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19일 일요일, 저녁이었다.
전날 오전,어머니는 단골 미장원에 가서 곱게 하얀머리를 파마하셨다.
미용사는 어머니의 하얀 파마머리를 봄에 피는 벚꽃처럼 예쁘다고 칭찬하셨다.
어머니는 구순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검버섯도 거의 없는 흰 피부를 간직하신 데다 수년 전부터 염색을 하지 않고 올화이트(All white) 컬러의 머리에 정기적으로 파마만 하시는데,
내가 보기에도 탱탱하게 뽀글거리는 갓 나온 파마머리는, 봄 한철 흐드러지게 피어나 희부연한 꽃송이들이 술렁이는 커다란 벚꽃나무같다.
그 예쁜 머리를 하시고,
다음날인 월요일에 주간보호센터에 입고 갈 옷을 찾아 보겠다며 서랍장을 하나 열었다.
그리고 뒤 쪽에 놓인 의자에 마음놓고 전심전력으로 주저앉았다.
쿵!
그 시각, 나와 남편은 거실에서 티비를 보고 있었다. 어디선가 아파트가 울리는 진동이 느껴졌다.
아마도 윗집에서 무언가 큰 물건을 떨어뜨렸나보다고 갸웃거릴 때,
OO아~~~~!!
다급하고 옅은 고함소리가 들렸다.
그제서야 모든 상황이 파악되었다. 후다닥 들어가 본 방안에 어머니는 서랍장과 의자 사이 바닥에 널부러져 있다.
낙상사고다.
지난해에도 새벽 잠결에 일어나시다 미끄러지듯 낙상하여 갈비뼈를 다치고...그 우여곡절을 겪었는데 그로부터 6개월만에 다시 사고를 친 것이다.
다음날 어머니는 근처 병원에 입원하셨고 검사결과 허리뼈 몇 번인가가, 예전에 척추관 협착으로 시술을 두어번 했던 곳의 윗부분이 부서진 상태였다. 허리뼈가 나가니 일어나 앉거나 화장실에 가는 것은 불가능했다.
누워서 꼼짝마 신세가 된 채로 어머니는 일주일여를 지내다 마침내 어제 오전에 그 부분에 골시멘트시술을 하고 이전의 손상부위까지 치료하는 조치를 취하게되 었다.
노인은 낙상사고가 가장 큰 위험요소이다.
시어머니도 93세 즈음 돌아가셨는데, 돌아가시기 몇년 전 갈비뼈에 금이 가는 낙상사고를 겪으시고 나중에는 거실에서 그냥 주저앉듯 했는데도 고관절에 금이 가고 말았다. 그리고 입원하고 수술을 하고(고령이라 해도 통증때문에 어쩔 수 없이 수술을 해야 함) 입퇴원을 반복하다가 결국 한달만에 세상을 떠나시고 말았다.
그후 다른 친척 어르신들도 다른 질병이 아닌 경우에는 대부분, 고관절에 손상을 입으면 결국 한계에 봉착하는 것을 보았다.
내 어머니도 결국은 시간문제가 아닌가 생각된다.
자신이 끌어다 놓지도 않은 의자를 보며 '저기에 앉으려는'생각만으로 주저없이 허공에 털썩 앉았다가 골밀도조차 한없이 낮아진 허리뼈가 부서지고 말았으니,
다음 차례는 고관절이 아니라고 누가 장담하겠는가.
ㅡㅡㅡㅡ
지난해 여름 갈비뼈 골절로 입원후 퇴원, 그후 언니집에서 석달동안 회복기를 가지는동안, 우리 딸들은 어머니를 요양원에 보내려는 시도를 했었다. 당시 좀처럼 회복이 쉽지않아보이는 어머니도 동의하는듯하였으나 결국 어머니는 불굴의 의지력을 발휘하여 다시 살아나셨고 마침내 12월초 원래 지내던 우리집으로 복귀하셨다.
그리고 자신은 절대로 요양원에 가지않겠다고 선언하셨다.
별다른 사고가 일어나지않는다면, 가족들과 끝까지 사는것이 가장 좋은결말이 아닌가.
그로부터 두어달... 무탈하고 잠잠히 잘 지내시던 어머니가 이번에는 의자에 앉으려다 낙상하신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