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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mehow Mar 01. 2023

다시, 새로운 시작

_현실과 양심사이

마음속으로는 잠정적으로 이직할 결심을 거의 굳힌 상태에서도 나에게는 딱 한가지 마음에 걸리는 점이 있었다.

그것은 바로 지난 12월말에 확진된 결핵이다.

요즘 세상에 결핵이라니. 그것은 나스스로에게도 주홍글씨와도 같은 낙인처럼 느껴졌다.

가족이나 가까운 사람들이야 인지상정인지라 이해하고 걱정하는 마음을 써주겠지만, 전혀 일면식도 없던 관계에서 누군가 결핵에 걸렸다고 하면, 우선 나부터라도 서로 대면하는 것자체부터 당혹스럽고 찝찝할 것같았기 때문이다.


실은 화장품회사에 채용되었을 때도 마음속으로 근심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그때도 이미 합리적인 핑계를 애써 찾았다.

1년에 한 번씩 하게 되는 직장건강검진을 최소 6월 이후에 받는다면, 그때쯤이면 결핵은 완치될 것이고 그제서야 '결핵을 앓은 흔적'이 밝혀진다 한들 이미 지나간 일이 될터이니 그때까지만 몸사리면 되지 않겠나,고 말이다.

화장품회사에서의 고강도 노동에 질려버린 상태에서, 결국 최선의 대안은 이직뿐이니 안면몰수하고, 뻔뻔하게 과일이든 떡값이든 먹튀하는 꼴이 될지언정 S실리콘으로의 멀리뛰기만이 마지막 선택지인 것이다.


그러나 또다시 마음속 깊은 곳에서 부질없는 양심 한 조각이 슬그머니 꿈틀거렸다.


너 결핵환자, 어쩔래...?


화장품회사에 들어갈때 일단 접어두었던 고민을 다시 부여잡은 이유는, 실리콘업체 면접관이 자기네 회사는 직원들을 무척 아껴서 건강검진을 자주 실시한다며, 1년에 한번씩 하는 정기검진도 출장식 검진차량을 불러서 자체적으로 회사내에서 실시한다,는 소리를 자랑인듯 아닌듯 해댔기 때문이다.

뭣이라?

그것은 내 귀에 마치,

너 아무리 결핵같은 엄청난 전염병을 숨기려고 해도 다 들통나게 돼있다!는 엄포처럼 들려왔던 것이다.


나는 내가 이직하고자 하는 회사 측에 '내 끔찍한 질병을 이야기하지 않아도 되는 합리적인 이유'를 찾으려 애썼다. 진료를 받고 있는 대학병원의 결핵간호사도 직장에 굳이 알리지 않아도 된다고 했으나, 웬지 근심은 사라지지 않았다. 아무리 전염력이 사라진 상태라 해도 결핵균 보균자인 나를 어느 회사에서 달가워할 것인가 말이다....

고민끝에 나는 브런치작가로 활동하시는 노무사께 조언을 부탁했다.

브런치에는 진작에 나 결핵걸렸다고 까발리고, 뭐 부끄러울 것도 감출 것도 없는 상태가 아닌가. 더구나 천방지축으로 여기저기 뻔질나게 면접 보고 다니는 사실도 날마다 써대는 상황인지라...잠시 망설이다가, 기댈 곳은 그뿐이란 생각으로 도움을 청했다.


전문분야에 종사하는 이들에게 전문성과 관련된 조언을 부탁한다는 것은 그들의 시간과 노력대비 적절한 보상을 지불할 의사가 있을 때만 가능함을 잘 알면서도, 나는 일단 뻔뻔하게 고민을 토로했다.


To. OOO노무사께
(생략).....여기서 제 걱정은 그렇게 1년에 한번 하는 건강검진에서 딱 걸릴 경우,
물론 전염성은 없다고 나오더라도 왜 말 안 했냐며... 저를 파렴치범 대하듯 하면 어쩌나...하는 아직 일어나지도 않은 최악의 상황이 자꾸만 머릿속으로 그려져서 저도 모르게 혼자 죄를 품고 들어가는 것같은 느낌에 괴롭다는 사실입니다.
굳이 알리지 않아도 되는 부분이므로 죄책감 느끼지 않아도 된다 해도 심적부담은 완전히 가시지 않아서.<<----이 상황이 가장 심적부담이에요...
의견] 비전염성 결핵환자 취업 제한 관련
받는 사람:  나
수 2023-01-18 오후 12:23
       
