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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mehow May 11. 2023

면접에 대처하는 '꼼수 여왕'의 자세

_섣불리 결정하지 않는다

끝날듯 말듯 하던 인연의 빵공장_H에 이력서를 디밀기 전후로, 이번 퇴사 직후부터 뒤적이던 워크넷과 구직사이트들에서 발견한 몇몇 사업체에서 면접을 보았었다.


물론, 이력서만 낸다고 해서 면접을 다 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내가 중노동의 구렁텅이에서 빠져나와 구직시즌에 돌입하려 할 때, 몇년전 일터에서 알게된 친구 A는 걱정스레 말했었다.

일자리가 없어!! 요즘 경기가 안좋아서 그렇대...

그 말에 나도 걱정스러웠다.

허나, 구직할 때마다 느끼는 거지만 내가 원하는 일자리는 언제나 많지 않다. 그러나 또 일자리는 넘쳐난다. 


그러므로,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뒤적이고 뒤적였다.



식품분야종사자용 보건증도 당당하게 발급받았겠다, 나는 본격적으로 식품업체쪽을 두리번거렸다.

실리콘업체와 같은 일반 산업분야에의 취업은 나이때문에 쉽지 않으리라는 결론을 얻었기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워크넷을 통해 이력서를 대여섯 번 날렸고, 그외 창구를 통해 서너 개의 사업체에 연락을 시도했다. 그중에서 통틀어 서너군데 면접을 보았다.


이번 퇴사후 가장 먼저 면접을 본 곳은 K푸드.

집에서의 거리는 20여분 남짓으로 이제까지와는 달리 일단 집근처를 벗어난 곳에 있었다.

전화통화를 먼저했더니 이력서를 가지고 오란다.

가면서도 나는 의아했다.

아무리 뒤져도 K푸드라는 업체가 무슨 일을 하는지, 어떤 것을 생산하는 곳인지 알 수가 없다는 것이다.

블라인드 면접도 아니고 왜 그렇게 자신들의 존재를 그토록 철저히 감추는지  이해가 안 됐다. 그러니, 일단 가보는 수밖에. 가서 직접 보고듣고 해야만 했다.


뜻밖에도 K푸드는 뻥뚫린 대로변 가까운 곳에 위치했다.

공장 마당과 연결된 널다란 밭에는 무슨 작물들이 심어져 잘 자라고 있었다. 공장의 외관도 번듯했고 나쁘지 않았다.

이사직을 맡고 있다는 여인과 면접을 진행했다.

결론적으로 그곳은 샐러드용 채소를 생산 납품하는 공장이었다. 

마트에서도 간단히 사다가 소스만 뿌려 먹을 수 있도록 포장되어 나오는 샐러드채소류가 인기를 얻는 요즘의 추세에 적절한 업종인 듯했다.

하는 일은, 매일 아침 다양한 채소류를 무게별로 달아서 포장한다.

오후에는 다음날 아침에 포장해나갈 채소류를 다듬는 일을 한다.

그런데, 업무시간이 8시30~5:30인데 일을 하다 보면 6시정도까지 하기도 한단다.

그러다 일이 빨리 끝나면 5시에도 끝내 준단다. 

대체로 아무리 늦어도 오후 6시에는 끝내 준다며 선심을 쓰듯 말한다. 

땡, 하면 퇴근은 아닐 수도 있지만 일찍 끝나는 날도 있으니 결국 총 노동시간은 같으니 문제 될 것이 없다는.

음...별로구나.

출근시간은 엄격하게 지키길 바라면서 퇴근시간을 지키지 않는 것에는 왜 그리 관대할까.

아무튼, 일상적인 이야기로 시작한 면접 끝에, 면접관의 뉘앙스로 보아 느낌상 채용될 것같았다.

그럼에도 면접관은 그 자리에서 오케이를 하지 않고 며칠 후에 연락을 줄테니 그때는 어떤 서류를 가져오라고 말한다.

일어서기 전, 작업장을 보여달라니까 왠지 보여주지 않으려는 듯 느껴졌다.


결국 그대로 돌아서며 나름의 체크리스트를 펼쳐본다.

별이 잘 매겨지지 않는다...거리도, 작업장을 드러내지 않는 점도 별로다.

그보다 퇴근시간이 명확하지 않다는게 가장 마음에 들지 않았다.

생각대로, 5월2일에 그 면접관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5월8일 월요일부터 출근시겠어요?

나는 일단 그러겠다고 대답했다. 아직 시간이 있으니..꼼수를 부려보기로.


