 넘길 수 있으나, 나의 건강한 근로를 위한 권리인 휴게시간이 전혀 확보되지 않는 것, 더구나 사장이나 반장에게는 그게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게 이해할 수가 없었다.


또하나는, 위생에 관한 것이었다. 생산실에서는 대략 30대쯤으로 보이는 머리 빡빡 민 남자애가 빠띠쉐역할을 하고 있었는데, 그 녀석의 행색이 정말 가관이었다.


모두 작업복으로 입는 하늘색 티셔츠를 그 녀석도 입고 있었는데, 틀림없이 처음엔 하늘색이었을 그것이 양쪽 옆구리부분을 시작으로 손때가 시커멓게 묻고 찌들어서 거의 연탄장수의 작업복처럼 보였다. 그 아래 입은 바지도 말할 수 없이 더러웠다. 일하면서 앞치마를 입지 않았으니 손 닦을 데가 옷자락 밖에 없는 탓이었다.

내가 보는 동안에도 일하는 동안 왔다갔다하면서 수시로 손을 배때기부분에 문지르는 것이었다.

그런 무의식적인 행위가 익숙해 문제가 있는줄 전혀 모를 뿐더러 자기 옷이 얼마나 더러운지 모르는 것이었다. 그냥 자연스런 일상의 행동일뿐이었다. 늘 같이 작업하는 사장도 뻔히 보면서도 지적하지 않는걸보면 모두들 위생에 대한 개념자체가 없는 것이다.


그뿐 아니다. 빵에 잼을 바르든, 포장을 하든 작업시에는 장갑을 끼어야 한다.

니트릴 장갑이든 작업용 장갑이든. 나를 비롯한 포장인원들은 당연히 모자와 마스크, 앞치마, 니트릴장갑을 착용하고 작업했다. 특히 빠티쉐처럼 직접적으로 원재료를 다루고 생산해내는 사람은 더더욱 교차감염예방을 위해서 위생장갑을 착용하고 식품을 만져야한다.


그런데, 빠띠쉐는 마스크도 앞치마도 위생모자도 착용하지 않은 것은 물론 언제나 맨손으로 팔을 걷어붙이고 열심히 일했다. 


첫날, 생산실에서 만든 어떤 소스를 커다란 통에 들고 나와서는 내 근처에서 그것을 다시 한번 열심히 찰지게 배합했는데, 그때 그는 겨드랑이 밑까지 더러운 소맷자락을 걷어올리고, 장갑도 끼지 않은 채로, 소스통에 팔뚝까지 맨살을 담근 채, 휘저어댔다.


그러고나서는 만족스럽게 다른 손으로 팔뚝까지 묻어있는 소스를 알뜰하게 훑어내렸다...아....더러워.....


자세히 보지 않아서 모르겠으나 손톱밑에는 때도 있을 것이고...팔뚝에는 체모가 나있을 것이고 묻어있는 소스를 훑어내릴 때 그것들도 더러 휩쓸려 섞여 들어갔을 것만 같아서 토가 나올 것만 같았다.

눈앞에서 그 광경을 지켜보면서도 사장은 아무런 문제의식을 갖지 못하고 있었다.(그 빠띠쉐는  사장에게서 직접 빵제조 기술을 전수받았다고 했는데, 실제로 빠띠쉐자격증이 있는지도 의심스러웠고 그냥 어디서 아는 아이를 데려다 일을 가르쳐주고 월급이나 주는 정도가 아닐까 싶었다.)


식품의 안전을 지키기 위해서는 교차오염이 발생하지 않도록 생산·관리하는 것이 아주 중요하다.
특히 작업자의 복장 및 청결로 인해 교차오염이 쉽게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HACCP에서는 위생관리의 필수인 HACCP에서 요구되는 위생복장 기준

작업자는 위생복, 위생모, 위생화 등을 항시 착용해야 합니다.
또한 개인용 장신구 등을 착용해서는 안 되는데요. 위생복장은 정해져 있지 않으나 작업 형태 및 위치, 제품에 의한 교차오염 또는 오염도 등을 쉽게 확인할 수 있는 색상을 선택해야 하며, 구역별 또는 작업의 형태별로 복장을 구분하여 운영할 수 있습니다.
또한, 이물 혼입의 우려가 높은 단추 형식의 위생복은 지양하며, 벨크로나 지퍼 형태를 권장하고 있습니다.    

+위생복장 착용 방법

위생복장은 기준도 철저하게 수립하여 운영해야 하지만, 착용 방법 역시 아주 중요합니다.
위생복 - 착용 시 소매, 바지 아래를 걷지 않고 완전히 내려야 하며, 상의 지퍼들은 개방하지 않아야 합니다.
위생모 - 머리 전체를 감싸도록 착용해야 하며 머리카락이 나와서는 안 됩니다.
위생화 - 바지 끝자락을 완전히 위생화에 넣어 착용해야 합니다.
앞치마 - 가슴에서 무릎까지 가릴 수 있게 착용한 후 앞치마 뒤편에 있는 끈을 묶어야 합니다.
위생장갑 - 위생복의 손목 소매를 덮어 착용해야 합니다.
마스크 - 코와 입을 완전히 가리도록 착용해야 합니다.          

[출처] 위생관리에 필수! HACCP에서 요구되는 위생복장 기준!|작성자 식품안전지킴이 HACCP


나는 거의 하루가 끝나기전에 어떤 결심을 굳히기 시작했다.

노동자의 권리인 휴식이 보장되지 않는데 대한 부당함과 이토록 비위생적인 생산현장에서 일하는 것은 죄를 짓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다음날인가는 하룻밤사이에 엄청난 폭설이 내려 그 꼬불꼬불한 출근길이 험난하기까지 했다. 나의 결심은 더욱 굳어져갔고 거의 이틀째 점심때, 나는 사무실 직원에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저 그냥 이번주까지만 일하고 그만둬야겠어요...


그녀는 그리 놀라지도 않으며 물었다. 힘이 드느냐, 아니면 다른 이유가 있느냐...

나는 내가 하루이틀사이에 보고경험하고 느낀점을 이야기했다. 크게 실망해서 오래 못 다닐것 같으니 빨리 그만두겠다고.


나에게 호감을 보였던 사장은 나의 돌연한 포기선언에 놀라고 언짢은 눈치였으나 그렇다고 해서 더 오래 시간을 끄는것은 역시 모두에게 좋을게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해서 12월19일부터 23일까지 딱1주일 5일근무 끝에 S제과를 탈출했다.



탈출 직전, 그 와중에도 나는 꼼수를 부렸다.

그 전에 채용되었으나 너무 거리가 멀다는 이유로(그러나 개인적인 일이 있다고 핑계를 댔었다) 포기했던 대형베이커리공장에 문자를 보냈다. 면접관이 비교적 친절했고 기회가 되면 다시 연락해도 된다는 뉘앙스를 남겼었기에, 혹시나하고 찔러보기로 했다.


그에게 개인적인 일이 해결되어 다시 취업을 하려고하는데 지금이라도 혹시 가도 되겠느냐고.

그러자 뜻밖에도 그러라고, 바로 다음주 월요일 26일부터 출근하라고 답이 왔다.


우하하, 다행이다. 이렇게도 되는구나. 땡큐다.

나는 더욱 홀가분하게 S제과에서의 주5일 근무를 끝내고 결별을 알린 뒤 퇴근하기 위해 차에 올랐다.


그런데.............

어디선가 부재중전화가 와있었다.

전화를 걸었다.


그 전화 한 통으로 나의 모든 꼼수는 헝클어지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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