.....(부분생략)...........결핵예방법 제13조제4항에 따르면, 회사는 비전염성결핵환자에 대하여 결핵환자라는 이유만으로 취업을 거부할 수 없습니다.(동법 제32조 위반시 1천만원 이하 벌금)
다만, 회사에서 시용기간이 있는 경우에는, 해당 사실이 아닌 다른 이유를 들 수는 있을 것 같은데, 해당 사유가 회사에 밝혀질 가능성이 없는 상황에서, 큰 걱정은 안하셔도 될 것 같습니다.
.......사전에 결핵에 걸렸었다는 사실을 알리지 않은 것에 대해 회사가 알게 되었을 경우, 제재를 할 수 있는지를 더 중요하게 물어보신 것 같은데 맞나요?
직무능력과 무관한 정보이므로, 말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의료기관, 산후조리원, 학교, 어린이집, 아동복지시설, 사회복지시설 등 집단 생활을 하는 곳은결핵검진을 실시하게 되어 있는데, 화장품 회사는 이에 해당하지 않습니다.
채용전 회사가 학력이나 경력 등을 요구했는데 경력을 사칭하여 거짓된 정보를 제공하고 회사에 입사를 하여, 추후 취소된 경우는 있습니다만 작가님 사례가 여기에 해당하지는 않는 것으로 보여요.

위와같은 내용으로 작가님은 친절하게 법적인 근거까지 찾아주며 큰 힘이 되어주셨다.

그로써 나는 든든한 우군을 등에 업은 듯, 심적부담을 어느 정도 털어내고 2023년 1월25일 S실리콘에 첫출근을 시작했다.



지금, 한달이 조금 넘게 근무중인 검사팀은 사전검사와 불량 검수 등의 일을 하는데, 현재 5명의 인원으로는 매일매일이 정신없게 느껴질 만큼 업무량이 많은 편이다.

한마디로 하루종일 분주하다.

하루하루 정신없이 흘러서 어느새 일주일, 한달도 훌쩍 지나가 버렸다.

그 와중에도 심리적으로는 갈등을 겪는 요소들도 생겨나게 마련이다. 한달이 채워지는 동안에도 나는 수없이 '이게 맞는 선택인가' 돌아보고 가늠해 보기를 멈출 수 없었다.

그러나 이곳은 출근한 지 며칠만에 근로계약서를 작성하고 출퇴근 지문등록을 마쳤으며, 작업에 필요한 작업복과 도구들을 갖추어주며 현장에 빠르게 적응하도록 돕는 인상을 받았다.

불량검수라는 작업의 특성상 아직 3개월짜리 수습직원에 불과하지만, 이미 10년씩이나 다녔다는 대리(반장역할)가 처음부터 속도와 생산량면에서 재촉을 하는 바람에 몹시 부담감을 크게 느끼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또한 이곳에서도 나이의 무게를 감추기 힘들었는데, 근속기간 7년째라는 올해 60세의 선임자 다음 연장자가 아무래도 나인 듯하다. 특이하게도 구성원들은 나이를 밝히지 않으면서 내 나이를 듣더니 남몰래 뒤돌아 나이가 많다며 수군거리는 듯한 인상을 받았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나이도 많은데 신참인지라, 일이 아직 서투르고 적응하느라 애쓰는 중이다.

집에서 가깝고 그동안의 생산직 경험에 비추어 노동강도는 중등도 정도. 회사가 어느정도 규모가 있어서인지 체계가 잘 잡혀있는 것같다.


그래서 일단은 적응하고 최선을 다해볼 생각이다.


어쩌면 내 고단한 취업_항해의 적당정박지가 되기를 기대하며.






노동강도의 개인차에 관한 사족:
화장품회사의 용기 뚜껑 돌려닫는 작업의 노동강도는 어쩌면 나 개인적인 한계에서 매우 고달프게 느껴진 것일 수도 있다. 왜냐하면, 나는 사실 10여년 전부터 오른쪽 가운데 손가락에 방아쇠증후군을 진단받았고 동작또한 불편한 상태였다. 4년여 전부터는 생산직에 근무하기 시작하면서 불편한 손가락으로 매일 쉬지 않고 생산활동을 하다보니 이제는 양손가락의 관절이 모두 약화되어 통증이 일상화된 상태이다.
그런 상황에서 불과 하루 안에 6시간동안 뚜껑 돌려닫는 작업을 집중하다 보니 가장 취약하던 신체부위의 고통이 치명적으로 느껴진 것이다. 그러니까, 나보다 젊은 사람들 혹은 나처럼 손가락기능에 문제가 없는 사람들은 하루에 몇 시간쯤은 그와같은 작업이 크게 무리가 되지 않을 수도 있을 것이다. 실제로 그 화장품회사에서 4년째 근무중인 그녀들도 수시로 그 작업을 이어왔을텐데도 나처럼 고통을 부르짖는 것같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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