그러나 빵공장에 출근한 5월4일, 나는 출근하지 않겠다는 메시지를 보냈다.

퇴근시간이 명확하지 않아서 안 되겠다고.


나머지는 클리닝롤테이프 포장업체 B, H식품과 F식품이 있다.

그 이야말로 진작에 빵공장_H의 취업이 확정된 이후에도 계속 면접을 보러다녔다.


먼저 클리닝롤테이프 포장업체 B.

일명 끈끈이 롤이라고 불리는 그것을 포장하는 일만 한다.

그 역시 멀~었다.

진짜로 저 멀리 산고개를 넘어가야 했다. 잘 뚫린 도로에는 물론 포장이 안된 좁은 옛날 길에도 커다란 덤프트럭들이 거침없이 지나다니는 경로를 관통해야 했다.

위치상으로는 그리 내키지 않았지만, 일이 단순하고 쉬울 것 같아서, 일단 한번 가보기로 마음먹었다.

한참을 달려 간 곳에는, 1미터 남짓한 길이로 생산된 끈끈이 롤을 일정한 크기로 잘라 바로 박스에 담아 포장하는 일을 하는 공장이 있었다.

한국인과 외국인 근로자들이 함께 일하는 곳으로, 두 명의 젊은 여인이 동업으로 운영하는 사업체였다.

그 업체의 바로 옆에는 그 끈끈이롤을 생산하는 공장이 따로 있었는데, 이를테면 그 공장에서 생산된 것을 가져다가 포장만 하는 일종의 하청업체라고 짐작되었다.


알바몬인가 알바천국인가 하는 앱을 통해 그곳을 알게 되었는데, 이를테면 알바개념으로 사람을 쓴다.

3개월동안은 수습개념으로 4대보험도 되지 않는다고 했다.

그렇더라도, 일은 무척 단순하고 어려울 게 없어 보였다. 다만 거리가 좀 멀고 길이 너무나 덜컹거리고 먼지가 나서 심드렁했다.

그러자 면접관이 말했다.

저희집은 1시간 정도 거리에요, 집에 갈 때는 1시간 반도 넘게 걸리구요.

면접관은 오너가 아닌가. 자기 사업이니 아무리 멀어도 신나게 다닐 밖에.


내가 하겠다고만 하면 바로 일할 수 있다고 했으나 내가 망설이자, 그녀가 생각해 보고 연락을 해달란다.

갔던 길을 되짚어 돌아오는 동안에도 나는 다시 한 번 가능성을 가늠해보았으나, 역시 최저시급만 받으며 다니기엔 출퇴근거리가 멀다 싶었다.

다음날, 너무 멀어서 안될것같다는 메시지를 보내고 끝냈다.


그다음으로는 H식품.

그곳은 워크넷에서 발견하여 이력서를 냈는데, 면접을 보러 오라는 연락이 왔으나 빵공장 출근 예정일보다 하루 전인 5월3일로 면접일정이 잡혔다.

예전같으면, 아마 그 면접은 포기했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이제 그러지 않는다.

꼼수를 부리기로 결심했기 때문이다.


5월4일에 빵공장에 출근했다가 도저히 못할 것 같으면, 앞서 면접은 보았으나 결과는 며칠후에 나오게 될 그곳으로 건너뛰기를 해야할 지도 모른다는 꿍꿍이셈을 했다.


노느니 면접이나 본다?고 하면 너무 약았나, 싶지만 어쩌겠어요...하는 심정으로 면접을 보러갔다.

처음 가보는 길은 어디나 낯설고 부담스럽다.

그 길을 달려 가니 몇몇 공장들이 위치한 곳에 H식품도 있었다.

의아한 점은, 제목은 식품인데, 그 역시 도대체 무슨 식품을 생산하는지 뒤지고 뒤져도 알 수가 없었다. 

아무리 궁하기로, 내가 일하고자 하는 곳이 어떤 제품을 생산하는 곳인지는 알고 가야 하지 않겠는가 말이다.

그래서,

면접 전날, 워크넷 담당자에게 물었다.

H식품은 어떤 식품을 생산하는 곳이냐고.

그러자 그녀가 황당한 답을 한다.

저희도 몰라요.(너무나 당당하고 태연하다)

왜요? 워크넷에 올라온 구인정보인데...당연히 알고 계셔야 하는 것 아닌가요?

그게, 그 공고를 업체가 알아서 올리는 거라, 꼭 어떤 일을 하는지 밝히지 않는 경우도 많아요. 

그래도...아무리 찾아봐도 무슨 일을 하는 덴지 알 수가 없으니 답답하잖아요. 표기 의무가 없어서 안 하더라고 담당자께서 먼저 확인해서 알고 계시다가 저처럼 궁금해하는 사람에게는 알려주셔야 하는 것 아닌가요??

그러자 그녀도 좀 답답하다는 듯 대꾸한다.

그럴 의무가 없어요, 저희한테는요. 아마도 샐러드 채소를 생산하는 것 같기는 한데요....

어쩌고저쩌고...하면서 직접 그 업체에 전화해서 물어보란다.

면접보기 전에 전화해서 뭐 만드는 곳이냐고 물어보면, 마치 간보는 것 같지 않을까요...알아보고 맘에 안 들면 안 올건가 보다,고 생각하지 않겠어요? 그럼, 이미지부터 나빠질 것 같아서...

아니에요, 그러면 더 좋게 생각하죠! 적극적이라고 생각하지 않을까요?

나는 한숨을 쉬면서 전화를 끊었다.

뭘 좋게 생각한다는 말인가.


나는 친구 A에게도 이런 상황에 대해 생각을 물었다. 그녀의 대답도 나와 같았다.

뜨내기 일용직을 구하는 것도 아니고 정규직을 채용하겠다면서 그렇게 자신들의 정체를 감추는 사업체도 의아했지만, 워크넷이라는 정부소관의 취업포털에서 이런 식으로 관리를 한다는게 안타까웠다.

그래도 내 말이 마음에 걸렸는지, 좀있다 다시 전화를 걸어온 담당자가 말했다.

전을 만드는 곳이래요. 전. 아시죠?

전. 동태전, 김치전 하는 그 전이란다.


요새는 전도 부쳐서 파는구나.

하기는 명절이면 마트에 쏟아져나오는 기성품_동그랑땡, 동태전 등을 본 적이 있다.

그렇다면 기름냄새가 진동을 하겠네? 힘들지 않을까..생각하면서도 약속된 시각에 면접에 응한 것이다.

역시나, 건물로 들어서자마자 느낌이 축축했다. 왠지 구린 느낌...습하고 무언가 찌들어 있는 느낌...에도 불구하고 공장장이라는 남자분과 면접을 봤다.

그가 나를 채용하고 싶어하는 의도를 역력히 알아차릴 수 있었다.

설명에 따르면, 내가 해야 할 일은 부추전 재료인 부추를 칼로 썰거나, 감자전의 재료인 감자를 자르는 것이다. 

전은 사람이 아닌 기계가 부친다. 

프라이팬 정도의 기계가 수십 개 있을 것이고 그 위에 부추나 감자를 섞은 반죽을 일정량씩 부어주면 그 다음은 기계가 알아서 부쳐 낸다는 것이다.  

곧이어 다음주부터 출근하라고 결정지어 주었다. (공장을 보기로 했었지만 취업을 확정지어주는 말에 현혹되어 깜빡하고 그냥 돌아왔다.)


이번에도 나는 알겠다고 하고 돌아왔으나, 마음으로는 퇴짜를 놓고 있었다.

그럼에도 선꼼수, 후퇴짜를 선택했다.


내일 빵공장에 가 보고, 그때 결정하자.


그러고 돌아왔을 때, 뜻밖에도 F식품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그곳은 지원한 지가 1주일정도 지났는데 그제서야 연락이 온 것이다. 나는 애초에 탈락한 줄 믿고 있었기에 일단 반가웠다.

바로 그날 면접을 올 수 있느냐고 물었다. 나는 흔쾌히 답했다. 오후 4시반으로 약속을 잡았다.

F식품은 처음에 면접했던 K식품을 지나 좀더 가면 되는 위치에 있었다.

그나마 F식품은 견과류를 포장하는 일을 하면 곳이라고 업종을 밝혀놓은 상태였다.

대량으로 들여온 견과류를 종류별로 섞거나 아니면 단품별로 작은 단위로 소분하는 것이다.

공장은 규모가 작았다. 각종 포장재가 쌓인 커다란 공장안 한쪽에 사무실과 작업장이 조그맣게 나란히 붙어있었다. 보통 작업장과 사무실이 분리되어 있거나, 포장재가 쌓인 공간은 거의 분리되어 있게 마련인데 규모가 작다 보니 아직 그렇게 되지 않는 모양이었다.

사장과 부장급의 두 젊은 남자가 운영을 맡고 있는 듯 한데, 면접은 부장급의 젊은이가 담당했다.

일은 너무 쉬워보였다.

그냥 하루종일 소분-실링-포장, 이것을 작업자들이 돌아가면서 무한반복하면 된다.

더욱이 야근, 특근 절대로 없으며 5시30분이면 칼퇴라고 자랑스레 말해준다.

또한 식대 10만원을 지급하니, 나가서 사먹든지 도시락을 싸다먹든지 자유라고 했다.

면접관은 마음속으로 나를 거의 채용했다.

그러면서 언제부터 출근할지는 7~8일쯤 연락주겠다고 한다.


면접 끝에 작업장을 둘러보고 나오며 내가 무심한듯 물었다.

휴게실은 어디 있나요?

뜻밖의 질문이었는지 약간 당황한듯 그가 답한다.

아..휴게실은 따로 없어요. 저쪽 커튼쳐진 곳에서 식사도 하시고 그래요...

나처럼 이것저것 따지는 사람에게, 휴게실이 없다는 사실은 특히 치명적이다.


다 좋은데 휴게실이 없다니!!


그래.......내일, 빵 공장에 출근해보고...아니다 싶으면 여기로 정하는 것으로...아무리 그래도, 휴게실이 없다니...



뜻밖의 자랑질 같지만 이렇게 나는 서너군데 면접본 곳에서는 다 성공했다.


그러나 결론적으로 나는 지금 빵공장_H에서 일하기 시작했고 적잖이 마음에 든다. 

물론 점심식사로 가져다주는 배달 뷔페음식이 별로이긴 하지만, 그외에는 사람들이 마음에 든다.

신축 이전한지 6~7개월밖에 안된 깨끗한 건물과 환경, 휴게실도 내가 원하던 온돌방타입이라 잠시를 쉬더라도 다리 뻗고 쉴 수 있다.

다만 하루종일 서서 일하는 것이 힘들 뿐, 그것만 빼면 나머지 뻔하고 당연한 빵포장 작업은 어려울 게 없다.

빵 생산과 달리 포장은 그야말로 포장지에 넣는 일이다.

함께 일하게 될 사람들도 첫날부터 나를 편안하게 대해주었다.

실리콘공장에서의 느낌과는 그야말로 온도차가 분명하게 느껴졌다.


집에서부터 거리가 가장 멀지만 기름값도 주니까,
사람들이 좋으니까, 일도 실리콘 공장에서의
그 끔찍했던 중노동에 비하면 정말 아무것도 아닐 정도로 쉬우니까.

정착하자!

빵공장_H에서의 첫 날, 나는 마음 속으로 결정했다.

그리고 나의 출근을 고대하고 있을 H식품에 전화를 걸어 출근하지 않겠다는 의사를 표명했다.

다음으로는 F식품인데, 거기서도 참 미안할 만큼 나를 찜하고 싶어 하던데...찬물을 끼얹기가 미안해서, 전화해준다 했으니 기다려 보기로 했다. 간혹 전화약속을 하고도 건너뛰는 식으로 탈락시키는 경우도 있기에, 혹시 F식품도 전면적인 호의는 면접용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그러나 진짜로 며칠 후 전화가 왔다.

언제부터 출근하겠느냐고..

나는 무척 미안한 심정으로, 어머니가 편찮으셔서 병원에 다녀야해서 일을 못할 것같다고...꾸며대었다.

그는 정말로 아쉬운 듯 말했다.

아쉽네요...알겠습니다. 다음에 혹시 일할 수 있게 되면 문자 한번 주세요!

아.네 꼭 그렇게 할게요! 감사합니다.


아무리 꼼수를 부리긴 하지만, 나를 진심으로 대하는 이들에게 본의아니게 대해야 할 때면 참 미안한 것도 진심이다.


차마, 나를 원하던 F식품이미 다른곳에 취업했다고 말하기는 미안했기에 이런 꼼수를 부릴 수밖에 없었다.

그 와중에도, 혹시 또 구직모드에 들어가게 되면 뻔뻔하게 연락을 취해 볼 차선책을 마련해두는 꿍꿍이셈을 한 것이다.


꼼수, 다른 말로 나만의 취업전략이라고 해도 될까.


이로써 이번 취업작전은 정리되었다.

이런 나는 교활하고 용의주도하다고 반성하고 자책하는 것이 옳을까.

말 없이 연락을 두절한 것도 아니고, 이 정도 꼼수라면 나름대로 열심히 살아보고자 삶의 지혜를 터득한 것이라고 자위해도 되지 않을까...생각해본다.


꼼수의 여왕이라도 이 정도의 양심은 있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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